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뉴웨이브]드라마와는 달라…겸손·소통·털털한 재벌가 3·4세

[비즈]by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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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봐, 해봤어?"(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뚝심 이미지 창업주ㆍ2세와 다른 3ㆍ4세

겸손한 젠틀맨ㆍ글로벌 마인드ㆍ섬세한 경영이 대세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우수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다수의 재계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그가 '재벌 3세 같지 않은 겸손한 태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부회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한 경험이 있는 삼성전자 내부 임직원도 같은 말을 한다.


몇년 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도착한 이 부회장이 웬일인지 차에서 내리지 않자 주변이 술렁였다. 사전에 불필요한 격식을 차리지 말 것을 강조했음에도 이 부회장을 맞기 위해 임직원들이 각을 잡고 도열해 있는 상황이 마뜩잖았던 것. 이날 이 부회장은 결심이라도 한듯 현장 직원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낸 뒤에야 차에서 내렸다. 이후 이 부회장에 대한 삼성전자 의전의 격은 확 낮아졌다. 과거 서울 중구 태평로 본관 시절처럼 전용 엘리베이터를 따로 두지 않고 일반 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것도 그의 소탈한 면모를 반영한다.


이 부회장의 여동생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에 대한 지인의 평가도 비슷하다. 저녁시간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학부형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데 삼성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을 정도로 털털하다는 것이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봐, 해봤어?"라며 뚝심 하나로 통하던 창업주나 2세의 기업가 정신이 오너 3ㆍ4세 시대 들어 '겸손한 젠틀맨' 이미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가끔 '갑질'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재계 3ㆍ4세도 있지만 경영 수업을 받거나 일선에 나선 대부분의 창업주 일가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예절 교육으로 겸손과 매너가 몸에 밴 세대인 데다 일찍이 선진 문물을 접하고 자라면서 사고와 행동의 범위가 예상을 뛰어넘는다. 창업 3ㆍ4세가 우리나라 산업계를 이끄는 주축으로 자리한 가운데 섬세한 의사결정과 글로벌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새로운 재벌가 DNA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선대가 쌓은 업적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혼자 짊어지고 해결하기보다는 적극적 소통과 의사 표현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려는 자세가 묻어난다. 지난달 27일 열린 주주총회에 모습을 드러낸 세아제강의 3세 이주성 부사장과 대화를 나눈 한 관계자는 "군더더기 없는 매너와 젠틀함은 평소 교육을 잘 받은 인상이었다"면서 "사업에 대해서도 그저 보고만 받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이 술술 나올 정도로 전문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주요 그룹 3세 가운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대외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끝판왕'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임하는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재계의 입'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상의 하계 포럼에서 박 회장을 만난 한 관계자는 "치킨을 손으로 집어 먹고 쇄도하는 사인 요청에 사진까지 찍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재벌답지 않은 느낌이었다"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숫자를 정확하게 읊을 정도로 공부가 잘 돼 있었고 근거를 가지고 고차원적으로 문제를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4대 그룹으로 좁혀 보면 1999년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겸손과 신중을 넘어 실력을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구매와 영업,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부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끈질긴 승부사 기질을 빼닮아 존폐 기로에 놓인 기아차를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린 공을 인정받는다. 해외 모터쇼를 직접 챙기기로 유명한 정 부회장이 이어마이크를 끼고 유창한 외국어로 신차를 소개하는 모습은 외신에서도 앞다퉈 보도하곤 한다.


LG그룹은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구광모 회장에게 쏠린 재계의 시선이 뜨겁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된 구 회장은 주요 사업 부문을 두루 거치면서 착실하게 경험을 쌓았다. 그 역시 주변과 격의 없이 지내고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올해 65세의 구자열 회장이 이끄는 LS그룹도 5060세대의 2세 경영이 한창이다. 3세들이 주요 계열사 임원으로 경영 수업을 받고 있어 승계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2ㆍ3세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나이와 건강, 각종 사회적 물의 등 돌발 변수 발생 시 3ㆍ4세 즉위가 가능한 곳은 신세계그룹과 GS·한화·금호아시아나그룹 등이 이름을 올린다. 조양래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회장(81),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80),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80),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75),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73),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72), 허창수 GS그룹 회장(71),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70) 등이 70~80세 이상 고령 총수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이 회장이 주요 계열사인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면서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는 3세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 사장의 경영 DNA가 곳곳에 심어진 지 오래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2세 경영인 가운데 가장 오래 총수를 맡고 있다. 29세에 그룹 총수에 오른 김 회장은 별 다른 이변이 없는 한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에게 그룹을 물려줄 예정이다. 김 전무는 현재 경영 수업을 받으면서 주요 계열사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화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훈훈한 외모와 좋은 매너로 여직원 사이에서는 큰오빠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면서 "경영 능력에서도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지만 생산 원가에 뛰어난 감각이 있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호평을 받는다"고 전했다. 효성그룹은 조석래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난 자리를 3세인 장남 조현준 회장이 이어받아 소프트랜딩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연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 과제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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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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