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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애정의 착취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헝가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애정의 착취

(이미지 출처 : TBS)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가구의 형태 역시 변화하고 있다.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한 1인 가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선택한 2인 가구, 그리고 최근에는 단순히 거주 공간만을 공유하는 하우스메이트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불어 2016년 12월 종영한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아라가키 유이, 호시노 겐 주연)에서는 '고용 관계에 기반을 둔 계약 결혼' 생활을 선택한 두 남녀를 보여준다.

애정의 착취

모리야마 미쿠리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취직에 실패해 파견 사원으로 일한다. 그러나 이조차 해고당하고 아버지의 소개로 츠자키 히사마사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반면, 츠자키 히사마사는 IT 회사에 근무 중인 샐러리맨으로 한가롭게 주말을 보내기 위해 금요일에만 가사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35년 동안 모태 솔로인 '프로 독신남'이다. 이상할 것 없던 이 둘의 관계는 미쿠리의 부모님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결정하면서 변한다. 구직 활동을 위해 원래 살고 있던 요코하마에 남고 싶어한 미쿠리는 츠자키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하고, 츠자키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들은 '고용 계약에 기반을 둔 위장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이들의 생활은 계약에 따라 평탄히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여러 사건을 거치며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츠자키가 정리해고 대상이 되면서 이 둘의 관계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애정의 착취

연인이 된 후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고용 관계에서 연인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연인 관계가 추가된 것뿐이다. 그런데 고용주인 츠자키가 정리해고로 인해 고용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애정의 착취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츠자키는 미쿠리에게 고용 계약을 종료하고 '전형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가자고 제안한다. 일반적인 결혼 생활을 하게 될 경우 미쿠리에게 급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임금을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생활비를 늘리거나 저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정의 착취

그러나 미쿠리는 이를 거절한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묻는 츠자키에게 그녀는 대가 없는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애정을 빌미로 한 착취'라고 말한다.

 

한국을 기준으로 했을 때, 실제로 전업주부의 노동 가치를 임금으로 환산하면 그 연봉은 3745만 원이다. 현재 법원이 전업주부의 교통사고 피해보상금을 계산할 때 일용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인 '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계산했을 때, 2017년 일용노임은 10만 2628원이고 가사노동에 휴일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가사 노동의 가치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가사 노동이 실질적인 경제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이유로 전업주부를 '남의 돈으로 놀고먹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전업주부의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여성을 깎아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비하하고 깎아내리기 이전에 한국 사회의 현실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제로 인해 많은 여성이 고등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그 결과 대다수 여성이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성으로 인해 또 다른 선택권을 박탈당한 이들이 남성에 의해 무능력하다며 비하당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고 부당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한 이들은 비하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선택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만약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가사 노동 분담으로 인한 육체적인 부담이 요구되거나, 혹은 가사 도우미 고용으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이 요구될 것이다. 결국,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경제 노동이 아닌 가사 노동을 선택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쾌적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츠자키와 미쿠리처럼 고용 계약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착취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지 아니면 급료를 지급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감사의 마음과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치 출처 : CH W

자료 출처 : 이하나 기자, [가사노동 불평등 보고서③] 전업주부 연봉은 '3745만원', 여성신문

 

정욱진 에디터 glossy021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