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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창밖으로 펼쳐진 통영 바다… '조각' 안에서 하룻밤 묵고 가세요

by조선일보

조각, 집이 되다


박상숙·안규철·다다시 등 국내외 조각가 10인의 작품을

실제 집으로 제작한 심문섭씨… 침실·욕실 갖춰 숙박 가능해

"머무는 여행객도 작품 속 일부… 비품 최소화해 묵상의 공간으로"


조각품이 커지면 집이 된다.


조각가 박상숙이 지난해 스테인리스강(鋼)으로 제작한 아담한 조각품이 있다. '행복의 부피'연작으로, 주택 모양의 가로·세로 46×29㎝ 크기다. 이 작품을 외관 그대로 대략 13배쯤 부풀리자 집 한 채가 완성됐다. 침실과 욕실을 갖춘 진짜 집이다. 박씨는 "작업 기간 내내 조각 속에 들어가 한숨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생각이 현실로 구현돼 들어가 보니 정말 따뜻했다"고 말했다. 지붕 위에 이 집의 원형인 작은 조각품이 올려져 있다.


조각이 집이 되는 곳, 이른바 '조각의 집'이 지난달 경남 통영에 들어섰다. 조각가 심문섭(77)씨가 직접 선정한 국내외 조각가 10인의 작품을 실제 집으로 제작해 자신의 고향 땅에 조성한 것이다. 통영 꽃개마을 앞바다를 마주한 1000평 규모 땅에 들어선 집들은 1997년 그가 앤서니 곰리·대니 카라반 등 전 세계 유명 조각가 15인의 작품으로 통영 남망산에 꾸린 '남망산 조각공원'의 실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심씨는 "가장 좋은 미술관은 오래 머물 수 있는 미술관"이라며 "예술품 속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각가 박상숙의 조그마한 집 조각①이 실제 집②로 제작돼 통영 ‘조각의 집’에 들어섰다. 원인종의 조각 작품 ‘천지해’를 바탕으로 지은 집③과 그 내부④,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심문섭이 제작한 뾰족집⑤ 너머로 통영 바다가 보인다. /정상혁 기자

주로 조각에 건축적 조형 요소를 끌어들이는 경향의 작가들이기에, 부피를 키우자 기존 작품 스타일을 해치지 않고도 무난히 하나의 집으로 변신했다. 일본 조각가 가와마타 다다시가 프랑스 퐁피두센터 외벽에 목재로 만들어 걸쳐뒀던 '새집'은 사람을 위한 나무집이 됐다. 나무·종이 같은 폐자재를 활용해 뜻밖의 공간에 오두막 등 조형물을 설치해왔으나,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을 제작한 건 처음이다. 최인수가 충주호 인근에 세운 화강암 조각 '시간의 문'과 안규철이 5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당시 꾸민 공간 '1000명의 책―필경사의 방', 유압프레스로 철을 변화무쌍하게 구부리는 심병건의 'Press Drawing' 연작도 작품 틀을 살린 근사한 집으로 재탄생했다.


출항하는 빈 배를 형상화한 심문섭의 푸른 뾰족집, 조감하면 미키마우스 얼굴처럼 보이는 독일 괴츠 아른트의 원통형 집, 삼각·사각의 유리창이 수정(水晶)처럼 돌출한 원인종의 작품은 특히 독특한 조형미를 지닌다. 조각은 대략 8평 내외로 1~2명이 들어가 묵을 수 있는 크기인데, 내부에 작가의 소형 조각 및 회화 작품을 배치해 집 전체를 작품화(원인종·이수홍 등)한 곳도 있다. 여객은 그 안에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묵상의 공간으로 기능케 하고자 비품은 최소화했다. "건물과 땅의 조건이 어울리도록 설계해 그 안에서 자연과 고요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 했다. 다만 심씨와 오래 교류한 조각가 김세중(1928~1986)의 아내 김남조 시인이 "아무리 그래도 TV는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TV는 방에 넣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면 창 너머 보이는 바다와 소나무 때문에 TV 켤 일이 없다.


통영=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