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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카카오를 국민기업으로
성장시킨 '김범수 의장'

by데일리

카카오톡의 아버지, 카카오 김범수 의장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사용하고 있을 카카오톡. 한국인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사용기간 중 카카오톡의 점유율은 무려 94.4%에 달한다고 지난해 5월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밝혔다. 올 2분기 카카오톡의 국내 월간 이용자 수는 4,400만 명, 글로벌 기준으로는 5,000만 명을 넘어섰다. 카카오페이의 누적 가입자 수도 2,800만 명을 수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수치만 살펴봐도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카카오의 무서운 성장세를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카카오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한때 대학원을 갓 졸업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미래가 가장 기대되는 IT 기업의 창업자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유명​

카카오톡의 창업주이자 카카오톡의 아버지, 김범수 의장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1966년 3월 서울의 한 가정에서 2남 3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현재는 2대 IT 기업의 창업자로서 거부의 반열에 올랐지만, 유년기 때는 집안 사정이 그리 넉넉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렵던 시절을 지나 1986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진학했다. 닷컴 버블 시절 벤처신화를 일군 창업자들이 다 그러했듯 김범수 의장도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대학 재학 시절, 후배 하숙집에서 접한 PC통신에 매력을 느껴 빠져 살았다고 전해진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대학원 졸업과 함께 컴퓨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삼성SDS 공채에 합격하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네이버의 이해진 GIO와 대학 동기이자 입사 동기인 그는 1994년 유니텔 개발에 참여한다. 당시 기획과 설계, 기술 개발은 물론 유통까지, 유니텔의 모든 것에 참여했다. 기존 명령어를 입력해 PC통신을 하던 방식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방식으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유니텔은 1996년 1월 론칭된 이후 그의 삼성SDS 퇴사 해인 1998년에 천리안에 이어 PC 통신 2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유니텔을 성공시킨 김범수 의장은 1997년 유니텔의 퀴즈 이벤트에 7만 명이 참가했던 것을 계기로, 그리고 그 자신이 대학 시절에 빠져있던 다양한 게임들을 떠올리며 삼성SDS에 사표를 던지고 창업에 나선다.

지금은 보편화된 사업 모델인 PC방 런처 사업의 선구자

게임을 다음 세대의 주력 사업으로 삼았던 김범수 의장은 바둑, 장기, 고스톱 등의 보드게임 서비스로 창업을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앞에서 부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PC방을 운영했던 그는 PC방 사업으로 자본 5,000만 원을 모았다. 그 자본으로 1999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김범수 의장은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타 PC방에 무료로 제공하며, 한게임을 PC방 컴퓨터의 초기화면으로 설정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창업한지 3개월 만에 100만 명, 1년 6개월 만에 1,000만 명의 회원을 유치했다.

모바일의 가능성을 직감, 카카오톡 출시​

아이위랩 당시의 김범수 의장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무료로 운영되는 게임 탓에 기대만큼의 수익을 얻지 못했다. 회원 수를 효과적으로 소화해 내기 위해 김범수 의장은 당시 대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네이버컴(현재 네이버)'과 합병했다. 한게임에서 충족시킬 수 없었던 기술력을 당시 네이버컴은 갖고 있었으며 삼성SDS 동기이자 대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당시 이해진 대표와 협의한 결과였다. 그러나 한게임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더 이상 네이버컴의 인력과 서버로는 감당하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에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 유료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2001년 3월부터 적용시켰다. 그해 9월 회사명을 'NHN' 변경했다. 이로써 한게임은 지금의 네이버가 초석을 다지도록 도와준다. 합병 이후 김범수 의장은 5년 가까이 NHN의 공동대표를 맡아 회사를 이끌어 갔다.

 

NHN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내며 2007년 매출이 9,000억 원을 넘어섰다. 당시 이해진 GIO와 경영에 관해 의견 차이가 보였다는 김범수 의장은 2007년 초 NHN USA 대표로 발령이 났다. 2008년 6월까지 NHN에서 이사직을 유지한 김범수 의장이 회사를 떠난 이후 그는 가족이 있던 미국에서 지냈다. 이 기간 동안 '아이폰'을 보며 웹 기반 서비스는 저물고, 모바일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모바일 서비스 중심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아이위랩'이라는 현재 카카오의 모태가 되는 회사를 설립했다. '부루닷컴', '위지아닷컴' 등의 서비스를 시행했지만,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카카오톡 출시 1년 만에 다운로드 수가 1,000만 건을 넘어섰다

2009년 2월 스마트폰 위젯 개발사 '바이콘'을 인수하고 모바일 서비스 개발자를 모집하며, 모바일용 앱 시장에 집중했다. 카카오라는 브랜드를 단 서비스들이 연이어 선보인 것은 이듬해인 2010년부터였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카카오아지트'를 2010년 2월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그해 3월 카카오톡을 출시했는데, 1년 만에 다운로드 수가 무려 1,000만 건을 넘어서면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회사 이름도 '아이위랩'에서 '카카오'로 변경했다.

