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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트래블 다이어리]

청주는 예뻤다

bySRT매거진

욕심을 버리고 문화의 도시 충북 청주로 떠났다.

비우고 떠난 만큼 채워지는 여행의 선물은 ‘기억’이었다.

지난 2월 7일, 오전 9시40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도착했다. 10시 개장이다. 시간이 남아 바로 앞에 자리한 잔디광장 벤치에 앉아 멍하니 건물을 바라봤다. 딱히 감흥은 없지만 지난 2004년까지 연초제조창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도시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개조해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재미는 있었다. 무엇보다 평일 오전에 이런 호사를 누린다는 건 사회인에겐 꿀 같은 시간. 물론 일이라는 부담은 있지만 이 순간을 누려보고 싶었다. 잠시 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5분, 롤렉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일하자.

가장 쉽게 예술을 접해 보니

다양한 전시와 휴게시설을 갖춘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자동문이 열리자 친절한 안내원이 바로 뒤 매표소에 들르라고 일러줬다. 입장료를 내려고 지갑을 꺼내는 순간, “무료입장입니다”라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층(로비 및 수장고, 아트존, 보존처리실), 2층 (관람객 쉼터), 3~5층(수장고 및 기획전시실)으로 구분된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발급받고 들어서자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처럼 수백 개의 미술품이 대형 먹거리 상품처럼 모두의 눈높이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유리 가리개마저 없기에 작가의 혼이 담긴 결과물과 정서적인 교류도 가능해 관람 의욕 역시 뿜뿜!

1층에선 압도적인 크기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가장 큰 전시장인 1층의 개방 수장고에는 조각, 공예 작품 162점이 전시됐다. 한국 근대조각의 길을 개척했다고 알려진 김복진부터 송영수, 김세중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의 작품. 물론 그들이 누군지 모르고 관람해도 무방할 정도로 작품들은 친절하다. 누워 있는 여자를 바라보는 개, 반으로 쪼개진 불상처럼 개인의 상상력을 자아내는 직관적인 작품들과 누가 봐도 ‘내가 백남준이다’라고 공표하듯 텔레비전의 본체를 육회 뜨듯 발라내어 사과 상자 세 개 높이의 박스에 겹겹이 붙인 미술작품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트렌드가 돋보이는 팝아트 스타일을 모아 둔 ‘개방 수장고 미술은행 수장품’

충분히 둘러본 뒤 3층으로 갔다. 팝아트 느낌의 작품이 가득한 ‘개방 수장고 미술은행 수장품’ 섹션, <나만의 보물을 찾아서 : Secret Storage>전이 한창이었다. 대중성을 강조한 아크릴 및 도예 작품, 120여 점은 하나같이 앤디 워홀의 유산처럼 이질감 없이 다가온다. 잠시 커피 생각이 간절해 1층으로 내려오자 입장할 땐 몰랐던 카페가 보였다. 이날의 첫 커피였다.

국가대표와 제빵왕 김탁구

수많은 벽화가 가득해 관광객을 동심으로 이끄는 수암골 벽화마을

미술관을 나와 1분 정도 걷는데 담벼락이 없는 한 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슬쩍 정문으로 올라갔다. 축구부로 보이는 학생들이 미래의 손흥민이 되기 위해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순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2년이 떠올랐다. 한일 월드컵을 마치고 모교를 방문한 골키퍼 이운재 선수를 위해 어느 토요일 오전 땀을 뻘뻘 흘리며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환영식을 준비했던 기억,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오픈카를 타고 등장한 그를 보고 학교가 들썩일 정도로 환호했던 웃픈 사연. 묻어둔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보다 몇 개월 전인 2001년 겨울. 당시 방학을 앞두고 친구와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걷다가 덩치 큰 한 남자가 운동장에서 홀로 달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마침 축구부 친구가 다가와 “저 사람, 차범근 선수 아들인데 얼른 사인을 받는 게 좋아”라며 재촉했다. 그에게 달려가 누가 봐도 거리에서 주은 구겨진 종이와 펜을 건네니 사인은 물론 악수까지 청하며 영하의 온도도 녹일 친절을 베풀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이탈리아와 맞붙던 그날 차두리가 보여줬던 오버헤드킥은 여전히 아쉽다. 예상치 못하게 떠오른 기억은 취재 중 쌓인 피로마저 날려준다. 사색은 그만.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흔적을 엿보기 위해선 꼭 팔봉제빵점에 들러 빵을 맛보는 게 좋다

지역 주민과 작가들에 의해 담벼락에 우리네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벽화가 빼곡히 그려진 청주의 마지막 달동네인 수암골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전국 시청률 50%를 넘긴 드라마<제빵왕 김탁구>를 탄생시킨 팔봉제빵점이 있기 때문이다. 단숨에 이곳을 찾아 베스트 상품인 ‘보리봉빵’을 집었다. 계산을 마치자마자 한 입 베어 먹었다. 보리를 발효해 밀가루에 비해 훨씬 쫄깃하고 맛도 담백해 우유와 먹으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주린 배를 채우고 수암골 투어를 시작했다. 팔봉제빵점 바로 앞에 경사진 언덕을 기준으로 가옥 수십 채가 성인 남성 한 명이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에 마추픽추처럼 밀집되어 미로처럼 출구를 찾는 재미가 있다.

