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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다시, 서정성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얼마 전에, 제 친구가 페이스북에 영화 ‘시네마천국’의 주제곡을 링크하고 프로필 사진을 그 주인공 꼬마로 바꾼 것이 제 타임라인에 올라왔더군요. 많이들 알고 계시듯이, 그 음악의 작곡가는 엔니오 모리꼬네입니다.

다시, 서정성 엔니오 모리꼬네(Enn

엔니오 모리꼬네

모르는 걸 알려주는 계몽적인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들 알고 있는 걸 쓰면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사람에 대해서 쓰는 걸 좀 미뤄두긴 했습니다. 또 비교적 근과거의 영화들을 다루겠다고 해놓고 시작한 터라 엔니오 모리꼬네는 상대적으로 먼 과거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안쓰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아직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곡가인데다, 심지어 대가이기도 하고, 지난 아카데미에서는 놀랍게도 처음으로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 다른 상복은 많았던 사람인데 아카데미에서는 후보에는 자주 올랐었지만 상을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어요.

 

엔니오 모리꼬네하면 우선은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의 주제곡들이 떠오릅니다.

이 인트로는 아마도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주제곡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도 이걸 들으면 ‘아 서부영화의 그 곡’이라고 인식할 정도니까요. 일렉기타와 전자악기의 음색이 두드러지는 이 음악은 클래식한 오케스트라 위주의 미국 서부영화의 음악에 비하면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한 음악이었을 겁니다. 비용을 고려한 현실적인 선택도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그러고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신선한 음악들은 예산이 많이 들어가서 소위 ‘땟깔’ 좋은 것들보다는, 좀 빈약한 듯 싶고 거칠기는 하지만 예산만으로는 커버가 안되는 아이디어나 노력이 더 비중을 차지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마카로니 웨스턴 시절의 모리꼬네 음악의 광팬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동안은 그의 영화에서 예전 모리꼬네의 음악들을 일종의 아이콘으로 막 차용해서 넣어왔지요. 그러다 이번 ‘헤이트풀8(The Hateful Eight)’에서는 비로소 오리지널 음악을 의뢰해서 만들어 썼습니다. 공식 사이트에 보면 녹음할 때도 참 좋아하고, 음반도 그 자리에서 예약해두었다고 그러더군요. - 감독과 음악감독 콤비에 관한 내용을 쓰게 될 일이 있을 때 다시 언급할 것 같습니다.

 

여튼, 무법자 시리즈나 갱스터 무비의 음악으로 모리꼬네를 기억하기 좋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모리꼬네 음악의 최고의 장점은,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예쁜 멜로디와 멜로디에서 기인하는 독보적인 서정성입니다. 쉽게 말하면, ‘감상에 젖어들기 좋다’는 겁니다.

영화 ‘시네마천국’의 사운드트랙은 언젠가 다른 잡지에서 본 건데 한국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중에 1등이라고 하는데, 영화의 순간마다 변주를 하기는 하지만 반복되는 그 예쁜 멜로디가 마지막 부분에 다시 나오면 북받치는 듯한 감정을 추스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리꼬네의 이런 서정적인 음악은 ‘미션’, ’러브어페어’ 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말레나(Malena)’의 사운드트랙도 참 좋습니다. 내용만으로는 소년이 미모의 동네 유부녀를 사모하면서 성적인 환상을 가지는 거라 예쁘기만 할 수는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여인에 대해서 드러나면 동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때에 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올 정도에요. 소년의 환상쪽에 포커스를 둔 음악도 좋은데, 그건 다소 유머러스한 부분이 있구요, 서정적인 부분은 말레나 주제들에 몰려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운드트랙은 ‘피아니스트의 전설(Legend of 1900)’의 사운드트랙입니다.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아이가 평생을 배에서 지내면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드디어 배에서 내릴 결심을 했지만 뭍에 오르기 직전에 포기하고 도로 배로 들어갑니다.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내용이고, 음악도 미국행 이민선이라는 배경 때문에 초기 재즈스타일의 삽입곡이 많습니다. 신선함 면에서는 이전의 무법자 영화나 갱스터 무비들의 음악들보다는 좀 식상한 부분이 있긴 한데, 그 서정성만큼은 여전합니다.

비슷한 때에 ‘타이타닉’이라는 워낙 걸출한 영화가 있어서 많이 알려진 영화는 아닌데, 저는 이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사실은, 모리꼬네 음악이 영화를 보는 관객한테 깊이 각인될 수 있는 것은 영화에 얹힐 때 상당히 단순하게 반복하는 용법때문이기도 해요.


누구의 테마, 무엇의 테마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의 곡들은 내용적으로는 같은 모티브를 갖고 있는 음악인 경우도 많구요, 제목만 다르게 붙인 같은 음악인 경우도 꽤 있습니다. (많은 영화의 사운드트랙들은 주제를 강조하려고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긴 합니다.)


단순 반복을 하게 되면 지루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정작 들어보면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고 또 듣고 싶게 만드는 예쁜 멜로디와 막연히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서정성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 사람만의 장점입니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최근작이라고 해서 음악을 먼저 듣고 있는 사운드트랙 한 부분의 링크를 걸어둡니다. 많이 힘을 빼고 만들었는지 편안하고 좋습니다.

글 김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