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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새해 첫 여행지..
고즈넉한 순천에 취하다

by아시아투데이

아시아투데이

낙안읍성민속마을의 여명. 옅은 안개가 깔린 초가마을의 새벽 풍경이 몽환적이다. 시간은 멈추고 마음은 급할 것이 없어진다.

순천/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또 한해 잘 살아보자고 전남 순천으로 ‘새해’ 보러 갔다. 참고로 2019년은 순천방문의 해다.


순천은 원래 해넘이로 기억되는 고장이다. 그 유명한 순천만 때문이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에 둘러싸여 뭍으로 항아리처럼 움푹 패인 만(灣)이 순천만이다. 이곳이 참 예쁘다. 넓게 펼쳐진 갈대밭과 ‘말랑말랑한’ 개펄, 물때에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완만한 곡선의 물길, 바다로 툭 튀어나온 야트막한 산과 해안선이 어우러진 풍경이 거침없이 두 눈을 희롱한다. 여기에 철새들까지 날아다니면 고상하고 우아한 멋이 배가 된다. 소설가 김승옥은 이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무진기행’을 썼다. 세속과 단절된, 아름답지만 머물 수 없는 동경의 세계가 무진이다.


풍경이 예쁘니 해넘이도 아름답다. 순천만의 해넘이를 보고 있으면 지난 시간 시나브로 깊게 패인 생채기들이 조금씩 아문다. 퍽퍽한 세상을 살아낼 용기도 솟는다. 이 멋진 ‘치유’를 경험하기 위해 멀리서 애써 여기까지 오는 이들이 참 많다. 순천만을 내려다보는 해룡면의 용산, 사기도(솔섬·똥섬)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오는 순천만의 동쪽 끝 와온마을은 이미 전국구 해넘이 명소로 입소문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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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의 성곽은 둘레가 약 1.4km다. 고려시대 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쌓았던 것을 조선시대 들어 다시 돌로 쌓았다.

그런데 순천에는 제법 멋진 해맞이 장소도 있다. 새해 마음 다잡을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는 이야기다. 우선 순천만 서쪽 끄트머리인 별량면 화포마을이 해맞이 명소로 꼽힌다. 개펄을 가운데 두고 와온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광활한 개펄 위에 떨어지는 새벽 볕이 정말 강렬하고 싱싱하다.


낙안면 낙안읍성민속마을의 해돋이도 볼만하다. 여기를 가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변에서 풍경과 느낌이 완전 딴판이다.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이름처럼 읍성 안에 형성된 마을이다. 둘레 약 1.4km의 성곽은 고려시대 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쌓았던 것을 조선시대 들어 다시 돌로 쌓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현재 108가구 27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많을 때는 1000명도 살았단다. 이러니 마을에서는 이른 아침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성곽을 돌며 산책을 즐기는 초로의 촌로들을 만날 수 있다. ‘OO민속촌’이나 텅 비어 있는 여느 읍성과 풍경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제된 마을이 아닌, 살아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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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안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맘대는 초가를 새로 얹는 이엉작업도 볼 수 있다.

마을은 성곽보다 오래됐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송갑득(73) 씨는 “여기가 2000년이나 된 마을”이라고 했다. 성곽이야 나중에 축조됐지만 삼국시대부터 이미 마을은 있었다는 것. 실제로 백제시대에 마을이 있었다는 학설도 있다. 어쨌든 “낙안은 어염시초(魚鹽柴草)가 풍성하고 두루두루 평온한 지역”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산물이 풍부하고 살기가 좋았던데다 순천이 남해에서 호남평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기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고 그래서 읍성이 해안방어의 전초기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드물게 평지에 있는 데다 조선시대 읍성의 원형이 잘 보존돼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새해 들으면 기분 좋아질 풍문도 흘러다닌다. 오봉산·제석산·백이산·금전산 등 준봉들이 마을을 에두르고 있는데 이 가운데 금전산(金錢山)때문에 순천에서 로또 당첨자가 많이 나온다는 것. 산의 이름을 한자로 풀어 쓰면 금(金)과 돈(錢)의 산. 송 할아버지는 “풍수가들이 금전산의 기운이 마을에 재물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며 “이것이 입소문을 타며 금전산은 ‘로또산’으로도 불린다”고 했다.


