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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travel abroad

사원에서 우리는 모두 맨발이 된다

by연합뉴스

미얀마에서 보낸 8일

미얀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게 왠지 미안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기웃거리는 여행객이라는 소심한 자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방인을 보고 활짝 웃는 그들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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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 근교 아마라푸라에 있는 우베인 다리. 해 질 무렵 모든 사물은 실루엣이 된다. [사진/권혁창 기자]

6월 1일 토요일…미얀마와 선입견

혼자 인천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는 일일지 모르겠다. 외로움과 싸워야 하고, 낯선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홀로 감당해야 한다.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얻는 수확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고독을 감내한 보상은 결코 적지 않다.


미얀마(Myanmar)는 1989년 이전에는 버마(Burma)로 불렸다. 전체 인구의 68%가 버마족인데, 집권한 군부는 소수 민족에 대한 통합 차원에서 나라 이름을 바꿨다.


버마라는 이름을 '너무 잘' 기억하는 나는 궁금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가졌던 '버마'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미얀마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경비 절약을 위해 직항이 아닌 인천-방콕(5시간 50분), 방콕-양곤(1시간 20분) 환승 저가항공편을 선택했다. 그 이후에는 양곤-인레호수-바간-만달레이의 일정인데, 미얀마 안에서는 시간 절약을 위해 모두 국내선 항공기를 타기로 했다.


양곤행 비행기 안. 옆 좌석 미얀마인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사전 주문한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넨다.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내 테이블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더니 자기 것을 같이 먹어보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저가항공을 많이 타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고맙지만 괜찮다고 사양한 뒤 혼자 생각했다. "미얀마 사람들이 순수하고 친절하다고 하더니 정말 감동이네" 그리고는 이 에피소드를 꼭 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약간의 추가적인 디테일이 필요했다.


나는 계속 이들이 미얀마인이라고 확신한 채 확인차 국적을 물었는데, 뜻밖에도 이들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온 여행객이었다. 아뿔싸. 오보와 선입견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게 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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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욱타지 파야 안에 있는 길이 67m의 와불 [사진/권혁창 기자]

6월 2일 일요일…저 멀리 빛나는 황금탑

양곤에서는 주재원으로 있는 친구 신세를 졌다. 그 친구 집에서 자고, 그가 차려주는 아침 식사를 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가이드 역할도 했다.


양곤 생활 3년 차인 친구가 제시하는 양곤 여행 요령은 이렇다. "관광객들이 양곤에 오는 이유는 미얀마 3대 불교 성지인 쉐다곤 파야(paya, 미얀마에서 불탑이나 사원을 일컫는 말) 때문이다. 온종일 볼 시간이 없다면 쉐다곤 파야는 오후 늦게 가는 게 좋다. 그래야 햇빛에 빛나는 모습과 조명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한 번의 방문으로 모두 볼 수 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일단 양곤에서 가장 큰 관광시장인 보족 아웅산 마켓과 거대한 와불(臥佛)이 있는 차욱타지 파야를 먼저 둘러본 뒤 저녁 무렵 쉐다곤 파야에 가기로 했다.


양곤의 길거리는 휴일을 맞아 밖으로 나온 시민들로 넘쳐났지만, 비수기여서 관광객이 줄어든 시장은 한산했다.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아 보였다.


차욱타지 파야 안에 있는 와불은 길이 67m, 높이 17m의 거대 불이다. 옆으로 누워 있는 와불은 부처가 열반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인데, 부처가 영원히 머물러 있기를 소망하는 뜻에서 만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교회나 절이 크다고 신앙심도 깊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미얀마에서는 그게 비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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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쉐다곤 파야 대탑의 야경 [사진/권혁창 기자]

오후 5시쯤 드디어 쉐다곤 파야로 향했다. 양곤 여행의 시작과 끝이라는 이 황금불탑은 해발 58m의 언덕 위에 99m 높이로 지어졌다. 당연히 양곤 시내 어디에서나 이 불탑을 볼 수 있다.


어디서나 보인다는 것, 누구든 볼 수 있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저기 저 멀리 황금색으로 빛나는 불탑을 눈으로 볼 수 있었기에 양곤 사람들은 오랜 세월 굳건히 불심을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쉐다곤을 보는 순간 나는 압도됐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불교 사원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는 모두 버려야 했다.


기원전 500년대 부처가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마침 인근을 지나던 상인 형제가 부처의 머리카락 여덟 가닥을 받아와 왕에게 진상했고, 왕은 이를 봉인해 세운 탑이 그 시초로 전해진다.


