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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고전영화 들춰보기
-『시계태엽 오렌지』

by디아티스트매거진

고전영화 들춰보기 -『시계태엽 오렌지

copyright 2015. 다음 영화

우리는 살면서 범죄자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분개하곤 합니다. 연쇄 살인범이나 성폭행범들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던가요? 그러면서 우리는 가해자들이 강력히 처벌받기를 바라게 됩니다. 여기 한 가지 솔깃한 제안ㅡ 범죄자들이 다시는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범죄자에게 범죄를 일으킬 때마다 심각한 알러지 반응(예를 들면 구토)을 일으키도록 주입을 시키면 됩니다. 범죄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도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거부 반응 때문에 저지를 수 없으며, ‘관리가 잘 되는 한’ 악을 저지를 가능성이 차단됩니다. 이 방법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가 제안하는 놀라운 처벌 방식입니다. 아주 편리하고 매력적인 방법이 아닌가요? 그런데 과연 이 방법은 효과적일까요?

루도비코 요법: 너무나도 ‘매혹적인’ 처벌 방식

고전영화 들춰보기 -『시계태엽 오렌지

copyright 2015. 다음 영화

주인공 알렉스는 저지르고 다닌 악행들이 그 어떤 범죄자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악 그 자체입니다. 죄 없는 사람을 다짜고짜 두들겨 패고, 심지어 성폭행하거나 살해하는 등 알렉스는 무시무시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갱생의 여지 따위는 손톱만큼도 안 보이는 인물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알렉스가 루도비코 요법만 받고 풀려난 것도 그가 저지른 악행에 비하면 애교 수준입니다. 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지도 않죠. 게다가 루도비코 요법은 범죄자인 알렉스가 사회에 나와 다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착하게 살도록 자동으로 교화가 되는 셈인데, 관객이 루도비코 요법에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요? 범죄자의 충동을 억제시키는 루도비코 요법의 유혹은 그만큼 강렬합니다.

루도비코 요법의 함정

고전영화 들춰보기 -『시계태엽 오렌지

copyright 2015. 다음 영화

그러나 루도비코 요법은 진정한 교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방식입니다. 알렉스는 뉘우친 게 아니라 단지 제약을 받은 상태일 뿐입니다. 교화를 받은 후 사람들 앞에 끌려 나온 그의 모습은 어떤가요? 알렉스는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악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악행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범죄자의 내면이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범죄를 막은 것이니 잘 된 것 아닌가?’

 

영화의 끝 장면에서 알렉스는 루도비코 요법이 풀려나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며 사악한 미소를 짓습니다. 원래 원작은 떨떠름한 태도로 비행을 끝내겠다고 마음먹는 알렉스의 모습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굳이 감독이 악이 부활했다는 식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류가 발생하여 시스템이 붕괴되면 그 땐 어떻게 될까요? 인간이 만들어낸 완벽하지 못한 시스템 안에서, 제거되지 않은 악은 반드시 부활합니다. 루도비코 요법은 결과 중심적인 처방이 근본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고전영화 들춰보기 -『시계태엽 오렌지

copyright 2015. 다음 영화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강제 교화 방식의 악용 가능성입니다. 이 방식이 정부, 즉 사회를 통제하는 집단에 의해 사용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관객은 알렉스가 ‘처벌받아 마땅한 놈’이고, 그것을 집행하는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루도비코 요법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배 계층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고, 강제 교화 방식을 사용하고자 하는 대상이 단순히 지배 계층이 ‘악’이라고 규정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지배층이 특정인이나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여 제거하거나 탄압하는 과정은 이미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사례들입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이것은 아주 매력적인 수단입니다.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강제로 교화를 시켜 버리면 끝이죠. 루도비코 요법과 같이 인간의 의지를 말살해 버리는 수단이 권력자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이것이 어떤 식으로 악용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수법이 악용될 경우, 우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오렌지에 기계를 꽂아 넣은 괴상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 의지가 없는 인간, 선택을 내릴 수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악당인 알렉스가 루도비코 요법으로 교화 받기를 원하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최정원 칼럼니스트 | hanaire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