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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혹평을 이긴 명화

by동아일보

동아일보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1930년.

농부로 보이는 남녀가 하얀 집을 배경으로 서있다. 쇠스랑을 든 남자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고, 앞치마를 입은 여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옆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왜 이런 표정으로 서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그림은 미국 아이오와 출신의 무명 화가 그랜트 우드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여동생과 주치의였던 치과의사다. 당시 모델의 나이는 각각 30세와 62세. 화가는 아버지와 딸을 그렸을 테지만 그림은 오랫동안 부부의 초상화로 이해돼 왔다. 배경의 하얀 집은 아이오와주에 실제로 있는 집으로 유럽 고딕 성당 건축을 모방해 지은 전형적인 미국식 농가 주택이다. 우드는 이 그림을 1930년 시카고미술관의 연례 전시회에 출품했다. 그림이 공개되자 대중과 일부 평론가는 찬사를 보냈지만 유명 평론가들은 악평을 쏟아냈다. ‘서양미술사’의 저자이자 미술사 권위 그 자체였던 H W 잰슨은 우드의 그림을 히틀러 정권의 지지를 받던 그림에 비유하며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대중의 의견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유명 비평가였던 클레멘트 그린버그 역시 ‘훌륭한 추상화가들의 실패한 그림’이 우드의 ‘가장 화려하게 성공한 그림보다 더 흥미롭다’며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1930년대는 입체파와 초현실주의가 화단의 주류였고, 이후엔 추상표현주의가 이를 대체했으니 평론가들 눈에 이 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지방 화가의 그림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이웃 같은 그림 속 두 인물의 매력에 열광했다. 아이오와의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성실하고 근면한 농부, 노력으로 소박한 성공을 이뤄낸 미국인, 완고하고 보수적인 시골 사람, 악의적인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부부, 허세 가득한 집에 사는 사람들 등 다양한 해석과 함께 수많은 패러디와 복제화가 쏟아졌고, 변방 화가의 그림은 ‘미국인의 상징’이 됐다. 결국 최고 권위자들의 혹평도 대중의 지지와 열광을 이기지는 못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