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등대에 서서 어머니를 그리다

[여행]by 김선인
소리도 등대에 서서 어머니를 그리다

여수 앞 바다, 금오열도의 맨 남쪽 바다에 연도라는 섬이 있다. 연도 주민들은 솔개가 나는 모습을 닮았다고 소리도, 소리섬이라고 부른다. 공식 명칭은 연도지만 소리섬이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
 

소리섬에서 특이한 지형을 볼 수 있다. 절벽을 이루고 있는 ‘대룡단’과 바다 쪽으로 길고 삐쭉하게 뻗은 ‘소룡단’이 그것이다. 소룡단은 미니 반도로 양 옆으로 바다 물결이 출렁인다. 바위로 된 이곳을 걸으면 바다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듯하고 바닷물을 헤치고 나가는 기분이 든다. 섬을 공룡으로 비유하자면 이곳은 마치 공룡의 꼬리에 속하는 부분이다. 바다 안쪽으로 소룡단을 걸어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대룡단의 거대한 절벽이 보인다. 대소룡단을 보는 것만도 연도에 온 보람이 있을 정도로 절경이다.

소리도 등대에 서서 어머니를 그리다

등대의 불빛을 최대한 멀리까지 비추어야 되니 등대는 높은 곳이나 절벽 위에 서 있다. 연도의 등대도 대룡단 절벽 위 바다 쪽으로 탁 트인 위치에 서 있다. 절경 위에서 하얀 등대가 빛나고 있다. 자연의 절경과 사람이 만든 등대가 함께 만들어내는 경치는 한 폭의 그림이다. 등탑이 육각형으로 미끈하고 우아한 모습은 아니지만 각이 진 것이 올곧고 진실한 사람을 만나는 듯한 등대다. 등대 주변의 조경도 산뜻하다. 때마침 수선화가 피어 주위 콘크리트 구조물의 삭막함을 부드럽게 바꾸어주고 있다.
 

이 등대를 찾아가는 길도 멋지다. 동네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평범한 찻길을 걸어야 하지만 바닷가 덕포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동백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바다 곁을 따라 걷는 다붓한 길이다. 바다 곁을 따라 걷는 길이니 눈으로 귀로 코로 바다가 들어온다. 오감이 반응한다.

소리도 등대에 서서 어머니를 그리다

등대는 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다. 맑은 날은 빛으로, 안개 낀 날은 소리로 신호를 보내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도와주는, 바다에 꼭 있어야할 장치다. 등대는 약속이고 꼭 지켜 주리라는 신뢰의 징표이며,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희망과 구원의 표지이기도 하다. 어두워진 다음 다시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 갈 때 길 없는 바다 위에서 길을 열어 주는 한줄기 빛은 삶을 밝히는 불빛이다. 항로표지원은 매일 밤 세상을 향해 불을 비추지만 그가 비추는 불은 등대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모닥불이 되어 줄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퍼부어대는 칠흑 같은 망망대해를 작은 배에 의지하여 나아갈 때 뱃사람은 높은 파도에 맞서며 생사의 기로에 선다. 그 때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이 보이면 뱃사람은 희망의 끈을 잡을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등대는 작고 불빛은 약하지만 그 존재감의 부피는 어느 것보다 크다.
 

믿음의 상징이자 희망과 구원의 표지인 등대 앞에 선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줄 때가 있을 경우를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남녀가 높은 산에 올라 자물쇠를 매달아 잠그고 열쇠는 절벽 밑이나 깊은 계곡으로 던져 버린다. 변치 않을 사랑을 약속하는 의미이리라. 열쇠를 자연에 버림으로써 자연을 훼손하기보다는 등대로 가서 사랑을 약속하면 어떨까. 등대 앞에 서서 그 의미를 되새기며 서로 사랑을 약속하거나 프러포즈를 하면서 서로에게 등대가 되어 주고 빛이 되기를 맹세 한다면 그 사랑은 한결 빛나지 않을까. 부부가 등대를 바라보며 등대처럼 굳건히 신뢰하며 서로에게 희망과 구원이 되어주길 다짐한다면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소리도 등대에 서서 어머니를 그리다

등대가 항상 그 자리에서 빛을 비추어 길이 되어 주는 모습은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는 꺼지지 않는 등불을 품고 사는 분이다. 자식들에게 언제나 빛이 되어주고 길이 되어 주신다. 자식들이 어려운 형편에 처했을 때 등대처럼 사랑의 빛으로 힘을 주고 따뜻한 치유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 치유의 원천인 신(神)도 때로는 멀리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신에게서 치유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가까이 있는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큰 치유의 힘을 가진 분이 된다.
 

등대 앞에 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머니는 등대였다. 등대를 보면 눈물이 난다.

 

<여행작가 2015 7-8월호 게재>

2015.11.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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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여행작가>에 힐링 섬기행, <현대수필>에 수사에세이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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