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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TV에 안 보이더니… 스파게티부터 어묵까지 대박 났죠”

by스마트인컴

연예인은 전성기가 짧은 직종으로 유명합니다. 일단 유명해지는 것부터 힘든데, 작은 구설수 하나에도 금세 인기가 식어버리기 때문이죠.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곧 다른 재기발랄한 연예인으로 채워지죠. 그렇다면 이렇게 사라진 연예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1. 화려한 전성기, 삶은 달랐던 이경애

이경애는 1984년 KBS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개그우먼입니다. 이후 큰 인기를 얻어 90년대 각종 대상을 휩쓸었죠. 이처럼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애초에 그가 개그우먼을 결심한 것도 여섯 식구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약주와 노름에 빠져 어머니가 장사해 마련한 집을 날려 먹었죠. 덕분에 14살에 동생과 함께 수세미를 팔며 생계를 도와야 했습니다.

80, 90년대 개그를 이끌며 편당 3000만 원의 CF를 찍었던 그지만, 그 돈은 모두 가족의 지원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첫 번째 결혼도 파혼으로 끝났죠. 이혼 관련해 헛소문까지 돌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후 김용선을 만나 다시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나가는 듯싶었죠. 인공 수정으로 딸 김희서까지 얻었지만, 졸음운전 차량이 이경애의 차를 박아 왼쪽 무릎 관절이 탈골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남편 김용선은 이경애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지만, 오히려 간이 급속도로 나빠져 이경애가 간호해야 할 처지가 됩니다. 병원비를 마련하려 행사하러 다니던 그는 2005년 행사장에서 감전사고를 당하기도 했죠. 게다가 김용선은 결국 2013년 신부전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당시 이경애는 50세, 딸은 9살에 불과했죠. 나이트 사업이 실패하며 억대 빚까지 생겨났죠. 우울증까지 닥쳤지만, 딸을 위해 겨울 세차장,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가정을 지탱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방송 밖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던 이경애는 어묵 사업을 시작하며 삶을 되찾은 근황을 밝혔습니다. 2012년 딸의 건강 문제로 관심을 가졌던 어묵 사업을 시작해 2015년부터 억대 매출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죠. 어묵 사업과 연계해 떡볶이 전문 음식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건강을 위해 남양주의 2층 전원주택에 거주하며 제2의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쭉쭉 뻗어가는 성공 가도, 이세준

1996년부터 활동한 남성 발라드 듀오 유리 상자 중 한 명인 이세준은 1997년 9월 첫 앨범을 내며 본격적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는 고려병원 병원장, 인산의료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아버지를 두고 있어 풍족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가 속한 유리 상자도 무려 정규 앨범만 11개 내며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하지만 여타 가수들이 그렇듯, 그도 수입 안정성을 위해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2005년 한 안경사가 무거운 기계를 업고 다니며 노인들에게 무료 안경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본금 5000만 원을 들여 프랜차이즈 안경원 ‘글라스 박스’를 창업했습니다.

2005년 글라스박스는 강남역 1호점이 전부였지만, 11월부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화에 나서게 됩니다. 이후 그의 프랜차이즈는 2006년 26개 점을 오픈하고 2007년 39개, 2008년 32개 점을 오픈하는 데 성공합니다. 다만 2009년부터는 두 자리 미만으로 신규 가맹점이 줄어들었죠.

사실 이세준은 경영보다 마케팅에 치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예인인 자신의 유명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실질적인 경영은 그의 아내 강경진이 맡고 있습니다. 3년 만에 연 100억 이상의 연 매출을 올린 부부의 글라스 박스는 여전히 순항 중입니다.

3. 스파게티의 짜장면화, 선우재덕

배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선우재덕은 1982년 영화 ‘사랑 만들기’로 데뷔했습니다. 그는 이후 1986년 KBS 특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했죠. 그는 배우 활동을 이어가는 와중에 불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스파게티를 선정했습니다. 2003년 창업을 준비한 그는 그해 6월 프랜차이즈 법인을 설립했죠.

사실 그는 이미 1990년부터 성신여대 앞 떡볶이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의정부에는 전원 카페도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 스파게티가 과하게 고급화된 점을 보고 스파게티의 대중화를 선언하며 ‘시게티’를 창업했습니다. 고가 스파게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고가 스파게티 브랜드 ‘브이’를 내놓았죠.

이에 멈추지 않고 2007년 그는 한우 산업을 위해 ‘선우랑 한우랑’이라는 한우 전문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습니다. 아쉽지만 현재는 관련 매장을 찾아볼 수 없죠. 현재는 스파게티 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