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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거침없다, 그의 입도 붓도

by한겨레

아스게르 요른 아시아 첫 개인전

“싸구려 작품 만들 자유 누릴 거야”

구겐하임 국제상 거부하며 일갈

예술 통한 사회적 발언으로 운동가 면모


아이들 낙서 같은 새로운 터치

그림에 물감 덧칠한 ‘형태 파괴’

‘삼면축구’ 개념으로 흑백논리 부숴

거침없다, 그의 입도 붓도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1962).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 돈 가지고 지옥에나 가라. 상금을 거절한다. 상을 달라고 한 적도 없다. 당신들의 어처구니없는 시합에 내가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길 바란다.”

1963년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이 2년마다 선정하는 ‘구겐하임 국제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덴마크 작가 아스게르 요른(1914~1973)은 이런 내용의 전보를 미술관에 보냈다. 구겐하임은 당시 상금 1만달러 수상자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선정하는 동시에 요른을 포함해 5명의 유망한 작가들에게 2500달러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터였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예술상업주의를 매섭게 비판해왔던 그는 지인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서로 다른 작품의 우열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된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장 끔찍하거나 구역질 나거나 얄팍하고 싸구려 예술작품을 만들 자유를 누릴 거야.”

거침없다, 그의 입도 붓도

1938년 촬영된 아스게르 요른의 초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림·사진·태피스트리·판화·조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을 통한 사회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던 아스게르 요른이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라는 전시 이름을 달고 한국에 왔다. 아시아에서 첫 개인전이 열릴 정도로 우리에겐 낯선 인물이지만, 최근 대안적인 사회 모델로서 각광받는 북유럽 열풍 속에서 ‘주류와 다른 세계미술사’를 모색해온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이 올해 선택한 작가다. 요른이 청소년기를 보낸 덴마크의 소도시에 있는 실케보르 요른 미술관의 소장품 90여점이 선보인다.


드로잉·회화·조각·직물·출판물·사진·아카이브 등으로 꾸려진 전시는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대안적 세계관, 북유럽 전통’ 세가지 얼개로 짜였다. 청소년기부터 사회와 정치, 예술과 문학에 두루 관심이 깊었던 요른은 이십대 초반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떠났다. 페르낭 레제의 아틀리에에서 공부하면서 르코르뷔지에가 1937년 국제박람회에 출품한 파빌리온의 실내 장식을 돕는 인연을 쌓기도 했다.


<꽃을 먹는다>(1934), <율리시스>(1940) 등 그의 전반기 작품에선 칸딘스키를 비롯해 클레·미로 등 당시 그가 매료됐던 표현주의 화가들의 영향이 나타난다. 전시장에 나온 <황금돼지: 전쟁의 환상>(1950)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 등 탐욕과 폭력, 공포의 세계를 거친 붓질로 짐승에 은유했다.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고전주의 화풍의 그림들에 물감으로 덧칠해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만드는 ‘형태 파괴’ 연재물도 전시장에 나왔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얼굴(<세속의 마리아>)이나 양떼가 있는 목가적 풍경화(<선량한 목자>)에 아이들의 낙서처럼 붓질을 더해 새로운 맥락을 창조한다.

거침없다, 그의 입도 붓도

아스게르 요른의 ‘삼치주의’ 개념에 따라 제작된 ‘삼면축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예술가는 동료 예술가와의 교류를 통해 개인 고유의 예술을 창조한다”고 믿었던 그는 코펜하겐·브뤼셀·암스테르담에서 이름을 따온 ‘코브라 그룹’(1948년 결성), 비판적 사회이념을 공유하는 비평가·작가들이 모인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그룹’(1957년 결성) 등 동료들과 지적인 교류를 통해 ‘예술공동체’를 만들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오가며 활동했던 요른의 눈길이 최종적으로 머문 곳은 자신의 뿌리, 스칸디나비아였다. 1961년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를 세우고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스칸디나비아 예술작품을 사진 2만5천점에 담았다. 그는 그리스·로마·중세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문자 중심의 남유럽과 달리 북유럽은 직관적 이미지를 기반으로 ‘야만적이고 행동지향적인’ 고유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봤다. 요른의 작업은 “태초에 이미지가 있었다”는 명언으로 요약된다.


엄청난 독서량을 지녔던 그는 <가치와 경제> <행운과 기회> <법정과 도시국가> 등 예술·정치·사회를 두루 아우르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특히 <자연의 법칙>(1967)에선 미국-소련, 철학-과학기술의 대립 등 이원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3’에 주목하고, 3개 팀이 경기를 하는 ‘삼면축구’의 개념과 도면을 제시했다. 골을 많이 넣은 쪽이 아니라 골을 더 많이 방어한 팀이 이기는 게 경기 규칙이다.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삼면축구는 흑백논리나 양자대결에 익숙한 세계를 부수는 변증법적 사고를 담고 있다”며 “요른 사후 삼면축구에 담긴 정치적·예술적 메시지를 이해한 후배 예술가들이 실제로 삼면축구장을 만들어 ‘경기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전시장 들머리에 삼면축구장이 설치돼 있어 사전에 미술관 쪽에 신청하면 삼면축구를 체험해볼 수 있다. (02)3701-9500.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