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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가성비 따지면 비합리적 선택… '호텔 짜장면'엔 무엇이 있나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호텔 짜장면

더플라자 도원, 신라 팔선, 웨스틴조선 홍연


호텔 중식당은 이름만 들어도 겁이 났다. 불도장·해삼주스같이 무협지에 나올 법한 이름의 음식은 그 모양도 가늠이 안 됐다. 그래도 도를 닦듯이 수십년 기술을 연마한 사부와 그 밑에서 단련된 요리사들이 칼잡이처럼 네모난 중식도(中食刀)를 휘두르고 차력사처럼 불쇼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호기심이 일었다. 호텔 중식당에서 기십만원 하는 코스를 꼭 먹을 필요는 없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자주 찾는 짜장면만 시켜놓고 앉아 있어도 된다. 기본 중 기본인 짜장면. 과연 호텔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누군가는 그래 봤자 짜장면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자(賢者)는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는 법이다. 무턱대고 문을 밀고 들어가 "여기 짜장면 하나요!"라고 외치지 않았다.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혹시 오늘 예약되나요?"

조선일보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중식당 ‘홍연’의 특제짜장면.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시작은 서울시청 앞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더플라자호텔 3층 '도원'이었다. 한국의 특산품 중 하나인 연중무휴 시위를 구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코스를 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룸이 아닌 홀에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호텔 중식당에는 그냥 '짜장면'이 없다. 보통 '삼선짜장'이 주류다. 호텔에서 평범한 짜장면을 팔 수 없다는 자존심이다. 별 수 없이 삼선짜장면, 삼선짬뽕을 시켰다.


거뭇하게 탄 기운이 하나도 없이 재빠르게 볶은 짬뽕은 해산물이 모자람 없이 들어가 있었다. 국물은 살짝 걸쭉한 농도였고 국물을 떠 마시다 보면 땀이 은근히 맺혔다. 해산물과 양파가 비슷한 크기로 총총 썰린 짜장면에는 얇게 채 친 오이가 놓였다. 스르르 면 위에서 미끄러질 정도의 물기를 지닌 짜장을 비볐다. 젓가락을 쥔 손아귀에 힘을 줬다. 단맛이 배경음악처럼 모자람 없이 깔렸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맛이었다.


다음은 시청을 떠나 장충동 산기슭을 걸었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린 신라호텔 소파에 앉아 '팔선' 예약 시각을 기다렸다. 단품 주문이라 역시 홀로 안내됐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주변 분위기에 떠밀려 삼선짜장, 삼선짬뽕에 탕수육까지 시켜버렸다. 탕수육은 바삭하다기보단 폭신했다. 입천장 까질 염려 없는 나긋나긋한 식감이었다. 맹렬한 붉은 기운을 품은 짬뽕은 고추장을 푼 것처럼 걸쭉했다. 갑오징어에 섬세하게 그은 칼집은 요리사의 자존심 같았다.


짜장면 면발 위에는 역시 오이채가 올랐고 알새우가 군데군데 박힌 짜장 소스는 질었다. 면을 비벼 입에 넣자 역시 산등성이 안개처럼 단맛이 넓게 돌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균형 잡힌 맛이 예의 바르고 얌전히 혀를 간질였다.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뒷맛에 도도한 기운이 서렸다.


도돌이표를 찍듯 마지막은 서울시청 건너편 웨스틴조선호텔 '홍연'이었다. 하얗고 밝은 팔선과 달리 홍연은 이름만큼이나 강한 붉은색으로 실내 마감을 했다. 이곳 역시 3종 찬. 자차이와 절인 오이, 그리고 견과류 대신 목이버섯을 마늘과 함께 매콤새콤하게 무쳐냈다. 보통 삼선짜장 하나로 짜장 시리즈를 갈음하는 여타 호텔 중식당과 달리 이곳에는 삼선과 특제 두 라인업이 있다. 어차피 한 번 먹는 것 몇천원 더 비싼 특제짜장면을 고르고 삼선짬뽕과 유린기를 더했다.


고드름처럼 아작아작 씹히는 튀김옷을 입힌 유린기는 아삭한 양상추를 밑에 깔고 빨갛고 파란 고추와 고수를 위에 뿌렸다. 닭 허벅지 살을 써서 식감이 탄력 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거뭇거뭇 화끈하게 볶은 티가 나는 짬뽕은 매운맛이 여느 곳보다 강했다. 국물은 에둘러 가지 않고 혓바닥으로 진격했다. 먹다 보니 결국 손으로 이마를 훔치고 말았다.


특제짜장면은 물기 하나 없이 건(乾)하게 소스를 볶았다. 특히 양파를 때려 붓다시피 넣었는데 느낌이 색달랐다. 맛의 차이는 재료의 질뿐만 아니라 양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아삭한 식감에 달고 매콤한 양파의 맛이 폭발적이었다. 얌전하게 사근거리지 않고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큰 냄비를 뜨거운 불 위에 세차게 돌린 맛이었다. 호텔이 품은 격이 있었고 격에 매이지 않은 파격도 있었다.


호텔 중식당 짜장면은 가성비를 따진다면 합리적인 식사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그릇을 위해 불 앞에 선 요리사들의 팔뚝을 떠올린다. 공기처럼 조용히 손님 뒤에 서서 가볍게 그릇을 나르고 웃음으로 답하는 종업원들을 기억한다. 봄바람 같은 응대, 화살같이 정확한 음식. 치밀한 계산과 오랜 고민이 담긴 한 그릇이었다. 스스로 업무 능력에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당신이 10분 만에 쓴 이메일에 내공이 실리듯, 명함을 건네는 손길에 연륜이 묻어나듯, 그들의 짜장면도 그랬다.


[정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