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공동묘지까지도

[여행]by 한겨레

김남희의 걷다 보면ㅣ스위스


융프라우·산악열차·기차역 절경

빙하계곡 도시의 무덤도 ‘그림’

조세회피처·물 한병 1만5천원

예쁜 풍경, 부정적 이미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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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마터호른을 바라보며 걷는 ‘다섯 개의 호수길’.

오래된 목조 다리 너머로는 양파 모양의 교회 종탑이, 초콜릿 색 박공지붕을 인 관공서가, 넝쿨 문양의 장식이 화려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상점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아래 흰 파라솔이 걸린 노천카페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자전거를 탄 어른과 아이들이 오갔다. 지붕 덮은 나무다리를 건너오니 강변의 계단에 앉아 글을 읽는 소녀들 뒤로 사진을 찍으며 지나가는 관광객들.


그 풍경 안으로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마른 남자가 바퀴 달린 피아노를 끌고 들어왔다. 거리는 어느새 그가 연주하는 선율로 가득 차올랐다. 빗방울처럼 부서지는 영롱한 선율이 강물과 더불어 흘렀다. 조금은 애절하고 쓸쓸한, 어딘가 먼 곳으로 데려가는 소리였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른 저녁,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선 채로 그의 음악을 들었다. 눈이 마주치는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 좋다, 참 좋네.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우리는 이 도시의 낭만에 흠뻑 젖어들었다.


달콤한 감정은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드는 순간, 싸늘히 휘발됐다. 시내는 더 비쌀 것 같아서 일부러 숙소 근처의 동네 식당을 찾아간 터였다. 치킨 커리와 피시 앤 베지터블, 거기에 물 한 병. 이 간단한 식사의 영수증에는 9만원이 찍혔다. 물값이 무려 1만5천원. 이제 물 대신 차라리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과연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물가를 자랑하는 나라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국경 넘어 옆 나라로 장을 보러 다닌다더니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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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 거리에서 피아노 치는 남자.

천사 같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에이치(H)와 내가 있는 곳은 행복지수가 높기로도 손꼽힌다. 이 나라의 실업률은 2023년 현재 유럽 최저 수준인 2% 내외에 시간당 최저임금은 3만원. 시계와 초콜릿, 알프스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유명하며 공용어가 4개인 영세 중립국. 나 같은 저예산 배낭여행자에게는 언감생심이던 나라, 스위스다. 20대에 지나가듯 인터라켄에서 2박을 한 이후 올해 7월 스위스를 30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엄청난 물가 때문에 우리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다. “저 노천카페 테이블에 앉고 싶어.”(나) “앉으면 1인 3만원입니다.”(에이치) “저 전망 좋은 식당에서 밥 먹고 싶어.”(나) “앉으면 1인 5만원입니다.”(에이치) 결국 얌전히 숙소로 돌아가 루체른에서의 첫 저녁은 그녀가 가져온 누룽지와 즉석 된장국으로 해결했다.


