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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뛰어난 투자로 샐러리맨 성공 신화 이룬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by데일리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동양증권에서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하 직함 생략)’은 샐러리맨으로서 입지적인 전적을 쓴 인물이다. 유독 ‘최초’의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래에셋그룹은 시장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공격적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금융사인데, 여기에는 창업자인 박현주의 동물적 투자 감각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번에는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1조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현업에서 고민하고 있는 박현주의 일생을 돌아보고자 한다.

학생 시절부터 유명했던 투자자​

1958년 10월 17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박현주는 광주제일고 재학 시절 부친상을 당했다. 부친의 부재로 방황하며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그는 대신 다양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습득했다. 특히 ‘전략’에 관한 책을 주로 읽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케네디 자서전, 키신저 자서전 등은 수차례 거듭 읽었던 것으로 회고된다. 원래 의사를 지망했던 그는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하다가 문득 자신의 조직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에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입학을 선택하게 된다.

샐러리맨의 신화, 미래에셋그룹의 창업주 ‘박현주 회장’

대학교 재학 시절 그는 모친으로부터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라는 의미에서, 대학교 2학년 때부터 1년 학비와 생활비를 한꺼번에 입금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돈을 나눠서 쓰는 게 아니라 명동의 증권가에서 주식투자를 하는 일탈을 저질렀다. 학교에서 들은 “자본시장의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듣고 증권 시장에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박현주의 일탈은 실패가 아닌 성공의 결과를 맺었다. 그의 시장 예측은 높은 확률로 적중했고, 그 덕에 학생 시절부터 이미 유명세를 얻을 정도로 주식 투자에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대학 시절 투자철학을 정립하다​

그는 명동 사채시장에서 대모로 불리는 백희엽 할머니의 사무실로 출근하고 증권사나 기업 방문 시에 동행하기도 했다. 백할머니는 박현주가 보기에는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중시하는 우량주 중심의 투자자였다. 하지만 긴 분석 끝에 이뤄진 투자가 몇 년 뒤에는 반드시 수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장기투자의 중요성과 가치투자의 기본 개념을 중시하는 투자 기본 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박현주가 19번을 정독한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

대학교 재학 시절에도 그는 많은 책을 읽었다. 대학교에서는 주로 리더십 관련 공부를 열심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그는 기업인이 돼 경영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제3의 물결’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으며, 공부를 위해 이 책을 무려 19번이나 읽었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그는 대학원에 진학함과 함께, 투자자문을 하는 증권연구소를 설립해 학업과 병행해 운영했다.

직장인에게는 신화와 같은 스토리​

이미 증권투자 시장에서는 유명했던 박현주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는 시장분석을 배우기 위해 1986년 스스로 동양증권으로 찾아가 영업부에 입사했다. 동양증권 유명 투자가였던 이승배 당시 상무를 보고 선택한 진로였다. 이미 다른 기업으로부터 대리, 과장급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었지만, 그는 일을 배우기 위해 평사원으로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그리고 동양증권 영업부가 최초로 전국 약정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3억 원 규모의 법인 주문을 따내 전체의 4분의 1을 그가 혼자 해내면서 입사 45일 만에 대리로 승진하게 된다.

박현주는 동양증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동원증권에서 꽃을 피웠다

1991년 동양증권에서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만 32세의 나이에 동원증권 중앙지점 지점장이 되면서 국내 최연소 지점장의 기록을 썼다. 1994년에는 압구정지점의 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듬해에는 동원증권 강남본부장 이사로 승진하면서 역시 최연소의 기록을 써 내려갔다. 증권사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하던 박현주는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동원증권을 퇴사했다. 구재상 압구정지점장, 최현만 서초지점장 등 이른바 8명의 ‘박현주 사단’과 함께 그는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했다.

미래에셋의 설립, 그리고 성장​

박현주는 미래에셋캐피탈을 시작으로 미래창업투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잇달아 설립했다. 창업 6개월 만에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가격이 급락한 채권에 투자를 해 성공을 거뒀고, 1998년에는 주식회사 방식으로 운영되는 펀드를 뜻하는 ‘뮤추얼펀드’를 국내 최초로 출시해 수익률 90%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투자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이 IT 버블을 만나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래에셋은 24억 원을 투자한 다음 주식에서 1,000억 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미래에셋그룹의 시작, 우리나라 금융투자사의 중심이 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디스커버리’, ‘인디펜던스’ 펀드를 출시했다. 이 펀드들은 공모형 개방형 펀드로, 따로 환매일을 정해놓지 않고 누구나 투자할 수 있는 펀드였다. 이 펀드들은 간접투자 열풍이 불고 펀드로 시장의 돈이 모이면서 다시금 미래에셋에 커다란 수익을 가져다줬다. 외환위기 극복, 중국 성장 등 다양한 사유로 펀드는 성장해, 2007년 당시 수익률은 10배에 육박할 정도였다. 하지만 미래에셋의 성장에도 제동이 걸리게 되는데, 바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잠시간의 위기, 그리고 글로벌 시장 공략​

국내 1위의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증시 급락으로 펀드 수익률이 급락하며 위기에 처했다. 미래에셋그룹은 신흥 성장국가의 주식에 주로 투자했으며, 특히 인사이트 펀드를 통해 중국 사업에 자금의 80% 이상을 투자해 왔다. 하지만 중국 증시의 거품이 커지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쳐지면서 펀드 원금이 반으로 줄어드는 사태를 맞고 만다. 2011년에는 미래에셋 주식형 펀드가 10조 원 넘게 줄어드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인사이트 펀드의 급락은 미래에셋에 큰 타격을 줬다

하지만 위기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셋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장기투자를 통해 손해를 본 펀드들이 점차 회복해 갔고, 위기에 대비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분산투자한 덕이었다. 현재 미래에셋은 해외 유망기업,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또 많은 분야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미래에셋대우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중국, 영국,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2조 6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현재 미래에셋그룹은 해외 14개국에서 40개의 법인 및 사무소를 운영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직원 수는 약 12,600명으로 집계된다.

미래에셋은, 박현주는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가​

현재 미래에셋그룹은 2018년 5월부로 각 계열사 부회장들의 책임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박현주는 미래에셋대우의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스스로 그룹에 끼치는 영향력을 줄이고, 글로벌경영전략 고문을 맡으며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룹의 국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박현주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그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돼 미래에셋그룹이 수조 원을 들여 미국의 초호화 호텔 15개를 통째로 사들이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도 뛰어들면서 존재감이 과거보다도 한층 더 커져있다.

미래에셋의 앞으로의 키워드는 ‘글로벌’, 이들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최근 박현주는 임직원들에게 도전정신, 투자 다각화, 글로벌 진출 등의 중요성을 다시금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자가 아니라 자수성가한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박현주의 확고한 투자철학과 인사이트 덕에 미래에셋은 다른 어떤 투자사들보다도 ‘최초’의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다수의 M&A를 성공시켜 국내 굴지의 금융투자전문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경직된 시장상황 속에서도 올해 상반기 압도적인 실적을 달성한 미래에셋이, 그리고 박현주가 어디까지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 시장의 귀추가 주목된다.


최덕수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