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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육첩방은 남의 나라

by인문잡지 글월

육첩방은 남의 나라

문학과지성사가 펴낸 윤동주 전집을 보면,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지 않은 미발표 시들이 수 십 편 싣려 있다. 미발표 시들을 읽다보면 대부분이 미완성인 듯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뜻이 너무 또렷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이나 <서시>, <자화상> 등의 시에 비하면 아무래도 완성도가 많이 못 미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던, 아마도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결한 영혼을 지녔을 윤동주이기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싣을 시를 고르느라 고심했을 것이다. 시를 한 줄 적기 전에 마음속으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계속 담금질하다가 마지막에야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윤동주임을 생각하면, 아마 종이에도 옮겨 쓰여지지 못한 채 그의 마음 속에서 사라져 버린 시도 여러 편일 것이다.

윤동주는 흔히 국어나 문학 시간에 저항 시인으로 분류된다. 윤동주가 민족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고 이를 시에 녹여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해 투쟁하였던 시인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언어로, 감각적이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은, 순결하고 투명한 서정시를 선보인 것이 윤동주의 가장 큰 성취요 우리 문학사의 축복이다.

내게는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윤동주의 시 구절이 하나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육첩방은 남의 나라’이다. 이 시를 읽으면 비가 내리는 밤, 다다미 하숙방에 앉아 고향을 그리며 마음속으로 시를 쓰고 있을 윤동주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하나’의 나라였다. 하지만 일본까지 건너와 공부하는 입장이었음에도, 폭력에 의해 국권이 유린당한 것임을 잘 알기에 일본은 당연하게도 ‘남의 나라’다.

고향인 북간도를 떠나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희전문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후, 일본까지 건너와서 다시 영문학을 공부했던 윤동주. 그의 신분은 학생이었고, 공부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었다. 그렇게 남의 나라 다다미방에 앉아, 밤비가 처연하게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고 온 동무들도 생각이 나고, 어렵게 학비를 보내주시는 부모님도 떠올랐을 것이다. 대체 나라를 빼앗긴 이 시대에 무엇을 하기 위해 영문학을 배우겠다고 내 나라를 빼앗은 일본으로까지 온 것이란 말인가?

윤동주, 그는 무얼바라 다만 홀로 침전하고 있었을까?

나라가 처한 현실 앞에서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하고, 시를 쓰는 일 뿐이다. 넘을 수 없는 현실을 뒤로하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학비 봉투나 받아 시를 한 줄 적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그에게, 그보다 쉬운 일이, 그보다 괴로운 일이 또 있었을까? 슬픈 천명을 타고 났음을 자각하고, 누구보다 마음과 언어를 갈고 닦아 시를 쓰는 윤동주에게, ‘쉽게 쓰여진 시’라는 역설은 자신의 본분과 나라와 민족이 처한 현실, 그럼에도 그칠 수 없는 문학에 대한 윤동주의 열정이 모두 담겨 있다. 비좁은 육첩방, 남의 나라에 앉아서 말이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1942. 6. 3.)

글 박성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