우리가 구매한 스위스 트래블 패스는 스위스의 대중교통을 거의(‘전부’가 아니라는 게 함정) 무제한으로 탈 수 있게 해준다.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먼지 하나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기차는 스위스를 상징하는 것 같다. 기능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한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루체른과 몽트뢰에 머문 후 인터라켄을 거쳐 그린델발트까지 가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예쁘다!” “눈에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어.” “빈곤의 흔적이 어떻게 이렇게 안 보일 수가 있지?” “너무 평화로워 보이네.” “길거리에 쓰레기 한 조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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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곳이니 이곳도 범죄나 사건·사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위스는 어디나 그저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스위스가 누리는 이 모든 삶의 질이 어디에서 왔을까? 용병 수출로 시작해 시계 공업, 제약업 그리고 마침내는 조세회피처로서의 금융업. 마약 딜러와 독재자, 탈세자의 검은돈을 ‘비밀주의’를 내세워 가장 안전하게 보관해준다는 스위스. 이렇게나 깨끗하고 효율적이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돈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여 세탁해주고 그로 인한 부의 축적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니 믿기지 않았다. 스위스는 마약 거래 등으로 국제 수배를 받는 이들의 공조 수사와 범인 인도를 갖은 핑계를 대며 거절·제한하기로 악명 높다. 국경을 맞댄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이 문제로 종종 분통을 터트릴 정도다. 스위스의 사회학자이자 연방의회 의원을 역임했던 장 지글러가 쓴 책 ‘왜 검은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를 읽으며 스위스의 또 다른 얼굴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천사 같은 외모의 소년이 잔혹하게 길고양이를 괴롭히는 모습을 본 듯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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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로 가는 산악열차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그런 어리둥절한 마음은 융프라우를 가기 위해 찾아간 그린델발트에서 정점을 찍었다. 노랑과 초록으로 칠해진 산악열차가 푸른 능선을 따라 이어진 철길을 느릿느릿 올라갔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창밖으로 따라오는 옥빛 호수와 마을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요정이 등장하는 판타지 영화의 정교한 세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이래도 스위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라며 시험이라도 하는 건가. 열차에서 내려 모퉁이를 도니 눈앞에 아이거산(3970m)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우리가 머물 산장은 절벽 끝에 매달린 것처럼 자리해 아이거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 풍경만으로 탈세니 검은돈이니 하는 부정적인 단어들은 저 멀리 달아났다. 눈앞에 보이는 아이거 북벽은 1800m 높이의 수직 절벽으로 바위와 얼음으로 구축된 성벽이다. 1936년 4명의 독일·오스트리아 등반가들이 이 벽에서 자일로 하강하다 떨어져 죽거나 얼어 죽을 때 근처 아이거반트 역에서 일하던 역무원은 등반가 4명을 봤다고 한다. 역의 창문에서 북벽까지는 고작 150m 거리였다는데, 그들의 죽음을 대면하는 심정은 어땠을까. 혼자 살아남아 마지막으로 매달려 있던 토니 쿠르츠를 구조하기 위해 위험한 등반을 시도했던 3명의 가이드도 5m 거리를 닿지 못해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인간의 통제로 더 아름다워진 자연

나는 아이거 북벽에 더 마음이 끌리지만 스위스 최고의 관광지라면 역시 융프라우(4158m)일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3454m)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산악열차가 뚫려 있다. 30년 전에는 없었던 고속 케이블카 ‘아이거 익스프레스’가 생겨 융프라우까지 가는 길이 더 빨라졌다지만 나는 속도에는 별 감흥이 없다.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서는 좀 오래 걸려도 되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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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취 빙하 위를 걷고 있는 여행자.

융프라우요흐 역에 내리니 찬 기운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이곳의 연 평균 기온은 영하 7.9도. 눈앞에는 유럽 최장 길이의 알레취 빙하(22㎞)가 펼쳐져 있다. 융프라우요흐 역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꾸며놨다. 한 주 전에 올랐던 프랑스 샤모니의 에귀유뒤미디(정오 바위)를 관리하는 직원들에게 와서 좀 배우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였다. 펭귄과 북극곰 등 얼음 조각으로 꾸며진 얼음 궁전, 눈썰매나 집라인을 탈 수 있는 스노우 펀, 스핑스 전망대와 360도 영상관, 융프라우 철도의 역사와 노동자들을 기린 곳 등. 대충 둘러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스위스의 자연은 철저히 인간이 통제하고 꾸며놓은 자연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이날 마지막 목적지인 그린델발트에서 숙소로 가는 마지막 기차는 오후 5시 반에 있었다. 이 기차를 타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는 숙소까지 걸어갈 작정을 하면서, 여행의 시간을 좀 더 만끽하기로 했다. 우리는 융프라우요흐 역에서 왕복 2시간 거리인 묀히요흐 산장을 향해 빙하 위를 걸어갔다. 5m 남짓한 폭의 길옆으로 크레바스의 깊은 구멍이 들여다보였다. 설원 너머로는 구름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었다. 산장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맥주 한 잔 안 마실 수는 없지. 국토의 70%가 산으로 덮였다지만 만년설이 없는 나라에서 온 나는 고도 3657m에서 맥주를 마신다는 일에 아이처럼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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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3657m에 위치한 묀히요흐 산장.

