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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중앙일보의 ‘이불킥’, 어떻게 그 사설은 ‘성지 글’이 됐나

by직썰

“어떻게 하든지 이 나라 경제가 ‘폭망’하기를 경쟁하듯 기원하고 있는 것 같다.”

평생 주식 한 번 가져본 적이 없고, 이른바 ‘재테크’ 따위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나는 경제지를 구독한 적이 없다.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하다가도 경제지 기사가 나오면 ‘패스’하는 것도 그래서다. 나는 경제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경제 뉴스를 전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방면에서 일하는 주변 사람에게서 들은 위 ‘전언’은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관한 공격성 기사가 이른바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 못잖다는 걸 가끔 확인하곤 한다. 요즘 조중동은 종편으로 날개까지 달고 현 정부에 대한 저격을 전방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조선이 요즘 ‘미스터 트롯’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 등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TV조선을 소유하고 있다면 동아는 채널 A를 갖추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앙일보다. 손석희가 이끄는 JTBC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지금 중앙은 독야청청, 현 정부에 대한 저격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의 대정부 공격은 거의 ‘신들린 수준’처럼 보인다.”

글쎄, 마찬가지다. 나중 포털에서 제목을 보고 불러낸 기사가 조중동이면 이내 닫아버리는 편이라, <중앙>의 ‘한 수’가 어떤 수준인지 잘 모르지만, 단연 압권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문제는 세련되게 포장을 하지만 그게 불과 며칠 만에 ‘뽀록’이 나버리는 경우다.


최근 우한 교민 수용 시설을 천안에서 아산, 진천으로 옮긴다는 단독 기사로 재미를 본 중앙은 ‘코로나19’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까고, 대신 일본의 대응을 추어올리다가 된통 덮어썼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중앙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크루즈선 봉쇄 대응’을 배워야 한다는 사설을 썼는데, 야심 차게 대통령까지 저격했지만, 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고스란히 발등을 찍힌 것이다. 이 명 사설을 쓴 이는 물론 논설위원일 테지만, 그는 스타일을 다 구겼다.

일본의 크루즈 관광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일본은 이 배를 봉쇄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다 위 감옥'이 됐다.

“6일 오전 일본은 요코하마항에 들어온 크루즈선 전체를 봉쇄했다. 배 안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3700여 명의 탑승객 전원을 열흘간 해상 격리했다. ‘예방조치는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것이다.”

말인즉슨, 크루즈선을 봉쇄한 일본 정부를 배워라, 그게 문 대통령이 말한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한 예방 조치’라고 짐짓 꾸짖었는데 아뿔싸, 상황은 전혀 반대로 전개된 것이다. 일본의 강력한 해상 봉쇄는 결국 이 크루즈 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바다 위의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13일에만 44명의 ‘코로나19’ 추가 감염자가 확인되면서 현재까지 감염 환자가 355명이나 발생했다. (2월 17일 오전 기준)


일본 정부는 안으로는 비판 여론에, 밖으로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크루즈선의 자유로운 입항을 허가하라는 권유를 받기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온라인상에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국’이 탄생했다는 조롱까지 받은 것이다.


결국, 인터넷에서 중앙일보 2월 7일 자 사설 ‘정부의 우왕좌왕·뒷북·눈치 보기가 신종 코로나 사태 키워’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끈 게시물을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장소에 빗대어 지칭하는 말”인 성지 글이 되기에 이르렀다.

중앙의 헛발질을 꾸짖은 것은 누리꾼만이 아니다. 진보언론도 가세했다. 한겨레의 안재승 논설위원은 12일 자 칼럼 “이성 잃은 조선·중앙의 ‘코로나19’ 보도”에서 ‘골때린다’는 속어로 이 사설을 저격했다.

“예방조치는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것이다”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골때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 같다. (……)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흘이 지난 5일에야 승객들의 식당·극장·수영장 등 공용시설 이용을 제한했다. 이를 모르고 사설을 썼다면 게으른 것이고 알고 썼다면 양심 불량이다.

정부 정책이나 시정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본령이다. 합당한 비판이거나, 다소 과하다 하더라도 개연성이 충분한 경우라면 아무도 그걸 시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백히 정부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기사는 이처럼 사실관계가 바뀌면서 자신의 발등을 찍은 것이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긴가민가했던 여론도 회복되고, 우한 교민 격리 수용도 칭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중앙이 설마, 그 사설을 쓰면서 우리의 대응이 실패하여 감염이 확산하기를 바랐을 리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헛발질은 그러한 시민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만든 것이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중앙이 어떻게 보도했나 궁금해져 검색하다 고발뉴스의 기사 “‘세월호 구조·수색’ 중간발표, 중앙일보엔 없다”(2019.11.1.)를 발견했다. 참사 당일 해경이 바다에 빠진 학생을 구조하고도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았는데, 구조 현장 헬기는 학생 대신 해경청장을 태웠다는 기사다.


더는 할 말이 없다.


직썰 필진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