그러나 쉐다곤의 진가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 2천500년간 쉐다곤은 미얀마의 숱한 왕조를 거치며 수많은 왕과 가신, 일반 신도들의 금 보시를 받아 점점 높아지고 점점 거대해졌다.


이렇게 탑에 붙여진 황금은 6만㎏에 이르고, 탑 상층부는 4천351개(1천800캐럿)의 다이아몬드, 2천317개의 루비와 사파이어, 1천65개의 금종, 420개의 은종 등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됐다.


쉐다곤의 위대함은 부처의 것도, 왕의 것도, 승려들의 것도 아닌, 세속의 물질적 가치를 오로지 불심과 맞바꾼 모든 미얀마인의 몫이다.


쉐다곤의 황금탑은 푸른색에서 오렌지색으로, 이어 검푸른색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계속 그 색과 빛을 달리했다. 멍하니 금탑과 노을빛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을 뇌리에 각인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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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쉐다곤 파야의 작은 불탑들 [사진/권혁창 기자]

6월 3일 월요일…한국에서 볼 수 없는 것


양곤순환열차를 타보고 싶었다. 열차에 타고 멍하니 양곤의 도시 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무엇보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서민들이 끊임없이 타고내리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 바로 순환열차 안이라는 얘기를 들어서다.


양곤중앙역에서 어렵게 물어물어 열차 타는 플랫폼까지 갔지만, 공교롭게도 순환열차는 수리 중이어서 운행이 중단됐다고 한다. 대신 다른 열차에 잠시 들어가 사진 몇 컷을 찍고 낡디 낡은 중앙역사를 휙 둘러봤다.


절반 이상 벗겨진 페인트,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 곳곳에 누워 있는 길 잃은 견공들. 도저히 움직일 것 같지 않은 일본제 중고 열차…. 수십 년간 방치된 듯한 양곤 중앙역은 21세기 한국 땅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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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중앙역에 서 있는 열차 [사진/권혁창 기자]

공항으로 가기 전 양곤 남쪽에 있는 술레 파야 인근을 걸었다. 이 구역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유럽식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양곤 시청(1927년 건축), 에야와디 은행(1910년 건축)이 나란히 있고 그 건너편에는 1855년 미국인 선교사가 지었다가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뒤 1952년 재건된 임마누엘 침례교회와 고등법원(1914년 건축), 미얀마 국영통신사 등이 제각기 개성을 뽐내며 서 있다.


이곳만 보면 유럽인지 미얀마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식민지 문화유산이 이렇듯 고스란히 제 모습을 간직하게 된 건 미얀마의 오랜 고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양곤 시내를 걷다 보니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첫째,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볼 수 없다. 둘째, 한때 영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차량통행이 좌측이 아니라 우측이다.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군부가 어느 날 갑자기 양곤 시내 오토바이 금지령을 내리고, 차량통행도 바꿨다고 한다. 그 배경에 점성술사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말은 귀를 의심하게 했다.


오후 늦게 양곤을 떠나 인레호수(Inle Lake)에서 가장 가까운 헤호(Heho)공항에 내렸다. 이제부터 진짜 혼자만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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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유럽식 건축물인 양곤 시청. 1927년에 지어졌다. [사진/권혁창 기자]

6월 4일 화요일…열대의 호수를 가로지르다

아침 7시 반쯤 보트를 탔다. 초승달처럼 생긴 길고 날렵한 모양의 보트에는 뱃사공과 나 둘뿐이다. 종일 인레호수를 돌아다니는데 사실상 배 한 척을 전세 낸 셈이다.


가격은 2만5천차트(약 1만9천원). 비수기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나중에 다른 여행자들을 통해 호텔이 아니라 관광정보센터 등에 신청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보트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이 주는 속도감, 공기를 가르는 묵직한 엔진음, 호수 표면에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태양… 보트에 올라탄 지 10분 만에 열대우림의 호수 한복판에서 맛볼 수 있는 청량감과 해방감을 만끽했다.


해발 880m의 고원에 위치한 인레호수는 길이 22㎞, 폭 11㎞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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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에서 바라본 인레호수 수상마을 [사진/권혁창 기자]

주변에 17곳의 수상마을이 있다. 이곳엔 인타족, 샨족, 파오족 등 소수민족들이 산다. 이들은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호수 위에 밭을 일궈 토마토 등을 수경재배하기도 한다.


보트투어는 호수 위에 있는 사원과 수도원, 특산품을 만들어 파는 상점 등을 빠짐없이 거치는데, 좀 긴 투어 코스에는 인데인(Inn Dein)이라는 고대 유적지를 들른다.


