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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단독] 석가탑·다보탑보다 100년 앞선… 우리나라 첫 쌍탑터 나왔다

by조선일보

황복사지… 의상대사 출가한 경주 사찰서 7세기 중반 두 개의 목탑터 확인


경북 경주시 불국사에 가면 대웅전 앞마당에 두 개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다보탑(국보 20호)과 석가탑(국보 21호)이다. 지금은 터만 남은 감은사지에도 쌍탑이 마주 서 있는데, 국보 제112호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이다. 한국 쌍탑의 시원은 679년 완공한 사천왕사로 알려져 왔다. 옛 신라에선 1탑이었다가 삼국통일 직후 사천왕사에서 최초로 쌍탑 가람 배치가 나타났고 이후 감은사·불국사를 비롯해 통일신라 사찰의 기본 틀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본지에 연재했던 '국보 순례'에서 "왜 갑자기 쌍탑이 등장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똑같은 탑 두 기를 나란히 배치하면서 건축적 리듬감을 얻어낸다는 아이디어는 탁월한 구상이었다"며 "9·11 테러로 '그라운드 제로'가 된 뉴욕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비롯해 현대 건축에서 추구하는 건축 미학"이라고 예찬했다.

쌍탑의 시작은 통일신라 이전

그런데 쌍탑의 기원이 삼국 통일 이전인 옛 신라 때임을 보여주는 쌍탑 목탑터가 발견됐다. 경주 낭산 일원 황복사 터를 3차 발굴 중인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두 개의 목탑 터로 추정되는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자취)를 비롯해 중문 터, 회랑 터, 대형 금당 터 등 남북을 축으로 만든 6세기 후반~7세기 중반의 사찰 터를 확인했다"며 "지난해 십이지신상 4점(토끼·뱀·말·양)이 발견됐던 기단에서 또 다른 십이지신상 4점(소·쥐·돼지·개)이 발견됐고, 통일신라 금동입불상 1점과 판불(동판에 새긴 불상) 1점 등 1000점 이상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1일 밝혔다.

[단독] 석가탑·다보탑보다 100년

3차 조사가 진행 중인 경주 낭산 기슭 황복사지 발굴 현장. 푸른 포대로 덮여 있는 곳에서 목탑 쌍탑 터와 중문 터, 금당 터 등이 나왔다. 오른쪽은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 /허윤희 기자

황복사(皇福寺)는 '삼국유사'에 654년 의상대사(625~702)가 29세에 출가했다고 기록된 절이다. 또 다른 기록에 "의상이 탑을 돌 때 계단을 밟지 않고 허공을 밟고 올라갔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런데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은 통일신라 때 신문왕이 죽자 아들인 효소왕이 692년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탑이다. 의상이 출가할 때와 석탑을 조성한 때가 38년이나 차이 나기 때문에 삼층석탑을 세우기 전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민병찬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목탑 터가 맞는다면 의상이 탑돌이한 그 탑일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나라 최초의 쌍탑 가람이고, 쌍탑의 시작이 늦어도 7세기 중반 옛 신라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정호 동국대 교수는 "목탑 터로 보기엔 규모가 작고, 중문 터와 탑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며 신중론을 폈다. 박광열 원장은 "목탑 터 바로 옆에 귀부(龜趺·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자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종묘와 관련된 곳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팔수록 미스터리 커지는 보물섬"

황복사지는 2016년부터 장기 발굴 중으로 팔 때마다 유구와 유물이 쏟아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건축·고고학자 노세 우시조(能勢丑三·1889~1954)가 십이지신상을 발굴하는 사진이 남아 있다〈 본지 2017년 1월 31일 자〉. 연구원은 2017년 1차 발굴 성과를 공개하면서 "통일신라 효성왕의 미완성 왕릉이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경작지를 발굴한 결과 통일신라 시대의 왕실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단과 회랑, 담장, 배수로, 연못 등의 터와 함께 유물 1000여점이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옛 신라 때 또 다른 사찰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들이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파면 팔수록 미스터리가 커지는 보물섬"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 원장은 "아직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심정"이라며 "앞으로 최소 5년은 더 파야 하고 전체 발굴이 끝나야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경주=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