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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매년 1000억 벌어
지역경제 살린 미술관의 마법

by조선일보

침체된 지역경제 되살린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매년 1000억 벌어 지역경제 살린

물고기 여러 마리가 뭉쳐있는 모습을 본따서 만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흔히 랜드마크 건축물 하나가 해당 도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르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고 부른다. 이는 스페인 바스크주(州) 빌바오시(市)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지어진 이후 침체했던 지역 경제가 되살아난 데서 유래했다. 이 미술관은 독특한 외관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100만명 이상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물고기 여러 마리가 뭉쳐있는 것 같기도 하고, 꽃이 피어나는 형상을 닮기도 한 이 미술관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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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스크주 빌바오시 위치. /구글 지도

빌바오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400km 정도 떨어진 수변 도시다. 제철·조선 산업이 유명했고 무역항을 갖춰 1970년대 중반까지 스페인의 공업 중심지였다. 하지만 1980년대 아시아 국가들에게 철강산업 주도권을 뺏기면서 실업률이 30%까지 높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까지 겹쳐 빌바오는 빠르게 쇠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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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시와 바스크주 정부는 네르비온 강변에 미술관을 지어 도시를 재생하기로 했다. /Phillip Maiwald

바스크주와 빌바오시는 몰락의 늪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문화산업이라고 판단했고, 랜드마크 건물을 세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미국 뉴욕의 달팽이 모양 건물로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인기있는 것을 보고, 빌바오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 강변에 미술관을 지어보기로 한 것. 바스크주 정부는 1억달러(약 1122억원) 규모의 건설 기금을 마련해 구겐하임 재단으로부터 미술관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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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왼쪽)와 그가 그린 미술관 스케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미술관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 그는 기존 건축 질서나 양식에 구애받지 않는 파격적 건물로 유명세를 탄 미국 건축가다. 1991년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1993년 착공해 1997년 개관했다. 대지면적 3만2700㎡, 건축면적 2만4290㎡이며 갤러리 공간은 1만1000㎡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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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관은 티타늄, 석회암, 유리 등 3가지 소재로 마감했다. /tripadvisor.com

미술관은 박스형 건물이 아닌 유려한 곡선으로 이뤄진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다. 강변이란 입지 특성을 최대한 살려서 지은 것이다. 곡선 설계에는 프랑스 항공우주기업 다쏘(dassault)가 개발한 카티아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 게리가 간단한 썸네일 스케치나 종이 스터디 모델로 자신의 조형적 아이디어를 주면 엔지니어와 카티아 프로그램이 역학 계산 등을 통해 실제 현장에 적용 가능한 3차원 축소 모델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건물 외관은 3가지 소재(티타늄·석회암·유리)로 이뤄졌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곡선 마감에 쓰인 티타늄. 티타늄은 녹슬지 않아 항공기 제작에 많이 쓴다. 비가 자주 내리는 빌바오 기후는 물론 과거 철강도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데도 안성맞춤인 마감재다. 당초 외관 재료로는 스테인리스스틸을 쓰기로 돼 있었지만 프랭크 게리가 빌바오 하늘의 빛을 그대로 반사해주는 티타늄의 성질을 선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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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을 둘러싸고 있는 티타늄 패널이 햇빛을 흡수해 황금빛이 난다. /indulgent sojourns

미술관 외부를 덮은 3만3000여개의 티타늄 패널은 햇빛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낮에는 따뜻한 황금빛을 띤다. 두께는 0.3㎜정도로 얇아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데, 멀리서 보면 물고기 여러 마리가 뒤엉켜 헤엄치는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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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출입구로 가는 길. /bluff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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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높이 차이를 활용해 미술관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을 설치한 모습. /infobit

건물 직선 부분에는 스페인산 석회암이 사용됐다. 미술관 주 출입구는 지면의 경사를 이용해 지었다. 공용 광장에 설치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건물 1층으로 이어지는데 높이 차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마치 다른 차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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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천장이 55m로 높은 아트리움이 보인다. /museoak.bizkaia.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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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 갤러리가 총 3개층으로 나뉘어 있다. /spanish contemporary art gallery

미술관에 들어서면 천장 높이가 약 55m인 아트리움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에서 천장이 가장 높은 공간이다. 이 아트리움을 3개 층으로 나뉘어진 갤러리들이 비정형적으로 둘러싸고 있다. 아트리움 천장과 엘리베이터는 커튼월 방식으로 마감됐다. 유리창을 통해 모든 전시실에 햇빛이 골고루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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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으로 마감한 건물에 있는 갤러리는 평범한 직사각형 공간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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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늄 외벽으로 마감한 곳에는 각자 다르게 생긴 비정형 갤러리가 있다.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갤러리 공간은 총 19개다. 이 중 10개는 석회암으로 된 건물에 있어 평범한 직사각형 모양이고, 9개는 티타늄으로 마감된 부분에 속해 각 공간의 형태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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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라의 조각들이 영구 전시된 갤러리.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가장 큰 전시장은 폭 30m, 길이 130m다. 미국 조각가인 리처드 세라의 작품들을 영구 전시하는 데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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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0만명 이상 관광객이 다녀가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Phillip Maiwald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측에 따르면 개관일부터 현재까지 누적 방문객은 2000만명을 넘는다. 매년 100만여명이 빌바오를 찾은 셈이다. 그동안 거둔 입장료 등 운영 수익이 초기 건축비의 20배 정도인 16억유로(약 2조 890억원)에 달한다. 한해에 평균 1000억원 정도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투자비는 개관 6년만에 모두 뽑았다.


국형걸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재건축·재개발로 도시를 살리는 방법도 있지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같은 랜드마크를 세워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면 훨씬 더 많은 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비슷한 효과를 겨냥해 지어진 사례”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