인레호수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이곳에 가면 고즈넉한 숲속에 자리 잡은 1천여개의 스투파(사리탑)를 보고 놀라게 된다.


기원전 3세기경 인도의 아쇼카왕이 불교 사절단을 파견했을 때 부처님의 성유물을 봉안하기 위해 이곳에 탑이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사원 중앙에 있는 금빛 탑들을 중심으로 사방에 줄지어 서 있는 흰색과 갈색의 빛바랜 탑들을 보고 있자면, 뒤늦게 발견된 고대의 폐허 같기도, 지구상의 풍광이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득함과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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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레호수 서쪽에 있는 고대 유적지 인데인(Inn Dein) [사진/권혁창 기자]

뱃사공이 데리고 간 곳 중에는 미얀마 소수 민족 중 여성들이 목에 링을 거는 관습을 지닌 빠다웅(Padaung)족이 사는 집들이 있다.


'목이 긴 여인'이라고 하면 태국과 미얀마 국경 산악 지역에 사는 카렌족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목에 링을 걸고 있는 여인들은 원래 미얀마 소수 민족인 카렌족의 일부인 빠다웅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부가 인레호수에서 관광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이 배에서 내리면 이들은 공예품들을 파는 수상가옥 안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준다. 기이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히며 생계를 잇는 것이다.


빠다웅족 여성은 전통에 따라 5세가 되면 1㎏의 링을 걸기 시작하고 이후 2∼3년 단위로 링을 추가한다. 목을 떠받치고 있는 링을 제거하면 목에 힘이 없어져 위험해지기 때문에 한번 링을 걸면 죽기 전까지는 벗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이 링을 걸게 된 기원에 대해선 설이 여러 가지다. 맹수가 먹잇감을 물 때 목을 무는데 링이 있으면 물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노예무역에서 링을 목에 착용한 여인들은 상품 가치가 없어 잡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대의 이유로 긴 목을 가진 여성은 미인으로 간주돼 좋은 신랑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링을 걸어서 목을 길게 늘였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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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링을 걸고 있는 빠다웅쪽 여성들 [사진/권혁창 기자]

6월 5일 수요일…물 위의 사람들

바간으로 넘어가기 전에 남은 반나절 동안 자전거를 타고 마잉타욱(Maing Thauk)이라는 수상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우기라고 하더니 양곤에서 2∼3시간 비가 내린 것을 빼고는 강렬한 태양에 바짝 마른 날씨가 이어졌다. 반소매 셔츠를 입은 게 잘못이었다. 자전거 핸들을 잡은 양쪽 팔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린다.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마잉타욱은 모든 것이 물 위에 있었다. 집도, 학교도, 상점도, 식당도, 화장실도… .


유일한 교통수단은 나룻배다. 자연히 모든 집에 최소한 한 개 이상의 배가 있다.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넌 뒤 주민이 뱃사공인 쪽배를 타고 20분간 마을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하수도 시설이 걱정됐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든 집에 별채 식으로 화장실이 있고, 그 밑에 플라스틱 파이프가 연결돼 있는데 파이프는 물 위 수풀 속으로 들어가 있다. 악취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선 정화조와 하수관은 제대로 돼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 나오는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다리 위에 앉아서 데이트를 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트할 때 주로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했다. 물 위에 살아도 데이트할 때 하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저녁 6시쯤 바간에서 가장 가까운 낭우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가는 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숲과 불탑이다.


바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다.


바간에 400만 개의 탑이 있다는 미얀마 속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약 5천 개의 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의 건축가 피에르 피차드가 1992년 발간한 '바간 유적의 목록'에 따르면 바간의 불교 건축물 숫자는 2천834개라고 한다. 내일 하루 나는 몇 개의 탑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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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레호수 동쪽의 수상마을 마잉타욱(Maing Thauk)으로 들어가는 다리 [사진/권혁창 기자]

6월 6일 목요일…불탑과 이바이크

새벽 4시 30분. 일출을 보기 위해 일어났다. 여관(바간의 숙소는 호텔이 아니라 인(Inn)이다) 주인이 문 앞에 전날 예약한 이바이크(e-bike)를 세워 놓았다.


난생처음 타보는 이바이크는 사실상 오토바이나 다름없었다. 전동 자전거라기보다는 전기로 가는 오토바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헬멧을 쓰고 구글맵을 켠 휴대전화를 이바이크 컵홀더에 올려놓았다. 낯설고 여전히 깜깜한 이국의 도로 위를 조심스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늘색이 바뀌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온몸으로 느끼는 바간의 새벽.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단박에 이해됐다.


