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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아무튼, 주말

설탕 같은 눈
'반지의 제왕' 속 그 풍경

by조선일보

심장이 뛰는 도시 뉴질랜드 퀸스타운

조선일보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개 ‘찰리’와 주인이 일출을 배경으로 와카티푸 호숫가를 걷고 있다. Z 모양인 와카티푸 호수는 총 길이가 80㎞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에게는 이 호수 밑에 ‘마타우’라는 거인 괴물이 잠들어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호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25분 간격으로 수면이 10㎝쯤 오르내린다. 마타우의 심장 박동일까? / 조유진 기자

"직진하고 싶으면 핸들을 앞으로 미세요. 멈추고 싶으면 핸들을 당기고요. 잘하시네요. 출발!"


눈 깜짝할 사이 루지(luge·놀이용 썰매) 강습이 끝나고 출발해버렸다. 썰매에 가속이 붙었다. 800m 언덕에 후진이란 없다. 심박수가 미친 듯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핸들을 당겨 멈추고 숨을 돌렸다. 고개를 들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과 '호빗'에서 보던 울퉁불퉁한 산맥과 푸른 호수가 펼쳐졌다. 별세계 같은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평화도 잠시. 가파른 코스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한 번 더!" 벌벌 떨면서 외쳤다. 짜릿한 썰매와 평화로운 대자연의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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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을 쓴 기자가 루지를 탄다. 퀸스타운 시내와 호수를 내려다보며 산악자전거·루지·번지점프를 경험할 수 있다. / 스카이라인 퀸스타운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심장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한다. 높은 강도의 운동과 휴식을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이다. 러닝머신에 올라 1분 전력 질주하고 다음 2분은 늦추는 식으로 운동해 높은 효율을 내는 방법. 이곳은 남반구 섬나라 뉴질랜드다. 나흘간 최대 심박수와 최저 심박수를 오간 '인터벌 여행'을 하고 왔다.

최대 심박수: 4D 영화 속으로

뉴질랜드 남섬의 퀸스타운(Queenstown)은 매년 주민의 100배가 넘는 300만명이 여행을 오는 작은 도시다. 케이크 위에 하얗게 뿌려진 설탕 가루처럼 눈이 쌓인 리마커블산과 알파벳 'Z' 모양으로 생긴 와카티푸 호수는 아름답다. 수많은 판타지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답게 어느 곳을 찍어도 명장면이다. 하지만 엽서 같은 풍경도 하루만 지나면 익숙해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액티비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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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보트를 타고 1시간쯤 다트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액티비티. 손잡이에 온열 기능이 있다. / 다트리버 어드벤처

"5, 4, 3, 2, 1. 번지!" 와카티푸 호수에서 흘러나온 카와라우강에는 높이 43m의 번지점프대가 있다. 한 번 뛰는 데 성인 기준 205뉴질랜드달러(약 15만원)를 내야 한다. 경기도 가평만 가도 3만원에 높이 55m 번지점프대에서 뛸 수 있다. "여기 A J 해킷 번지는 세계 최초 상업 번지점프대입니다." 극악의 가성비에도 결제를 부르는 마법의 문장이 들렸다. 높이가 낮은 탓에 참가자들의 표정이 생생히 보인다. 옥(玉)색의 푸른 강물 위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참가자가 결심한 표정으로 뛰어내리자 쾌감이 느껴졌다.


마운트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 부근 다트강을 최고 시속 80㎞의 제트보트를 타고 누볐다. 옆 사람의 말소리도 듣기 어려운 거센 바람에 360도 보트 회전으로 물 폭탄까지 맞았다. 홀딱 젖었지만 웃음이 터졌다. 4D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에 심장이 뛰었다. "퀸스타운에서 5개월을 매일 다른 액티비티로 즐길 수 있죠." 뉴질랜드 관광청 관계자가 말했다. 스키, 제트보트, 카약, 루지, 곤돌라, 숲에서 즐기는 하이킹…. 수백 개의 액티비티에 지루할 틈이 없다.

최저 심박수: 끝없는 산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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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보트에서 내리니 핫초콜릿을 한 잔씩 나눠줬다. 보트 손잡이를 움켜잡으며 잔뜩 긴장한 몸이 녹았다. 따뜻해진 몸으로 마운트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을 산책했다. 크게 들이마신 공기가 시원하고 맛있었다. 미세 먼지에서 자유로운 뉴질랜드는 강력한 금연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담배 한 갑이 30뉴질랜드달러(약 2만2000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 숲은 너도밤나무 등 키가 큰 식물로 울창했다. "이 잎을 먹어보세요. 무슨 맛이 나나요?" 안내원이 나뭇잎을 조금 나눠주며 물었다. 미식가처럼 잎을 씹었다. "매운맛!" 큰 소리로 정답을 외치자 다 함께 웃었다.


퀸스타운을 떠나는 아침, 일출을 보고 싶어 세수도 안 하고 호숫가로 뛰어나갔다. 선글라스를 쓴 개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반갑게 몸을 비볐다. "이름이 뭐예요?" 개와 함께 산책 나온 노인은 "찰리예요. 앞이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이방인을 경계하긴커녕 꼬리를 흔드는 찰리의 온기에 심박수가 낮아졌다. 호수를 둘러싼 리마커블산 사이로 마침내 해가 떠올랐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를 배고플 때까지 바라봤다.


한국에서 퀸스타운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인천에서 오클랜드까지 11시간, 북섬에 있는 오클랜드에서 국내선을 타고 2시간 더 가면 퀸스타운에 도착한다. 에어 뉴질랜드는 23일부터 인천~오클랜드 직항 노선을 운영한다.


퀸스타운=조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