카카오가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 카카오게임​

수익 모델 발굴에 고민이 많았던 카카오

카카오톡이 그때까지 모바일에서는 없던 새로운 서비스였던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왓츠앱이 당시에 이미 서비스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왓츠앱이 유료였던 데 반해, 카카오톡은 무료로 서비스된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무료 문자 메시지 서비스'로 포장된 카카오톡은 무서운 속도로 이용자를 늘려갔고, 우리나라 제1의 메신저 서비스로 자리를 잡았다. 기존의 PC 기반 메신저 서비스들도 뒤이어 모바일용 앱을 내놓았지만 그 누구도 국내 시장에서 카카오톡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빠르게 스마트폰 필수 앱이자 국민 메신저 자리를 잡았지만, '수익 모델'의 발굴이라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용자는 많으나 그 이용자에게서 어떻게 수익을 거둬들일 것인지가 카카오톡의 숙제로 거론됐고, 실제로 카카오는 상당한 기간을 뾰족한 수익 모델 없이 운영됐다.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톡이 그저 메신저 서비스로 남는데 안주하지 않고 메신저를 뛰어넘는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때 나온 서비스가 플러스친구, 카카오링크, 카카오페이지, 카카오게임 등이다. 처음에는 카카오게임을 출시할 때 메신저가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는 우려 탓에 많은 업체에서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민 게임으로 등극한 '애니팡' ​

어렵사리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사용자들의 반응이 바로 오지 않았다. 그런데 약 2주가 지나니 '애니팡', '드래곤 플라이트', '아이러브커피', '쿠키런' 등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국민 게임'으로까지 불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애니팡은 2012년 출시 75일 만에 다운로드 수 2,000만을 기록하며 카카오게임 서비스 성공에 불을 지폈다. 카카오톡은 성공적인 카카오게임 서비스를 통해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카카오톡 안에 있는 '게임하기 페이지'와 '더보기' 등에 카카오게임이 노출돼 트래픽이 늘어났으며 '초대하기'와 '자랑하기' 등 카카오톡 친구들을 연계한 소셜 요소가 사용자들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때 구글 플레이스토어 최고 매출 Top10의 대부분이 카카오 게임으로 채워질 정도로 수익성도 검증됐다.

적절한 인수합병으로 날개를 달다​

인수합병의 귀재, 김범수 의장

카카오는 IT기업 최초로 자산총액 10조 원을 넘기며 대기업 반열에 들어섰다. 2019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카카오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동일 기업 집단 내 금융사 의결권이 제한되고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관련 규제를 받게 되면서 대기업의 숙명인 '규제'라는 불편함이 생겼지만, 그만큼 카카오가 성장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포털업계 1위인 네이버 보다 빨리 지정됐으며 국내 대기업집단 34개에 속하게 됐다.

 

카카오가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되는데, 대규모 인수합병이 두 차례 진행됐다. 2014년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이 그 첫 번째다. 무려 국내 포털업계 2위에 위치한 다음과 합병했다. 그러나 사실상 카카오가 국내 포털 2인자인 다음을 인수했다. 합병 1년 만에 '다음카카오'에서 '카카오'로 사명을 변경했다. '모바일 플랫폼' 이미지를 보다 명확히 하고, 모바일 시대의 주역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은 2016년에 진행된 음악 콘텐츠 기업인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인수다. 카카오는 로엔엔터테인먼트를 1조 8,70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카카오 연 매출은 9,400억 원이 약간 넘는 정도로 '무리수를 뒀다'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음악 콘텐츠는 중요한 자산이 됐다. 로엔이 서비스하던 '멜론'은 카카오의 유료 음원 서비스가 되었고, 멜론과 카카오톡은 서로 플랫폼의 강력한 시너지를 얻었다.

자산총액 10조 원을 넘어선 카카오

당분간 카카오의 자산총액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번 대기업집단 범위에 카카오뱅크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2019년 7월, ‘카카오의 한국카카오은행 주식보유 한도 초과보유 승인건’을 최종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카카오가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예비 인가 이후 4년 만에 카카오뱅크 주식 34%를 보유하게 되며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의 자리에 올랐다.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유명한 김범수 의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며 인공지능 기술을 구축하는 데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는 2018년 4월 사회 공헌재단 카카오임팩트를 설립했다. 플랫폼을 만들어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다양한 해결 방법을 찾자는 취지다. 여러 신사업을 펼치는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사고의 전환을 통해 계속 놀라움을 자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윤서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