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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이로운 삶의 움직임을 따라 - 강진에서의 시간

bySRT매거진

가우도 출렁다리와 청자타워

강요로 떠났으나 스스로 갇히지 않은 자의 운명을 새긴다. 백운동 원림의 왕대 숲, 동백나무 숲이 있는 다산초당, 큰고니가 평화롭게 쉴 수 있는 강진만생태공원에서. 하늘길을 따라 본능의 법칙대로 사는 생물의 율동과 이로운 삶의 움직임에 큰 바탕이 되어준 강진을 기억한다.

소설 그 이상의 삶, 다산 정약용과 강진의 만남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다산은 두고 온 가족과 흑산도에 유배간 형을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주어진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가? 닥친 위기를 넘어서지 못할 일로 여기는가? ‘나는 운도 참 없어’라고 한탄하고 있는가? 정해진 운명은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그들에게 운명과 운은 이로운 쪽으로 옮겨야 할 기회일 뿐이다. 운(運) 자를 잘 들여다보자. 진을 치고 있는 군대가 짐을 꾸려 이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승리를 향한 움직임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스승으로 내세우길 주저하지 않는 인물, 다산 정약용(1762~1836). 그의 삶에는 소설의 구성 단계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차분히 들어 있다. 어찌 보면 제 순서도 모르고 위기가 자꾸 끼어드는 것처럼도 보인다.


정약용의 삶은 소설을 뛰어넘는다. 서울 시청에서 강진 군청까지는 약 382km 거리다. 한 일 자로 선을 그으면 까마득히 닿는 남쪽의 끝, 강진. 다산 정약용의 세 번째 유배지이자 최장 유배 생활, 그의 삶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저술과 업적을 남긴 곳이다. 강진은 백제시대에 도무군의 도강과 동음현의 탐진이 영합된 지역으로 도강(道康)의 강(康) 자와 탐진(耽津)의 진(津) 자를 합해 강진(康津)으로 호칭한다. 마음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도대체 저 남쪽은 어떻게 생겼고, 그들은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는 법. 어느 날 북쪽에 사는 사람이 정약용에게 물었다. “호남의 풍속이 교활하고 경박한데 탐진 지역이 더욱 극심하다. 그대가 어찌 견디는가?” 154권 76책으로 정약용의 저술을 정리한 <여유당전서> 시문집 (산문) 22권에 정약용이 탐진에 대한 물음에 두 번째로 대답한 기록이 인상적이다.

“아! 어찌 그리 잘못된 말을 하는가. 탐진 지역의 백성들은 벼를 베고 나면 전답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곧바로 이웃 사람의 전답을 자기 전답처럼 경작하여 보리를 심는다. 내가 백성에게 묻기를 ‘훌륭하도다! 보리가 익으면 주인이 절반을 가져가는가?’ 하니, ‘아닙니다’라고 했다. ‘부세를 낼 때 절반을 부담하는가?’ 하니, 그것도 ‘아닙니다’라고 했다. (중략) 아, 어질도다! 이들은 무회씨의 백성인가, 아니면 갈천씨의 백성인가. 관가에서 공문을 발부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에 집마다 12전을 요구하여도 들어주고 집마다 25전을 요구하여도 들어준다. 오늘 거두고 내일 또 거두어도 들어주어 거두는 대로 들어주면서도 어디에 쓰는지는 묻지 않는다. 또 종에게 사사로이 재물을 주어 밭을 살 만한 재산을 가져가도 묻지 않으며 그 돈으로 기생을 끼고 뱃놀이를 하는데도 묻지 않는다. 이러한데도 교활하고 경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공평한 눈으로 살피고 공정한 말로 평한다면 누가 어진 사람이고 누가 어짊을 해치는 사람인가.”

다산이 못 잊은 백운동 원림

백운동 원림의 고즈넉한 시간

가난한 삶에 각박하지 않은 인정이 깃들어 있으니, 어쩌면 정약용은 강진에서 두고두고 칭송될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선생이 강진과 강진 사람을 아낀 것처럼, 강진의 산과 들은 선생을 품고, 힘없는 백성들은 마음으로 선생을 살폈다. 강진에 머물며 마음에 저장해둔 장소가 한둘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강진 백운동 원림’(명승 제115호)’이 제1경이다. 백운동 원림은 이담로(1627∼1701)가 조영한 후 지금껏 보존되어온 전통 원림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으로 손꼽힌다.


