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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조선인 비하’ 일본인 교장
패대기친 소년 임창규

by직썰

백산면 원천리에 살았던 김용화(1919∼2018)가 스물네 살 때 찍은 사진과 비교적 최근의 모습

여인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사진관에서 찍은 인물사진인데도 흔히 보는 근엄하고 경직된 표정이 아니다. 조리개 개방으로 뭉개진 배경을 등지고 여인은 오른쪽으로 15도쯤 몸을 틀고 있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여인의 손은 얌전히 무릎 위에 포개져 있다.

 

때는 1942년 해방을 3년 앞두고 여인은 돈화문 근처 어떤 사진관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감옥에 있는 독립운동가 부친 옥바라지를 위해서 취직해야 했던 여자는 이력서에 붙일 사진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지운 김철수. 여인은 2018년 100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정재철의 <사진으로 보는 해방 전 부안풍경>(2016, 밝)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내력들은 칠십몇 년의 시간을 거슬러 가 우리를 해방 공간으로 데려다준다. 누구나 한번 미소로 스쳐 갈 사진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의 켜는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특정 시기의 정지된 시간과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적 공백을 환기해 준다. 그게 사진이 가진 힘일까.

 

이 아름다운 사진은 2016년 3월 초순에 간행된 <사진으로 보는 해방 전 부안 풍경>(아래 <부안풍경>)에 실려 있다. <부안풍경>은 전북 부안의 부안 역사문화연구소에서 매년 두 차례 펴내는 잡지 <부안이야기>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해 온 정재철 선생의 노작이다.

 

동시에 이 책은 부안 역사문화연구소가 천착해 온 지역사 연구의 첫 결실이다. 이 책은 ‘부안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자 애써 온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모은 ‘부안 역사문화연구소 총서’ 제1권인 것이다. 부제 ‘시골 역사 선생의 지역사 찾기’는 이 책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 주고 있다. (관련 기사: 지자체 지원 거절하는 잡지, 다 이유가 있다)

부안 역사문화연구소의 ‘지역사 연구’의 성과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된 ‘지역사’ 연구는 ‘1970년대 이후 중앙과 지배층 중심의 역사 서술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시작’(삼척대 배재홍)됐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이에 관한 관심은 한층 높아졌지만 ‘지역사’라는 용어의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데서 보듯 그것은 아직 ‘한국사 연구의 한 분야’로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지역사 연구는 흔히 ‘향토사가’, ‘향토사학자’ 등으로 불리어 온 비전문적인 연구자에 의해 수행됐다. 그러나 이제 지역사 연구는 전문 역사학자들도 참여하면서 객관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부안 역사문화연구소에서 펴낸 부안 역사문화연구총서는 이러한 지역사 연구의 구체적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역사 교사로서 지역사를 다뤄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찾지 못한 데서 오는 고민과 성찰을 고백한다. 그의 화두는 언제나 ‘부안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물음이었고 지역 어른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자료를 모으는 일을 통해서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책 <부안풍경>은 그가 찾은 답의 일부인 셈이다.

 

<부안풍경>은 제목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의 근·현대 지역생활사’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지은이의 말대로 “부안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역사와 시대의 부름을 피하지 않고 상처를 뒤집어쓴 채 맨몸으로 맞선 사람들에 대한 역사 교사로서 조그만 헌사”(머리말)다.

 

255쪽의 책자에 담긴 사진은 모두 빛바랜 오래된 흑백사진이다. 개중에는 앞의 사진처럼 선명한 것도 더러 있지만, 내용을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형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그 사진이 함축하고 있는 배경과 사연을 정감 어린 시선으로 추출한다. 그것은 물론 시대를 넘어 이어진 지역적 연대의식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역사 교사 정재철에게 역사는 무슨 거대한 사건이나 담론이 아니다. 그는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백성들이 교직해 낸 크고 작은 일상의 삶도 궁극적으로 역사와 이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은 마을에 무슨 역사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이 나고 서로를 죽이는 큰 불행을 만나야 역사인가. 이곳에서 숨 쉬고 사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과 애환도 역사가 아닐까.” - <부안풍경> 74쪽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제1부는 ‘사진 한 장으로 보는 부안 풍경’이다. 저자는 변산교 개통식과 일본의 조선 유학생들이 봄맞이를 찍은 사진, 꽃자주색 비단 방석의 아기 돌 사진, 광산기술양성소의 졸업사진 등에서 일제강점기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네 삶을 읽어낸다.

백산면 삼거리의 ‘약산이네 점방’ 앞. 와카야마의 이 가게는 점원만 20명이나 되는 대형 상점이었다. 약산은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주둔한 부령 공립국민학교와 1936년 가람 이병기가 찾은 채석강, 일본인 거리 본정통, 줄포항 시가지, 1933년의 아동성경학교 사진 따위에 드러난 시대의 아픔과 삶을 잡아내는 힘의 원천은 앞서 밝힌 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시대를 읽어내는 공감의 시선이다.

사진에 드러난 ‘시대와 민족의 현실 읽기’

예의 사진들에 드러난 것은 개인이지만 역사 교사의 눈은 사사로운 개인의 삶을 넘어 거기서 시대와 민족의 운명을 읽어낸다. 그는 변산 들어가는 길목에 새로 놓인 ‘해창다리’에서 일제의 경제적 침탈을, 징병과 징용,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의 슬픔과 민족의 한을 풀어내는 것이다.