마을 안에는 동헌과 객사를 비롯해 300여동의 초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객사 건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낙안에 머물 때 심었다는 팽나무로 유명하고 낙민루는 예부터 호남의 명루로 손꼽혔단다. 목화밭에는 여태 하얀 솜이 눈(雪)처럼 달려있고 막바지에 접어든, 초가지붕을 새로 얹는 이엉작업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짚물공예, 목공예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주말에는 판소리 등 다양한 공연도 열린단다. 마을은 그대로 야외 세트장이 될 만큼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해맞이 최적 포인트는 서문 쪽 성곽 위다. 서로 엉겨 붙어 융단처럼깔린 초가지붕들, 이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하얀 연기가 옅은 안개처럼 골목을 흐르는 순간 오봉산과 제석산 사이로 ‘새해’가 둥실 떠오른다. 쏜살 같던 시간이 멈추고 마음은 급할 것이 없어진다. 오래된 것들이 주는 위로가 이토록 마음 편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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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갈대밭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갈대의 이삭은 거칠지만 겨울에도 고상하고 우아한 멋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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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에 날아든 철새들.

예부터 하늘의 순리와 사람의 도리를 거역하지 않고 살아온 백성들의 고장이 순천(順天)이라고 했다. 순천 곳곳에는 이를 곱씹게 만드는 풍경들이 참 많다.


‘순천 관광1번지’ 순천만은 어쨌든 봐야한다. 계절 탓에 갈대밭의 이삭은 거칠지만 애써 찾아 간 수고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운치는 있다. 마침 순천만 갈대밭에는 2500여마리의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떼가 겨울을 나고 있다. 이승희 순천시청 주무관은 “흑두루미들은 10월 중순부터 이곳으로 날아와 이듬해 4월 1일이면 거짓말처럼 다시 시베리아로 떠난다”고 했다. 순천만생태공원에서 망원경으로 이들을 관찰할 수 있고 탐조 프로그램에 참여해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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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승선교. 아치형의 다리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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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승선교 아래에서 본 강한루.

고즈넉한 겨울산사도 마음 살피기 좋은 곳이다. 순천에는 천년고찰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다. 조계산을 가운데 두고 각각 동쪽과 서쪽 기슭에 자리잡았다. 둘 다 아치형 교각이 유명한데 선암사는 들머리의 승선교가 참 예쁘고 송광사 역시 계곡 물길 위를 지나는 우화교가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추가하면, 이 맘때 순천에 간다면 꼬막은 꼭 맛본다. 꼬막하면 인근 보성의 벌교를 떠 올리지만 순천 역시 ‘꼬막의 고장’이다. 벌교는 참꼬막이 유명하고 순천은 새꼬막이 많이 난다. 순천만 와온마을 일대가 주산지다. 새꼬막은 참꼬막보다 조금 크고 껍질에 패인 골이 얕다. 맛은 개인 취향이다.


신맹철 와온마을 이장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꼬막 종패(씨를 받기 위한 꼬막)가 뿌려진 곳이 와온”이라며 “국내에서 생산되는 종패 99%가 여기서 나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도 종패를 뿌려봤는데 다 죽어버린단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먹이가 풍부한데다 섬이 많은 지형적 특징 등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란다. 어쨌든 새꼬막은 4월까지 나지만 지금부터 2월까지가 가장 맛있을 때다. 제철 음식이 최고의 보약이다. 신 이장은 “올해는 생산량이 많아 산지 가격이 작년에 비해 4분의 1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와온마을을 비롯해 순천 일대 대부분의 식당에서 꼬막을 맛볼 수 있다.


순천=글·사진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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