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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파산 직전에도

윤리경영으로 당기순이익 7배 늘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by데일리

산부인과 의사였던 이가 국내 30대 대기업 경영자가 되다

국내 비상장사들 중 가장 규모가 큰 기업은 ‘교보생명’이다. 교보증권, 교보문고, 교보AXA자산운용 등 다양한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이며, 우리나라 생명보험업계의 빅3로 꼽히는 이들은 재계 서열로 따져도 30위권에 위치하는 대기업이다. 교보생명의 작년 실적을 살펴보자면 매출 2조 3,430억 원, 영업이익도 8,366억 원에 달한다. 현재 이 대기업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창업주인 고 신용호 회장의 뒤를 이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국내 생명보험사 가운데 유일한 오너 최고경영자인 ‘신창재 대표이사 회장(이하 직함 생략)’이다.

의사가 교보생명 경영에 참여하기까지

신용호 창업주의 2남 2녀 중 장남이자, 의사로 활동했던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1917년 8월 11일 전라남도 영남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마을에서 고 신용호 회장이 태어났다. 신용호 회장의 집은 애국운동에 몸을 실은 독립운동가 집안이었으며, 그로 인해 어릴 때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호 회장은 출판업을 비롯해 수차례 사업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를 거뒀으나, 무작정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에 가입하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라고 설득하며 보험을 판매하며 기어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해방 이후 그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재의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이 사명을 후일 ‘대한교육보험’으로 바꾸면서 지금의 ‘교보생명’에 이르게 된다.


1953년 10월 31일 서울에서 신용호 회장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신창재는 부친이 창업한 교보생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던 인물이었다. 서울 중앙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진학, 그리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의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의사’였다. 산부인과 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10년 동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수로 근무하던 그가 교보생명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창업주이자 부친인 신용호 회장의 암 선고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경영권 승계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신용호 회장은 신창재에게 회사를 물려받을 것을 권고했고, 이를 통해 그는 부회장으로 1996년 11월 교보생명에 임명돼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승계 당시의 교보생명은 위기​

신용호 회장은 회사 정기 건강검진에서 담도암을 발견하고 이를 치료했다. 암 치료 이후에도 정력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업무를 봤지만, 완치된 암이 다시 간으로 전이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2000년 5월, 신창재는 부친으로부터 교보생명 회장직을 물려받았으며 이후 지금까지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고 있다. 신용호 회장은 명예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2003년 9월 19일 별세했다.

경영권 승계 당시의 교보생명은 외환위기의 여파를 완전히 다 극복하지 못한 상태

신창재가 교보생명 회장직에 취임할 때 회사는 외환위기의 후폭풍으로 인해 파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자산 손실은 1997년 외환위기 시절에 2조 4,000억 원까지 치솟았고, 이를 극복한 이후에도 적자가 이어졌다. 외견을 불리는 데 치우친 전략을 펼치다 보니 매출이 늘면 손실은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져있었고, 보험 계약은 10건 중의 3건이 허위일 정도로 실속이 없었다. 신창재가 교보생명 회장으로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회사 내실의 도모였다.

원칙을 강조하며 내실을 기하다

꾸준한 외부 활동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은 인물

처음부터 회사의 경영에 뜻을 둔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은 회사 내부의 모두가 다 아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처음 기업의 경영에 참여했을 때는 대내외적인 반발이 많았다. 의사 출신이라 경영을 모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심지어 2006년에는 임원들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하는 사건도 있었다. 내적으로는 내부 반발이 심했고, 외적으로는 악화 일변도의 사업 실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창재가 회사 내부 구성원들에게 당부한 것은 ‘원칙’이었다. 회사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또 토론하면서 기업의 비전을 세우는데 주력했다. 취임 원년 그는 ‘윤리경영’을 선포했고, 친분 위주의 보험회사 직원들의 영업방식을 바꿔나갔다. 그 결과 1999년 수입보험료 10조 5,500억 원은 2002년 8조 4,800억 원으로 줄었지만, 당기순이익은 503억 원에서 3,566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장기보험 계약 유지율도 61%에서 79.5%로 대폭 향상됐다. 지금도 신창재의 가장 큰 업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교보생명의 건실한 재무구조의 구축이다.

지금을 다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회사가 건실해지면서, 내부보다도 외부에서 먼저 그의 평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포브스는 글로벌판에서 신창재를 커버스토리를 다루며 ‘한 번도 경영인을 꿈꾸지 않았던 의사 출신이지만, 현재는 교보생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2012년에는 매경이코노미의 ‘올해의 CEO’로 선정됐으며, 동년 ‘올해의 아시아 최고 보험경영자상’도 수상했다. 초창기의 우려를 훌륭하게 딛고 일어선 것이다. 다만 회사의 내실이 아닌 외연 확대 측면에서 신창재에 대한 평가는 아직 박한 편이다. 회사가 안정화된 이후 진행된 인수합병 시도들이 번번이 고배를 마신 탓이 크다. 2016년 5월에는 ING생명 인수에 실패했고, 은행업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 시도도 좌절된 바 있다.

국내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인수합병 대신 신창재는 기술 투자에 주력하는 중이다. 보험 업계에서도 ICT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미래에는 기술에 기반한 기업의 혁신이 없으면 제아무리 기반이 탄탄한 보험사라고 하더라도 향후를 쉽사리 보장할 수가 없을 것으로 이야기된다. 신창재는 현재 보험 서비스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인슈어테크사업에 공을 들이며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작년부터 블록체인을 활용해, 수납정보를 기반으로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스마트 보험금 청구 서비스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또한 2017년 4월부터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추진하는 ‘사물인터넷 활성화 기반 조성’ 시범 사업자로 선정돼 개발한 질환 예측 서비스 ‘평생튼튼라이프’도 테스트 중이다.

경영권 방어에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미래를 바라본 ICT 투자에도 적극적, 하지만 지금은 그 투자의 끝을 볼 수 있을지 확약할 수 없는 상황

다만 차세대 산업 육성과는 별개로 현재의 시점에서 신창재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작년 과감하게 밝힌 교보생명의 기업공개가 계획대로 풀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초 신창재는 올해 5월 상장 예비심사 청구, 9월 증시 상장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는 모두 내년 이후로 미뤄져 있다. 주된 이유는 재무적 투자자들과의 갈등 때문이다. 2012년 교보생명은 지분 24%를 FI(재무적 투자자)에게 매각하고, 대신 2015년 9월까지 주식시장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를 약속한 바 있다. 기한 내 기업공개가 이뤄지지 않을 시 신창재가 FI의 지분을 되사는 풋옵션이 여기에 달려 있었다.


FI들은 작년 10월 이 풋옵션을 행사했고, 교보생명의 IPO 계획 발표 후에도 풋옵션 철회를 하지 않았다. 기업공개만으로는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시장은 분석했다. 현재 교보생명과 FI들은 풋옵션 행사 가격을 두고 중재 소송을 진행 중이며, 경우에 따라 신창재가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재 절차 중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제3자 매각 등을 통해 양측이 극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가능성도 남아있긴 하지만, 무난하게 중재가 이뤄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가 금번 분쟁을 잘 극복하고, 교보생명의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내년 하반기에 드러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덕수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