수많은 선비와 문인이 백운동의 조영과 경치에 관하여 예찬한 옛 시와 그림들이 현재까지 잘 남아 있으니 <백운첩>을 빼놓을 수 없다. 다산 정약용이 1812년 초의선사를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에 들러 하룻밤을 유숙한 후 백운동의 풍광을 잊지 못해 초의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서시와 발문, 백운동 12경 등을 시와 그림으로 남긴 시첩이다. 어찌하다 보니 제12경 운당원에서 선방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됐다. 그때의 왕대가 지금껏 늠름하여 숲을 이루니 옅은 바람에도 댓잎이 촤~ 일렁인다. 소나무 잎이 낙엽된 무성한 길 위에 앉아 향수와 향기에 취한다. 백운동 원림에서 선생의 시간을 들추어보니, 왜 오늘날의 사람들이 스스로 순례길 걷기를 자처하는지 짐작이 갔다. 관리로서 허물이 될 유배를 떠나왔어도 절망감 속에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고, 오히려 관리로서 백성의 마음을 살피고, 수령이 나아갈 밝은 길을 〈목민심서〉로 보여준 정약용이다. 귀양살이에도 아름다움을 좇고 마음 내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은 선생의 마음은 강진 곳곳에 묻어 있다.

동백꽃이 떨어지고 큰고니가 날아와 쉬는 강진

다산초당에 자리한 선생의 초상화

다산 정약용은 40세에 강진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그 후 18년을 가족과 떨어져 생이별을 해야 했다. 유배를 떠나기 전에도 부유한 삶이 아니었으니 가장 없이 남겨진 두 아들과 딸, 남겨진 아내 홍씨의 삶은 정약용 못지않게 참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은 학자로서 그의 삶을 완성하게 해준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23일 가족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강진에서 다산 정약용이 처음 머문 곳은 주막집의 골방이다.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운거할 곳을 얻은 다산은 ‘네 가지(생각·용모·언어·행동)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으로 ‘사의재’란 당호를 짓고 이곳에서 <경세유표>를 집필하고 6명의 제자를 훈육했다. 다산이 4년간 머무른 사의재는 오랜 고증을 통해 2007년 복원되어 현재 한옥체험관, 저잣거리를 운영 중에 있다. 봄기운이 올라오는 3월에는 사의재 저잣거리에서 의미 있는 마당극도 열린다니 기대가 된다.

‘다산초당’과 연못과 돌을 쌓아 만든 산인 ‘연지석가산’

다산은 사의재에서 보은산방, 이학래의 집을 거쳐 1808년 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초당으로 들어서는 길은 먼저 들른 백운동 원림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산이 이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본격적인 학문 정진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고 하는데, 묵직하고 고요한 초당 가는 길이 그럴 만하다. 다산이 걸었을 짙은 녹음 낀 길, 다산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을 나뭇잎, 수많은 사람이 다산의 일대기를 그리며 오르는 길은 여전히 비밀스럽고 가파르다. 다산을 사모하는 연정으로 복원된 다산초당은 기와를 얹어 풍요로운 모습이다. 다산이 실제 기거했던 그 모습은 상상으로 남기고, 선생이 직접 세운 ‘연지석가산’에서 노니는 물고기 두 마리를 바라본다. 다산은 이곳 다산초당에서 흑산도로 유배를 간 형, 정약전의 부음을 들어야만 했다. 함께 유배를 떠난 형제는 전라남도 나주의 북쪽 주막거리, 율정에서 각자 흑산도와 강진으로 발 머리를 돌려야만 했다. 살아서 서로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만날 수 없는 형을 그리워하며 남긴 동생의 글귀가 절절하다.