 

2부는 ‘이야기로 읽는 부안 문화’다. 사진에 담긴 시대와 사람들을 정겹게 따라간 1부에 비기면 2부는 각종 통계자료 등을 원용해 그 시대와 사람들의 삶을 재현해낸다.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인들의 사업체, 도정 공장과 양조장 따위를 통해 일제 수탈과 ‘술 식민지’의 단면을, 그리고 그런 업체에 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한 농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37년에 읍내에서 개관한 소화극장을 통해 소개되는 부안 사람들의 ‘시네마 여행’은 매우 시시콜콜하다.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홍보 일색의 뉴스와 승전보를 다루는 전쟁 영화만을 봐야 하는 궁핍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서구 생활양식이 고스란히 소개된 문화의 창구였기 때문이다.

 

‘1938년 줄포 소학교의 가을 운동회’는 마치 저자가 직접 겪은 일처럼 상세하고 정감이 넘치는 기록이다. 운동회가 준비되는 전 과정과 지역민들의 축제로 기능하고 있는 운동회 당일의 풍경도 흥미롭다. 그러나 저자는 각종 경기나 내용이 일제의 전시 근로 동원체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 행사가 아이들을 길들이는 훈련과정이자 통제수단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제3부는 ‘인물로 엮은 부안 역사’다. 한말 부안의 의병 투쟁을 추적하고 일제에 강제 징용된 14살 변산 소년의 인생유전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백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삶은 곧 그 지역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었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을 보면 부안 출신은 33명이지만 이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기려진 이는 12명에 그친다. 나머지 21명은 어떻게 되었을까(2016년 기준). 1909년 일제의 호남 의병대학살 때 희생된 이들은 누구인가. 한말의 의병 선봉장 김낙선(1881~1925)과 함께 일제와 유격전을 벌였던 12명의 동지는 어디로 갔을까. 저자는 묻혀버린 이들의 역사를 안타깝게 호명하고 있다.

 

형과 호적이 바뀌는 바람에 14살에 징용에 끌려가야 했던 변산 소년은 천행으로 살아서 돌아왔다. 그는 17살에 다시 한국전쟁에 참전해 부상해 제대했다. 그리고 가난과 병마 속에 근근이 살아가며 그는 저자에게 ‘이 고생을 하며 사는 게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가’고 말한다. 역사는 이들 희생자에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왼쪽부터 열네 살 때 징용으로 끌려간 김태수, 식민 통치를 비판했다 투옥된 사무원 최상욱, 부모와 민족을 비하하는 일본인 교장을 패대기친 소년 임창규

조선 공산당 책임 비서를 역임한 사회주의자 김철수(1893~1986)의 삶도 아픔 없이 읽을 수 없지만, 정작 내게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투옥된 평범한 교통회사 사무원과 군농회 지도원 이야기가 더 간절하게 다가왔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한 이들의 삶도 기려져야 마땅하지만, 그 어려운 시대에도 자존을 잃지 않고 민족혼을 견지한 이른바 ‘무명 소졸’의 삶은 무심하게 저 과거사를 일별하고 마는 우리들 의식을 환기해 준다. 일제에 저항은커녕 순응한다고 해도 크게 나무랄 수 없는 무명의 백성들이 보여준 결기 앞에서는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던 것일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 이는 ‘일본인 교장을 패대기친 소년 임창규’다. 이 고등과(6학년을 졸업하고 입학하는 2년제 학급)의 열일곱 살 소년은 학교 운동장의 가마니틀을 훼손해 버린다. 교장실로 불려가 두들겨 맞고 있던 소년은 부모를 욕하고 ‘반도인’ 운운하며 민족까지 비하하는 일본인 교장을 마룻장에다 패대기치고 유리창을 깨고 달아난 것이다.

학생들의 가마니 짜는 것을 지도하는 아베 교장. 백산공립보통학교 1932년의 앨범에서

부령 공립국민학교(부안초등학교) 학생들은 운동장에 설치한 가마니틀 60대에 달라붙어 전쟁물자용으로 쓰이는 가마니를 짜야 했다. 때는 1944년, 일제의 전시 동원체제는 초등학생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다

소년다운 정의감과 저항의식에서 비롯됐지만, 이 사건은 불온한 행동으로 치부되어 소년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저자는 소년이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일본에 길드는 것을 용감하게 거부하고 일제의 전쟁 준비에 자기 나름의 저항을 시도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17세 임창규의 꿈과 행동은 정말 무모하고 불온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저자가 자신에게 되묻는 것으로 마감된다. 그것은 부안의 역사와 부안 사람들의 삶을 천착하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와 일정하게 이어져 있다. 저자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을 넘어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묻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고장의 인물이나 지리, 역사를 평면적으로 나열하여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에 집착’(배재홍)했던 한 세대 이전의 향토사가들과 차별되면서 부안 역사문화연구소의 궁극적 지향과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역사와 사람을, 그것도 식민지 시기의 삶을 다룬다. 특정 지역과 특정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은 전라도든 경상도든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근·현대 지역생활사’로서 이 책의 보편적 성격은 부정할 수 없다. 경상북도 구미에 사는 내가 이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역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쳐 온 저자는 “지역이 지닌 아픔의 기억과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인물 찾기에 노력했으며, 이런 과정에서 증언자로 만난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며 이 책이 ‘지역 분들의 도움의 결과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소 창립 8년 만에 이 책을 출간함으로써 ‘부안 역사문화연구소 총서’는 본격적 지역사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인구 6만의 시골에서 여러 편견을 넘어 부안역 사문화연구소가 열어가는 지역 문화의 미래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도 우리 독자들의 몫일 터이다.

 

직썰 필진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