지갑 속에 담긴 예술작품

(좌)고즈넉한 기와집은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해주는 특효약이 된다 (우)김기창 화백의 작품은 오늘날 수많은 예술가와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지난 2001년 작고한 운보 김기창 화백이 1984년부터 2001년까지 살았던 운보의 집. 운보 박물관과 약 7년간 그가 지은 한옥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우리에겐 한국은행의 요청으로 1만 원권 지폐에 새겨진 세종대왕의 얼굴을 그린 화백으로 유명하다. 그의 실력과 명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끝나며 조수석에서 바라본 운보의 집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흐린 날씨는 언덕을 따라 길게 세워진 큰 기와집을 이상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기다란 수많은 소나무가 꼿꼿이 세워져 있었다. 장관이다. 언덕 너머 운보미술관으로 향하던 중 주변 관람객이 “아, 여기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였구나!”라며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드라마 촬영지인 까닭에 이질감 없이 다가온 운보의 집

잠시 왼쪽의 생가로 몸을 돌렸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한옥에는 안채와 행랑채, 정자와 돌담, 그리고 연못 등이 자리해 있다. 그가 느지막한 나이에 어머니의 고향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 이곳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내부 역시 생전에 사용했던 집기와 작품이 보존되어 있어 생동감이 넘쳤다. 정점은 운보미술관에서 꽃을 피운다. 화백의 스타일을 엿보는 수묵담채 기법의 다양한 작품과 1955년 발발한 베트남전 기록을 위해 실제 파견되어 묘사한 작품은 결이 다른 유산이었다. 새삼 그가 부러웠다. 몸은 이승을 떠나도 정신은 여전히 우리 지갑 속에 한 장씩은 자리한 김기창 화백의 작품. 올해는 좀 더 많아지길 빌어본다. 그의 작품이 내 지갑과 통장에.

남쪽의 청와대, 청남대

실제 대통령의 집무실을 그대로 옮겨 자녀 교육에도 효과적인 대통령 기념관

청주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충북 청원군 대청호 변에 자리 잡은 역대 대통령의 별장으로 쓰였던 청남대.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의 지형에 매료되어 3년 뒤 건립했고 이후 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남대 소유권을 충청북도에 이양하며 모두가 방문할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역대 대통령의 별장답게 사방이 아름다운 숲과 끝없이 이어진 대청호가 어딜 가도 한눈에 보였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6분 정도 걷다 보면 이곳의 메인, 청남대 본관이 나온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1층엔 회의실, 접견실, 식당, 손님실이, 2층은 대통령 전용 공간으로 침실과 서재, 거실, 식당이 있다. 층마다 안내원이 있어 관람에 도움이 되는 설명도 해준다. 내부는 자주색 카펫과 대리석 바닥을 바탕으로 색바랜 소파와 커튼에 1990년대 호텔 VIP실처럼 고급스러운 가전과 집기류가 가득했다. 그들의 삶도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다만 비쌀 것이다. 10분 정도의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꽃이 만개하는 따스한 계절에 방문하면 청남대에 가득한 수많은 식재와 나무를 바라보며 멋진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청남대에는 역대 대통령 6명의 이름이 붙은 산책로(11.1km)가 있다. 가장 짧은 ‘전두환 전 대통령길’(1.5km)을 택했다. 이날 맞바람이 약했다면 가장 긴 ‘이명박 전 대통령길’(3.1km)을 걸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잘 정돈된 산책로는 성인 남성 3명이 걷기에도 넉넉했다. 길 옆쪽에 자리한 자연의 선물을 벗삼아 산책을 재촉했다. 좌측엔 청명한 대청호, 우측엔 소나무와 수십 가지의 식물이 식재되어 소위 걷는 ‘맛’이 났다. 이날만 큼은 걷는 호사를 누리고 싶어 가끔 뒷사람이 앞질러 갈 만큼 천천히 걸었다.

여행의 8할은 ‘걸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 밥 생각, 인간 관계 등을 지우고 오롯이 자연에만 집중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기 시작하며 어제 떠오른 추억이 잔잔하게 차오른다. 생애 처음 면도를 한 고등학교 입학식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담배 냄새가 진동해 주변을 살피니 연초제조창이 학교 옆에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한 100점짜리 추억. 그럼에도 전 국가대표 골키퍼 이운재 선수를 배출했기에 마치 우리 형처럼 주변에 입이 닳도록 자랑하고 다닌 순수했던 10대. 지금은 허물어진 담벼락 안 운동장에서 만난 차두리 선수와의 기억까지. 그곳을 약 16년 만에 다시 담아왔다. 너무 예쁜 내 고향 ‘청주’를. 서울로 올라가 추억팔이 좀 해야겠다.


글·사진 유재기 협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운보의 집, 청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