일출이나 일몰을 위한 유료 전망대에 올라갔다. 사방에 우거진 수풀과 벌판이 있고 그 사이사이로 적갈색 불탑들이 무늬처럼 박혀 있다.


수풀과 탑 너머로는 북서쪽으로 에야와디강이 흘러가고, 남동쪽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지평선 사이에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막 태어난 태양을 향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저 광활한 벌판을 이바이크로 누비며 불탑을 순례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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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바간의 불탑들 [사진/권혁창 기자]

잠깐 역사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바간은 미얀마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바간왕조의 수도였다. 미얀마족이 이곳에 정착한 것은 1세기로 추정되지만, 9세기에 국가의 기틀이 마련됐고, 1044년 아노라타왕이 통일국가를 세우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황금기를 맞았다.


당시 미얀마는 불교와 힌두교, 토속신앙인 '낫'(Nat) 등이 혼재해 있었는데, 아노라타왕은 상좌부불교(소승불교)를 국교로 정해 민족의 정신적 통합을 꾀했다. 이후 아들인 찬싯타왕, 알라웅시투왕, 나라투왕 등 여러 대에 걸쳐 수많은 불탑과 사원이 건축됐다.


바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63m의 탓빈뉴 사원이다. 유럽의 중세시대 성채를 연상시키는 웅장함과 고색창연함이 잠시나마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는다.


탓빈뉴를 세운 알라웅시투왕은 평생 내세의 부처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도 '미래의 부처'라는 뜻이다.


그가 지은 또 다른 건축물인 쉐구지 사원 벽에는 '나는 비슈누나 마왕과 같은 것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위대한 왕으로 태어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단지 부처가 되길 원할 뿐이다. 나는 윤회의 강 위에 길을 만들어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극락으로 이끌 것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런 불심으로 1144년 건설된 것이 당대 최고의 사원인 탓빈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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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의 쉐산도 파야. 일몰을 보기 좋은 장소였지만, 2016년 지진 이후 테라스에 오르는 것이 금지됐다. [사진/권혁창 기자]

바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꼽는다면 아난다 사원이 아닐까 싶다. 1105년 찬싯타왕이 지은 이 사원에 대해 1970년대 한 건축가는 "아난다 사원보다 완벽한 대칭 균형을 보여주는 건물은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왕이 인도에서 온 승려 8명의 방문을 받고 그들이 신통력으로 보여준 난다물라 동굴사원의 모습을 토대로 사원을 건축했다고 한다.


이 사원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위에 난 창으로 들어온 빛이 부처의 얼굴 위로 곧바로 떨어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바간에는 힌두교 사원도 딱 한 곳 있다. 10세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힌두 사원 낫라웅 차웅은 '정령들을 가둔 사당'이라는 의미다.


통일왕국을 세운 아노라타왕은 당시 민중들이 믿던 낫 신들을 힌두교의 인드라 아래에 두고, 인드라를 부처님 아래에 자리하게 함으로써 낫 신앙과 힌두교 모두를 불교에 귀속시켰다. 그 낫 신들을 가두어 둔 사원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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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 사원 전경 [사진/권혁창 기자]

바간왕조는 1287년 몽골의 공격에 무너졌고 그 영화로움도 끝났다. 오랫동안 바간은 폐허로 방치됐다. 전 세계적인 관심으로 복원과 보수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지진으로 유적이 파괴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나 그 불심이 미얀마인들에게 여전히 살아있듯, 바간의 불탑들은 믿음으로서 구원의 길에 이르고 싶은 모든 인류의 가슴 속에서 그 원형을 유지할 것이다.


인레호수나 양곤보다 바간은 훨씬 더웠다. 낮 기온은 어느새 35도다. 이바이크로 폭염을 뚫고 하루 동안 모두 18곳의 사원을 접수했다. 미얀마의 모든 사원에선 예외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야 한다. 모두 평등한 맨발이다.


온몸이 젖을 정도의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적도의 열기를 간직한 사원의 돌바닥은 제대로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사원 안 바람이 통하는 그늘진 통로나 회랑에 털썩 주저앉아 1천년 전 그려진 벽화를 바라보자면 어느새 더위와 고통은 간데없고 그 옛날 이곳에서 기도하며 그림 그리던 사람들의 마음이 한 줄기 바람처럼 귓전에 속삭이는 걸 들을 수 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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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 왕궁. 아직도 복원 중이다. [사진/권혁창 기자]

6월 7일 금요일…왕궁은 늘 쓸쓸하다

오전 10시 미얀마 국내선을 타고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였던 꼰바웅(Konbaung) 왕조의 수도이자 미얀마 제2의 도시다.