기차를 타고 내려와 라우터브루넨으로 건너갔다. 라우터브루넨은 빙하 계곡에 자리해 72개의 폭포와 골짜기로 이뤄진 마을이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곳은 공동묘지였다. “아우, 짜증 나. 무슨 마을이 이렇게 예뻐.” “이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면서 누워있는 거야?” “인생 참 불공평하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묘지를 거닐었다. 오른쪽으로는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무덤의 뒤로는 설산. 풍경을 해치지 않는 작은 비석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서 있다. 물을 주는 조리개도, 우물가도 하나같이 앙증맞았다. 예쁘지 않은 것들은 출입을 금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라우터브루넨에서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왔다. 그린델발트에서 숙소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 2시간. 고개가 가팔라질수록 에이치의 말수는 줄어갔지만, 옆이나 뒤에 그녀가 있어서 나는 얼마나 든든했던지. 산등성이 너머로 조금씩 해가 넘어가고, 나지막한 목조 주택의 색이 점점 짙어지고, 저녁 해의 마지막 기운이 산마루에 두른 비단 띠처럼 붉게 번져 가던 시간. 고개를 넘어온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던 그 저녁, 한 쌍의 스틱을 하나씩 나눠 들고 나란히 혹은 조금씩 떨어져 걸어가는 동안 우리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던 저녁 공기. 말이 없이도 충만했던, 붙잡고 싶었던 여름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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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터브루넨의 공동묘지.

규칙과 관용…아름다움 이면의 혼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목적지는 체어마트.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이 마을의 모든 차량은 전기 자동차이고, 외부 차량은 진입 금지다. 체어마트를 찾는 이유는 등산 철도를 타고 마터호른까지 가기 위해서다. 한때 스위스 여행 기념품 1위였다는 토블론 초콜릿 포장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산이다. 높이 4478m의 마터호른은 알프스 3대 북벽 중 마지막으로 1865년, 에드워드 휨퍼에 의해 등반이 이뤄졌지만 하산길에 4명이 추락사했던 산이다. 이 산의 평균 경사는 45도. 지금까지도 등반하기 까다로운 산으로 꼽힌다. 욕심을 부려 방에서 마터호른이 보이는 곳으로 숙소를 얻었다. 새벽에 침대에 앉은 채 마터호른이 첫 햇살을 받는 모습을 에이치와 함께 지켜봤다. 그녀가 하루 먼저 떠난 후 나는 산악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올라갔다. 다시 웅장한 설산의 장벽에 둘러싸였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대신 ‘다섯 개의 호수 길’을 걸었다. 호수를 따라 걷는 내내 마터호른의 장엄한 봉우리가 따라왔다. 호수에 비치는 마터호른의 모습이 절경이었다. 에이치가 떠난 후 혼자 걷는 쓸쓸함을 마터호른이 어루만져주었다.


이 나라의 자연은 나를 압도했다. 스위스는 언제든 죽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점에서도 나를 매혹하는 나라였다. 기자 출신의 에릭 와이너가 쓴 ‘행복을 찾아 떠난 여행’의 스위스 편을 보면, 이 나라에서는 타인의 평온을 침해하지 말라며 밤 10시 이후 변기 물을 내리거나 일요일에 잔디를 깎는 일조차 금지한다고 했다. 이토록 지독한 ‘규칙 성애자들’이 어떻게 인터폴이 수배 중인 범죄자들에게는 그토록 관용적일 수 있는 걸까. 이런 혼란조차 스위스가 내게 남겨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통해 풍경만이 아니라 풍경이 품고 있는 것, 풍경 너머의 것까지 보기를 원해왔으니. 나는 담담히 혼란을 받아들이며 스위스를 떠났다. 이 혼돈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모아 다시 스위스에 와야겠다고 결심하면서.


글·사진 김남희 여행가

여행가 김남희는 2003년 이후 유목민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는 앉아서 유목하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지은 책으로는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할 땐, 책’,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2023.10.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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