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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공실 늘어도 임대료 올라"…프랜차이즈도 발 뺀 가로수길의 '역설'

by조선비즈

28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신사역 8번 출구 앞.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가로수길 상권 초입에 있던 디저트 카페 설빙이 사라졌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꼭 가봐야 할 한국 카페’로 꼽히며 큰 인기를 끌었던 곳이었는데, 이 카페가 있던 건물 2층에는 ‘임대, 권리금 없음’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업자는 "작년 말에 가게가 나간 이후 계속 비어 있다"고 했다.


신사역 8번 출구에서 200여미터 지난 뒤 직진으로 이어지는 도산대로 13길과 압구정로 12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간판을 내린 채 새 임차인을 찾고 있는 빈 상가들이 쉽게 눈에 띈다. 빌딩 1층과 2층을 모두 사용했던 탐앤탐스 커피점도 간판을 내리고 ‘임대 무권리’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외국계 뷰티 브랜드 록시땅이 들어서 있던 빌딩 1층 자리도 비어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던 4~5년 전에 비하면, 거리를 오가는 외국인 손님도 확연히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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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A빌딩. 프랜차이즈 카페 탐앤탐스가 1~2층에 들어와 있었으나, 임차자가 빠지면서 건물주가 임대를 내놨다. /허지윤 기자

빈 상가 점포는 늘고 있지만, 떨어질 법한 임대료는 오히려 더 올랐다. 신사역에 있는 2층 이하면서 연면적 330㎡ 이하인 소형 상가의 임대료는 올해 들어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분기 평균 임대료는 1㎡당 8만2810원으로, 1년 만에 무려 21.9% 올랐다. 소형 상가 건물의 1분기 공실률은 18.3%로, 작년 말보다 18.2%포인트 증가했다.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를 초과하는 중대형 상가도 공실이 늘고 임대료가 올랐다. 신사역 중대형 상가의 1분기 1㎡당 임대료는 평균 8만427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3%나 올랐다.


2017~2018년 이 지역 임대료는 하락세를 보였다. 2017년 4분기 평균 8만6510원에서 2018년 1분기 7만5740원으로, 12.4% 떨어졌다. 당시 상가 공실이 크게 늘어나자 임대료를 낮춘 것인데, 올해 들어 다시 이런 추세가 뒤집힌 것이다. 중대형 상가의 1분기 공실률은 작년 말 대비 0.3%포인트 늘어난 8.3%다.


공실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장사를 접고 지역을 떠난 이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상권 임대료마저 오르면서 임차인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도 심화한 것이다.


작년 1월 애플과 같은 대형 기업들이 가로수길을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전시하는 거점 지역으로 삼으면서 가로수길 상권 명맥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경기 침체와 임대료·인건비 등 비용 증가로 가로수길만의 문화를 형성해온 중소 상권 지지 기반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가로수길 상권은 기업이 브랜드를 알리는 상징적인 용도로 유지하며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런 지지도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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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공실 건물. /허지윤 기자

일반적으로 공실이 늘면 임대료가 내려가기 마련인데, 무슨 이유로 임대료가 더 올랐을까? 부동산 업계는 매입가격 대비 수익률을 확보하려는 건물주들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1분기 이 지역 중대형 상가의 평균 투자수익률은 1.91%로, 작년 말보다 0.4%포인트 떨어졌다. 같은 기간 소규모 상가 평균 투자수익률은 0.9%포인트 내려 1.7%를 기록했다.


신사동 B공인 관계자는 "지역 특성상 한 곳이 임대료를 낮추면 다른 건물도 영향을 받아 달가워하지 않다 보니, 공실이 나도 임대료를 자체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으로 한한령이 내려진 당시에 비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늘었고, 많지는 않아도 잘 되는 상가는 지금도 잘 된다"며 "그렇다 보니 건물주들도 공실을 무작정 채우려 하지 않고 임대료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우량 임차인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박합수 전문위원은 "건물주 입장에서 매매 당시 가격이 싸지 않았기 때문에 임대료를 떨어뜨릴 생각이 없을 것"이라며 "계약할 때 일정 기간 무상 임대(렌트프리)하는 식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센터장은 "금리가 오르면 건물주 부담이 커지겠지만, 현재 조달금리는 3% 후반대라 대출을 안고 있는 건물주 입장에서도 부담이 큰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과거에는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공실을 채워 넣는 게 중요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가로수길 한 상가 입구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윗쪽 사진). 인근 다른 상가 1층 입구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었다. /허지윤 기자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