여행 오기 전에 읽은 아미타브 고시의 소설 '유리 궁전' 때문에 만달레이의 왕궁은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만달레이 왕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불탄 뒤 다시 건축한 것이고, 그나마 아직 복원이 완료되지 않아 썰렁한 느낌마저 주기 때문에 핵심 관광 포인트는 아니다.


하지만 꼰바웅 왕조의 마지막 왕인 띠보왕과 왕비 수파야라트가 1885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만달레이에서 인도로 유배를 가게 되는 소설의 배경 때문에 왠지 왕의 마지막 숨결이 느껴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 관광객들을 고려한 듯 왕궁엔 밀랍 인형으로 만든 띠보왕 부부가 방문객을 맞고 있다. 관광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왕궁은 늘 쓸쓸하다. 박제화된 띠보왕은 그 쓸쓸함에 묘한 연민까지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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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탑들이 줄지어 서 있는 쿠토떠 파야 [사진/권혁창 기자]

인도나 미얀마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독립을 위해 매우 복잡하고 힘겨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당시 미얀마는 동남아에 야심을 품고 있던 일본을 도와 영국을 내쫓은 뒤 다시 총부리를 돌려 일본을 몰아냈다.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와도, 파시즘과도 싸워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해낸 사람이 아웅산 수치 여사(현 미얀마 국가자문역)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이었다. 베트남의 호찌민이 있다면 미얀마엔 아웅산이 있었다.


미얀마인들은 그 딸인 수치 여사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국민이 군부의 폭력에 신음하고 고통받을 때 수치 여사는 곁에서 함께 저항했다.


왕궁을 둘러보니 군부의 폭력에 휘둘렸던 미얀마의 우울한 현대사가 우리나라 역사와 오버랩됐다.


미얀마는 인권탄압으로 오랜 세월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받았던 경제 제재가 풀렸지만, 최근엔 '로힝야 사태'로 다시 고립의 위기에 처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달레이에선 왕궁보다는, 돌에 새겨진 세계에서 가장 큰 책들을 소장한 탑들이 줄지어 있는 쿠토떠 파야, 불타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오리지널 왕실 건축물인 쉐난도 짜웅, 만달레이 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만달레이 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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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 힐에 있는 사원 내부 [사진/권혁창 기자]

만달레이에선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와타나베 씨와 동행했다. 미얀마에서 오래전 주재원으로 일했던 그는 따뜻하고 적극적이며 영어도 유창했다. 나이와 관계없이 우리는 곧바로 친구가 됐다.


택시를 불러 만달레이 근교에 있는 우베인 다리를 그와 함께 갔다. 길이 1.2㎞의 나무다리로 미얀마 소개 책자의 표지나 우편엽서에 단골로 등장한다.


걸어서 왕복했으니 2.4㎞를 걸었고, 돌아와선 해가 질 때를 기다린 뒤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오렌지빛이 감도는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다리와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감동적이다. 찍은 사진을 보니 지상의 풍경이 아니라 로스코의 추상화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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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터벅걸음으로 탁발에 나선 동자승 [사진/권혁창 기자]

6월 8일 토요일…동자승의 터벅 걸음


미얀마 여행이 끝났다. 일찍 일어나 공항으로 가는 일만 남았는데, 호텔 창밖을 내다보니 바로 앞 길거리에 재래시장이 섰다. 아침 7시인데도 벌써 시끌벅적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려 있다. 1시간쯤 여유가 있어 휴대전화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시장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길거리 좌판에는 고기, 생선, 야채 등 식재료에서부터 공산품까지 없는 게 없다.


시장 인파 중엔 줄지어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탁발하는 승려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신도들에겐 대중공양(大衆供養)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여성이 입는 분홍색 승복의 행렬도 보인다. 5살쯤 됐을까. 앳된 동자승이 앞서간 승려들에 뒤처져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안쓰럽다.


호텔로 돌아왔지만 시장터 좌판에 생선을 얹어놓고 파는 여성 상인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는다. 다른 식재료와 달리 비린내가 진동하고 파리떼가 꼬여 잠깐도 근처에 가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그 상인은 묵묵히 앉아 생선이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린내와 파리떼 속에서 생선을 파는 게 그의 생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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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상인 [사진/권혁창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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