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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가문’ 과시하던 청첩장,
신랑·신부가 주인공으로

by한겨레

청첩장 문구로 본 결혼문화 변천사


청첩장 내용·형식에 시대상 담겨

신랑·신부 아닌 3자나 부모가 화자

주례이름 적고 청첩인 여러명 나열

정부, ‘허례허식’으로 발송 금지도


신부·신랑 이야기 담기까지 50년

사진·동영상 첨부 모바일청첩장 등장

장소 안쓰고 하객 초대하지 않기도

“가족제도 변화 탓 점점 줄어들 것”

한겨레

결혼 문화가 변화는 것과 함께 청첩장의 문구도 시대별로 달라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12월 서울 중구의 한 결혼식장에서 열린 결혼식 체험 행사.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결혼의 계절’ 5월엔 청첩장이 참 많이 옵니다. 흰 봉투에 네모난 카드 형식의 지금과 같은 청첩장은 옛날에도 있었을까요? “작은 인연이 하나가 됩니다” 등으로 시작되는 초대글은 옛날에도 그랬을까요? 일제강점기부터 2010년대까지 시대별 청첩장을 통해 우리나라 결혼문화의 변천을 살펴봤습니다.

“근계 시하 입춘지절에 존체 금안하심과 고당의 만복을 비옵니다”(삼가 아뢰오니 봄이 오는 이때 댁의 편안함과 행운을 빕니다.)

지난달 전아무개(33)씨는 자신의 결혼식(5월11일)을 앞두고 지인에게 돌릴 청첩장을 준비하며 1986년에 만들어진 부모님 청첩장을 다시 펼쳐봤다. ‘알리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33년 전 청첩장은 근엄한 궁서체의 위엄을 뽐냈다. 한자가 섞인 세로쓰기였고 아버지는 ‘군’, 어머니는 ‘양’으로 불렸다. 내용 대부분은 결혼식 날짜와 장소 관련이었다.


전씨의 청첩장은 달랐다. “강줄기 모여 큰 바다 이루듯 두 마음이 한마음 되어 나아갑니다” 같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시작됐다. 초대의 말은 “저희의 언약에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로 전달됐다. “한마음으로 진실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 가겠습니다”처럼 앞으로 잘 살겠다는 결혼생활 의지도 빠지지 않았다.


글도 글이지만, 전씨 부부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바로 사진이다. 전씨 부부는 지난달초 사진작가에게 35만원을 지불하고 제주도에서 모바일 청첩장용 사진을 찍었다. 양복과 흰 원피스 등 직접 의상과 촬영 소품을 챙기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신랑 심아무개(37)씨는 “우리의 결혼을 제대로 알리는 건 사진이라 생각해 공을 들였다. 지금껏 종이 청첩장을 여럿 받아봤지만 정작 눈이 가는 건 모바일 청첩장 속 사진이더라”고 말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이곳저곳에서 청첩장이 날아온다. 옛날보다 중요성이 줄었지만 청첩장을 제작해 지인들에게 전달하는 일은 여전히 결혼 과정의 주요한 절차다. 청첩장의 내용과 형식을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결혼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두 집안의 ‘결합’에서 신랑신부의 날로

“한겨울 추위 속에 ○○하다 만난 저희가/따뜻한 봄날 백년가약을 맺게 됐습니다/뻔하디뻔한 남들 인생 베껴 쓰지 않고/저희 둘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겠습니다/부디 귀한 걸음으로 시작을 빛내주세요.”

지난달 6일 결혼식을 올린 신랑 김아무개(30)씨는 몇 달 전 결혼을 준비하며 청첩장에 기재할 초대글을 신부와 함께 작성했다. 청첩장 제작업체가 제시한 문구 중 하나를 고를 수도 있었지만 김씨 부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2시간가량 직접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의 결혼생활을 의논했고, 가로 15자 세로 5줄가량의 문구 100자를 직접 썼다. 김씨는 “청첩장에 우리 목소리가 들어간 글을 직접 작성하는 게 의미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비부부가 직접 청첩장 문구를 쓰는 풍경은 오늘날 낯설지 않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 같은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청첩장에서 결혼 당사자가 직접 하객에게 자신의 결혼을 알리고 예식에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첩장이 처음 생겨난 일제강점기 때부터 1980년대까지 청첩장은 제3자의 시선으로 하객을 초대했다.


고문서 경매 사이트 ‘인터넷 규장각’에 게재된 1972년 11월 결혼식을 올린 김씨 부부의 청첩장을 보자. “위 두 사람의 화촉을 밝히고저 하오니 부디 오셔서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3자의 목소리로 쓰여 있고, 초대하는 주체인 ‘청첩인’도 가족 6명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이 시절 결혼식에 하객을 초대하는 이들은 신랑과 신부가 아닌 가족들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 초중반까지는 부모의 입장에서 쓰인 경우가 많았다. 1995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결혼식을 올린 한 부부의 청첩장을 보면, “저희들의 자녀 ○○○과 △△△이 한 가정을 이루고자 합니다. (중략) 축복해주시면 더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로 시작하고 있다. 청첩장 말미는 “신랑 부모 □□□, 신부 부모 ◇◇◇ 올림”으로 마무리된다. 초대글도 “일생을 함께하기 위해” “백년을 기약코자”처럼 상투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야 신랑과 신부가 화자가 되는 초대글이 보편화됐다. 2008~2012년 사이 만들어진 청첩장 191장의 초대글을 분석한 논문 ‘청첩장을 통해 본 한국 결혼 문화의 단면과 사회’(한국언어문화 제52호, 2013년)를 보면, 191장 중 157장(82.2%)의 청첩장이 결혼 당사자인 신랑·신부의 목소리로 결혼 소식을 알리고 예식에 초대하고 있다. 논문의 저자 손세모돌 대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혼인이라 함은 두 집안의 결합으로 생각돼왔고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의 부모가 혼주가 되어 진행하는 의식이었다”며 “결혼 당사자가 청첩 화자가 되는 것은 결혼이 집안 간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약화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겨레

