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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인생 밀크티를 찾아서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인생의 최애 카테고리안에 쌓이는 추억

인생 밀크티를 찾아서

저마다 하나 정도 인생 타이틀을 가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내 경우 밀크티가 그것인데, 여전히 인생 밀크티를 찾아 헤매는 중이다. 처음 밀크티에 대한 생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우유가 향긋하다는 느낌이 내게는 마치 밥에 향수를 뿌려 먹는 것과 비슷한 조합으로 다가왔다.

 

한창 대만 버블티 프랜차이즈인 '공차'가 유행했을 때도 나는 단 한 번도 돈 주고 사서 마시지 않았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돈 주면 먹는 걸 고려해볼 만한 맛이라며 밀크티를 저평가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토록 애타게 인생 밀크티를 찾아 헤매게 된 것은 작년 5월 보스턴 여행 때문이다.

인생 밀크티를 찾아서

보스턴은 미국 동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약 250년 전 '보스턴 차 사건'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보스턴 차 사건'은 동양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던 동인도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영국 정부는 동인도 회사에 차 수출 권한마저 독점으로 부여하고 수출관세도 면제해주는 정책을 펼친다. 이에 따라 식민지 상인들은 더 이상 차를 수입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영국의 정책에 분노한 보스턴 상인들은 1773년 보스턴 항구에 정착해있던 선박 위에 잠입하여 차 상자를 바다에 빠트리며 잔치를 벌였다. 항구에 늘어선 주민들은 그 광경을 보며 환호했다. 이것이 '보스턴 차 사건' 영어로는 'Boston tea party' 사건이다.

인생 밀크티를 찾아서

보스턴 여행을 하며 'Boston tea party ships & museum'이라는 일종의 '보스턴 차 사건'을 기념하는 박물관에 들린 적이 있다. 사실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지만, 바닷가 쪽으로 큰 창이 나있던 근사한 티 카페를 잊을 수 없다. 그곳에서 맛본 밀크티는 아직까지도 내 최애 밀크티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밀크티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미 우려낸 홍차에 우유를 부어서 마시는 영국식, 끓는 우유에 홍차 잎을 넣어 함께 우려낸 스리랑카/인도식(현재는 일본식 로열밀크티로 유명하다), 흑설탕과 티피오카를 넣은 대만식 밀크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영국식 밀크티를 가장 선호하게 된 이유 역시 앞서 말한 보스턴 티 카페에서 비롯되었다.

 

보스턴에서 그전의 거부감은 잊고 밀크티에 마음을 열었던 것은 향긋한 티와 함께했던 그날 그곳의 역사와 아름다운 풍경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인생 밀크티를 찾아서

전에는 거부감이 들던 어떤 것에 새롭게 마음을 열 때면, 댐에 가로막혀 있던 물이 방출되듯 와르르 마음이 쏟아진다. 일부러 찾지 않았던 시간들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밀크티에 빠져 허우적댔다. 영국의 국민 음료인 밀크티를 한때 그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기념관에서 처음 맛보게 될 줄은 몰랐으나 영문이야 어쨌든 그 후로 내게 밀크티는 커피보다 자주 마시는 하루 한 잔 음료가 되었다.

 

나의 '최애'라는 카테고리 안에 밀크티라는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 것이다.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냐하면 집 밖을 나섰는데 날씨가 맑고 상쾌해 얼음 가득 담긴 밀크티가 마시고 싶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에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밀크티를 두 손으로 감싸고 후후 불어 마시고 싶었다. 여름에는 당 충전을 위해 달콤한 초콜릿 무스 케이크와 함께 마셨고 겨울엔 카페에 앉아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코 끝에 스치는 티 향을 즐겼다.

 

그렇게 밀크티는 사계절 내내 나와 함께했고 그만큼 다양한 가게의 다양한 밀크티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인생 밀크티를 찾아서

그런데 여전히 인생 밀크티를 찾는다는 제목을 내건 이유는 아마도 아직 밀크티를 떠나보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최애' 카테고리의 항목은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흘러갔던 것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밀크티 항목을 대신해 있었던 것이 그린티라떼이다.

 

그린티라떼는 밀크티에 눈을 뜨기 전 즐겨 마시던 나의 '최애'음료였지만 밀크티의 참맛을 알고 난 뒤에는 비슷한 카테고리라는 이유로 나의 '최애'에서 사라졌다. 밀크티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 테지만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밀크티라는 항목에 행복한 추억들을 쌓고 싶다. 사진을 보며 여행 갔던 날들을 추억하듯이 밀크티 한 잔에 그날의 기억이 새겨질 때까지 나의 인생 밀크티를 찾아 나설 것이다.

 

누군가의 최애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완벽히 열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추억 속 깊숙이 길이 길이 간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 타이틀을 가진 카테고리가 없다면 지금 당장 만들어 보라.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다. 작은 메모지, 연필, 스티커로부터 시작하는 소소한 최애 항목이 그냥 흘러가는 하루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고이 간직하게 해줄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내뱉는 상황과 분위기를 좋아한다.

 

설사 문장에 담긴 뜻이 보편적 진리가 아닐지라도 이 말이 담고 있는 힘을 나는 믿는다. 내 머릿속, 마음속에 담긴 추억들은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흘러가버렸을 순간들이다. 10년 뒤 기억하려 해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하루보다 이 작은 카테고리 하나로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김요빈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