북풍은 나를 몰고 와
가고 가다 바다를 만나 멎었는데
우리 형은 더 매서운 바람을 만나
검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갔네.
두고 온 아내는 과부가 되고
헤어진 아이는 고아가 됐네.
그는 바닷길로 들어가면서
드넓은 마음으로 스스로 기뻐하는 듯하였네.
호걸의 기풍 가슴속에 품어
백 번 짓밟혀도 백 번을 일어났구나.
해와 달이 방 안을 비추는데
지극한 공의(公義). 아, 하늘의 이치이어라.
– <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 (석한남, 가디언) 중 일부 발췌

강진만생태공원의 평화로운 풍경

형인 손암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동생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목민심서>를 남겼다. 두 사람 모두 그리우나 볼 수 없어 애달픈 마음이 학문에 대한 의지로 발현됐는지도 모르겠다. 내게서 먼 곳은 낯설어 더욱 춥게 느껴지기 마련이건만 멀리 떠나온 보람처럼, 강진의 하나하나가 보드랍고 따뜻하기만 하다. 강진의 월출산은 <구운몽>에 등장하는 미지의 세계처럼 강진을 아스라이 품고 있다. 뾰족이 솟은 기암괴석은 칠 선녀가 내려와 살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고 기이하다.

푸른 생동감이 가득한 강진다원

산 안에 거대한 둥지처럼 자리한 강진다원은 고요하고 푸르다. 봄의 초록과는 또 다른 푸른색 속에서 강한 생동감을 느낀다. 다산초당에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백련사 혜장 스님을 만나러 가는 다산의 발걸음을 생각한다. 강요로 떠났으나 스스로 갇히지 않은 자의 운명을 새긴다.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큰고니가 제 날갯죽지에 고개를 파묻고 평화롭게 잠들 수 있는 강진만생태공원을 거닌다. 하늘길을 따라 본능의 법칙대로 사는 생물의 율동과 이로운 삶의 움직임에 큰 바탕이 되어준 강진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AROUND · 강진

#강진10미 #돼지불고기구이 #전라병영성 #배진강 #돼지석쇠불고기

전남 강진이 자랑하는 10가지 맛 중에 돼지불고기가 있다. 특히 전라병영성 인근에는 돼지석쇠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즐비하다. 따로 메뉴판도 없는 배진강 식당에서 하나 남은 자리에 앉자 잠시 후 석쇠에 지글지글 구워진 불고기가 등장한다. 비계까지 맛있는 이 맛. 손바닥보다 큰 상추에 잘 구워진 파절이까지 올리면 게임 끝!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1. 전남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07-16

#강진10미 #짱뚱어탕 #갯벌의쇠고기 #동해회관 #맛보증

강진 군청에서 차로 2분 거리의 동해회관을 우연히 발견했다. 눈이 툭 튀어나온 짱뚱어는 갯벌의 쇠고기로 불릴 만큼 영양이 뛰어나다. 도시에서는 흔히 맛볼 수 없는 짱뚱어탕을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추어탕보다 훨씬 깔끔하고 은근한 단맛이 낯선 음식인데도 거부감이 안 든다. 따로 양념을 더하지 않고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1. 전남 강진군 강진읍 보은로2길 5-1
  2. 061-433-1180

#사의재 #사의재저잣거리 #카페청 #분위기도맛도좋아 #아메리카노 #생강차

다산 정약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의재가 복원되었다. 하루를 보내는 강진 여행을 계획한다면 사의재 한옥체험관에 머물며 인근의 명소를 탐방하고 카페 청에 들러 분위기와 맛까지 음미하면 좋겠다. 인근에는 영랑생가를 비롯해 세계모란공원까지 가볼 곳도 많다.

  1. 전남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31-8
  2. 061-434-8500

#강진군관광안내소추천 #카페가출 #가출뜻 #가우도출렁다리 #풍경은플러스

영랑생가 코앞에 강진군 관광안내소를 들렀다. 가우도를 간다고 하니 카페 가출을 추천해준다. 이름을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는데 맞단다. ‘가우도 출렁다리에서 시간을 노래하다’를 줄여 가출이라고. 관광안내소 직원분도 친절하고 카페 직원분도 친절하고 카페에서 바라보는 가우도도 아름답고, 음료도 맛있어서 행복했다.

  1. 전남 강진군 대구면 중저길 15-20
  2. 061-432-3510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