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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여전히 대한극장을 찾는 이유

지금, 대한극장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지금, 대한극장

지난 4월 12일부터 14일까지 대한극장 옥상 정원에서 열린 루프탑 페스티벌

7080세대에는 ‘남태평양’, ‘벤허’ 상영하던 서울 대표 극장. 30년 전에는 자녀와, 지금은 옛 친구와 영화 보는 추억의 장소. 대학생 등 젊은 세대에는 옥상영화제, 플리마켓 등 ‘문화공간’ 대형 영화관에서 접하기 힘든 독립영화도 꾸준히 선보여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 앞에는 공공 휴식 장소가 있다. 대한극장에서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한 곳으로, 앉을 수 있는 널찍한 나무데크와 벤치들이 놓여있다. 이 곳에는 직장인들, 그리고 어르신들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해 있다. 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영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7월 13일 금요일 오후 여섯 시, 홍대나 강남의 대형 영화관에는 한창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몰릴 시간이지만 대한극장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다양한 세대가 한 데 어우러진’ 모습은, 이 곳이 아니고는 쉬이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올해로 대한극장은 60주년을 맞았다. 1958년 2000여석 규모의 단관 극장으로 문을 연 뒤, ‘사운드 오브 뮤직’과 ‘벤허’ 등 인기 외화들을 70mm 필름으로 관객들에 선보였다. 1950년대 후반에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극장이었고, 이후 6,70년대에도 대형영화를 상영하는 대표 극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며 대기업들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영화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하자, 영화와 극장 산업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러 영화를 상영하는 멀티플렉스들이 도심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한극장 역시 25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극장을 보수하며 단관 극장 시대는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변화의 바람에 부응하며 멀티플렉스로 다시금 관객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형 영화관이 즐비한 오늘날의 서울 도심에서, 여전히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대한극장을 찾아온다.

35년 전, 아이들도 데리고 왔었지

지금, 대한극장

1959년 영화 '벤허'를 상영하던 당시 대한극장의 모습. 옥상을 포함해 총 8층으로 이뤄진 지금의 대한극장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강남구에 거주하는 90세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영화 한 편을 보려 대한극장을 찾았다. 특별히 대한극장을 찾아온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친구들을 만나면, 사방에서 모이는 장소가 충무로다. 교통이 좋고, 대한극장은 추억이 있기도 하니까.”라고 답했다. 대한극장에 관한 추억을 묻는 질문에는 “35년 정도 전에, 여기서 남태평양(1958년 개봉, 조슈아 로간 감독)이라는 영화도 보고, 어떤 기독교 영화도 봤는데 그때는 아이들도 데리고 왔었지.”라며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편 단관 극장이었던 본래 대한극장의 모습을 언급하며 “지금은 갈래가 많아서 영화를 고르기가 어렵다”며 “그래도 지금은 시설이 훨씬 더 크고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대한극장에서 “6.25전쟁 때의 영화를 다시 보고싶다. 자녀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35년전에는 자녀들과 함께,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옛 친구들과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는 ‘추억의 장소’가 바로 대한극장이다.

독립 영화에 관심 많아 자주 찾아와요

지금, 대한극장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프랑스, 2018.05.08)' 한국 45개 상영관 중 대한극장도 포함되었다.

한 시간 거리의 경기도에 거주하는 23세 대학생은 독립 영화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다른 대형 영화관들을 마다하고 대한극장에 자주 찾아온다. 대형 영화관에서 잘 접할 수 없는 영화들을 이 곳에서는 꾸준히 상영하기 때문이다. “요새 대형 영화사들로 인해서 흥행작에만 시간대가 몰려 있고, 정말 보고 싶은 영화는 하루에 한 번만 상영하기도 해요. 대한극장은 비교적 시간대도 공평한 것 같고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해서 자주 와요.”라며 대한극장을 선택한 이유로 ‘영화 시간대의 공평함’ 역시 언급했다.

 

실제로 대형 영화관들은 흥행작 위주로 상영 시간표를 편성한다. 희소성 있는 영화들은 서울 상영관 수 대비 아주 적은 수의 영화관에서만 취급된다. 대한극장은 흥행작은 물론, 독립영화들까지 꾸준히 상영해왔다는 점에서 ‘찾아올 만한 영화관’인 것이다. 올해 개봉 작품 중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수성못’ 그리고 ‘피의 연대기’는 메가박스, CGV, 그리고 롯데시네마의 서울 상영관 중 열 군데가 채 되지 않거나 겨우 넘는 곳에서만 상영되었다. 대한극장은 세 영화를 모두 선보였으며, 이외에도 꾸준히 독립 및 예술영화들을 상영할 뿐만 아니라 관련 시사회와 행사 역시 주최해왔다.

 

대한극장을 찾는 또 다른 이유로는 올해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옥상영화제와 플리마켓도 이유로 꼽았다. “대한극장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있어요. 행사 소식들을 주로 온라인에서 접했는데, 특히 이번 60주년 행사 때 영화사 굿즈들을 구경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대한극장, 영화 공간의 확장

지금, 대한극장

5월 30일 개봉한 '스탠바이, 웬디'의 시사회가 대한극장 옥상 정원에서 열렸다. 디저트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시사회에 앞서 관객들에게 디저트가 제공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2030세대에도 대한극장은 추억의 장소, 영화의 상징. 이제는 ‘추억과 문화’ 두루 갖춘 극장으로 변화

 

대한극장을 찾은 다른 학생은 인근 동국대학교 재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달리 갈 곳이 없을 때 오기 좋고, 가까워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동국대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할인 행사로 ‘6000원’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혜택도 장점으로 꼽았다. “영화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거나 대한극장의 역사를 잘 알고 있지는 않아요. 다만 평소에 대한극장에서 좋은 영화들을 많이 상영한다고 들었고, 만약 CGV나 메가박스 등의 대형극장으로 바뀐다면 아쉬울 것 같아요. 충무로는 영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또 이곳에 관한 추억들이 사라질 것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2030세대에게도 대한극장은 영화의 상징인 충무로와 관련된 ‘추억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제 서울에서는 한 발짝 걸어가면 또 다른 대형 영화관들을 금방 찾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영화관 없는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이에 대한극장은 다른 방식으로 영화 공간을 확장해 나간다. 흥행작과 독립 영화들을 두루 선보여 관객이 접할 수 있는 영화 스펙트럼을 넓히고, 옥상에서도 영화를 선보이며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확장해 나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대한극장을 찾는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도들은, 대한극장이 살아남는 이유가 비단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윤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