명성 과시용에서 작은 결혼식으로

결혼이 가족 간의 결합으로 인식되던 과거 청첩장엔 가문의 명성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1970년대 청첩장엔 예식을 주관하는 주례의 이름과 직책을 반드시 적었다. 지금은 신랑과 신부가 성혼서약서를 읽고 부모님이 자녀에게 편지글을 낭독하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상당하지만, 과거엔 주례가 누구인지가 중요했다. 결혼식 하객들은 어떤 명망가를 주례로 모셨냐를 두고 가문의 명성을 따지기도 했다. 신랑과 신부는 자신과 가까운 지인이 아님에도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인물을 모시기에 급급했다. 인터넷 규장각에 올라온 1972년 3월 서울 타워호텔에서 열린 고씨 부부의 청첩장을 보면 ‘주례 민복기 선생’이라고 적혀 있다. ‘민복기 선생’은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이다. 같은 시기 다른 청첩장 역시 ‘주례 정○○ 박사’ 등이 명시돼있다. 임재해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는 “주례는 과거 혼인 의례에서 권위의 기능을 담당했다. ‘박사’가 주례를 서는 것을 통해 자기 가문의 지위가 높아지고 자녀들의 위상이 입증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예식장 등 외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식 장소로 신랑 또는 신부의 집이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전문 예식장이 생겨났고, 결혼식도 점점 상업화돼갔다. 허례허식이 늘자 국가가 아예 청첩장 발송을 금지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누리집의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을 보면, 1969년 정부는 관혼상제를 간소화하자며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령으로 ‘가정의례준칙’도 만들었다. 1973년부터는 청첩장을 발송할 경우 50만원 이하의 벌금도 물어야 했다. 하지만 각종 의례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이 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청첩장 발송은 21년 만인 1994년에 다시 허용됐다. 결혼식 하객 수로 가문의 명성을 과시하려 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작은 결혼식(스몰 웨딩)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족 등 소수의 친지만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하는 방식으로 결혼식을 간소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화가 청첩장에도 나타난다. 장소가 적히지 않은 청첩장을 만들거나, 굳이 결혼식에 참석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 주변에 건넨다. 결혼식 기획과 진행을 돕는 일을 15년 가까이 해온 김은지(39) 웨딩디렉터는 “최근에는 예식에 가지 않아도 되는 청첩장을 만드는 부부를 열 쌍 중 한 명꼴로 만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청첩장 문구는 ‘저희가 결혼을 합니다. 모두 초대하는 게 도리이나 가족들만 모여 간략하게 식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오지 않으셔도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라고 적는다”고 전했다. 간소한 결혼식을 원하는 이들은 청첩장에 “화환과 축의금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예식과 피로연은 좌석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참석 여부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넣기도 한다.

종이에서 모바일로…미래의 청첩장은?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2010년대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주고받는 일이 흔해졌다. 청첩장 제작업체 중 시장 점유율 60%대인 바른손카드는 2011년부터 모바일 청첩장 제작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이 회사 누리집에서 종이 청첩장을 주문하면, 몇가지 항목을 선택하게 한 뒤 모바일 청첩장도 함께 만들어준다. 지난해 이 업체를 통해 종이 청첩장을 주문한 고객 12만여쌍 중 약 78%가 모바일 청첩장도 함께 만들었다. 청첩장을 주문한 고객 중 5%는 종이 청첩장 대신 모바일 청첩장만 주문했다. 최근엔 모바일 청첩장에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 등을 넣기도 한다. 김선길 바른손카드 마케팅팀 과장은 “신랑·신부에게 바로 전화할 수 있는 기능은 물론 예식장 내비게이션 기능, 에스엔에스(SNS) 공유 기능 등 모바일 청첩장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연동한 기능을 모바일 청첩장에 탑재하는 기술도 현재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혼인율이 감소하고 결혼식 자체를 생략하는 문화 등이 퍼지면서 청첩장을 제작하는 고객은 점점 줄고 있다. 바른손카드의 청첩장 주문 고객은 2012년만 해도 15만여쌍이었는데 2015년엔 14만여쌍, 지난해 12만여쌍으로 감소 추세다.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은 독일 등 유럽 일부 나라의 경우 청첩장 자체를 받아 보기 어렵다고 한다. 독일에 2년 반 거주한 김아무개(43)씨는 “함께 살다가 필요하면 결혼 신고를 하고 따로 예식을 올리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결혼식을 할 경우 정말 친한 사람만 40~50명 초대하기 때문에 청첩장을 많이 주고받진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엔 결혼에 준하는 법적 보호제도인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란 제도가 있다. ‘팍스’로 결합하는 커플의 경우 결혼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예식을 올리거나 청첩장을 보내지 않는다.


미래의 청첩장은 어떤 모양일까. 지금과 같은 청첩장은 계속 존재할까. 윤상철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청첩장 제작은 부모 세대에게 아직 필요한 만큼 상당 기간 지속되겠지만, 동거·1인가구 등이 느는 등 가족제도 자체가 큰 변화를 겪고 있어 청첩장 문화도 지금과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