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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미술 경매시장 트렌드…
단색화ㆍ고가품 지고 비기너 유입 반짝

by한국일보

미술 경매 트렌드 살펴보니

미술 경매시장 트렌드… 단색화ㆍ고가품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에서 열린 경매 모습. 케이옥션 제공

지난해 미술경매시장은 ‘거래액 2,000억원 돌파’라는 기록을 썼다. 국내 최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설립된 지 20년 만의 일. 수년 간 더딘 성장세를 보였지만 2015년부터 단색화 열풍이 뜨거워지며 거래 액수가 2배 넘게 늘어난 덕이다. 시장은 올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새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미술계 안팎에선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우선 국내 경매시장 성장을 이끌었던 단색화 열기가 식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판단의 배경이다. 국내 경매시장 투톱 작가로 꼽히는 김환기, 이우환을 제외한 단색화 작가들의 낙찰총액으로 이런 추세를 알 수 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김환기, 이우환과 함께 단색화 6인방으로 꼽혔던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4명의 2015년 낙찰총액은 332억9,603억원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89억2,970만원으로 73.2%나 줄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감정위원장은 22일 “수년 간 경매 시장이 지나치게 단색화 일변도여서 컬렉터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점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미술 경매시장 트렌드… 단색화ㆍ고가품

지난달 12일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유찰된 김환기 '항아리'. 서울옥션 제공

수십억원대 고가품에 대한 수요도 예전 같지 않다. 지난해 11월 열린 케이옥션 경매에선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이 39억원에 경매를 시작했다 유찰됐고, 한달 만인 지난해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선 이중섭의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가 시작가 33억원으로 나왔다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지난달에는 시작가 55억원에 나온 김환기의 ‘항아리’마저 유찰됐다. 그의 반(半) 구상 작품 중 최고가 기록(‘항아리와 시’ㆍ39억3,000만원)을 넘어설 만한 작품으로 꼽혔다는 점에서 의외였다. 한 경매업체 관계자는 “그간 50억원이 넘는 작품들이 매년 1, 2점씩 팔린 게 시장을 키우는 데 큰 몫을 했다”며 “소비에 소극적인 경제 상황이 지속돼 이런 대작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성장세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제 불황의 여파가 경매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미술계 안팎의 분석이다. 매년 3월에는 국내 상반기 메이저 경매가 열리는데,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올 3월 낙찰총액은 146억2,670억원으로, 지난해 3월 총액(223억6,000억원)보다 100억원 가까이 적다. 또 다른 경매업체 관계자는 “국내 경매시장이 저가 매수 중심 시장으로 인식되다 보니 작품을 내놓을 만한 고객을 설득해 좋은 작품을 받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반면 컬렉팅을 갓 시작하는 비기너(초심자)층은 점차 두툼해지고 있다. 구상화 거래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이미 구상화를 보유한 큰손 컬렉터들이 단색화를 이을 새 수집 분야를 찾고 있는 사이, 비기너들이 구상화에 다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간 인기가 주춤했던 구상화가 도상봉, 윤병락의 작품이 올 1월 케이옥션 경매의 근ㆍ현대 부문에 올랐는데, 이날 처음 메이저 경매에 참여한 신규 고객이 두 작품을 모두 구입했다. 업계는 1억원 안팎 작품의 거래량이 꾸준히 느는 현상도 비기너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미술 경매시장 트렌드… 단색화ㆍ고가품

지난달 21일 열린 서울옥션블루 온라인 경매에서 1억원에 낙찰된 카우스X가리모쿠 아트토이 '우드 피노키오'. 서울옥션블루 제공

메이저 업체들은 이 같은 비기너들을 적극 끌어 모으고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해 경매 품목과 형태를 적극 확장하고 있다. 서울옥션이 2016년 10월 설립한 온라인경매 자회사인 서울옥션블루는 아트토이부터 빈티지오디오, 파인아트, 명품가방 등을 취급한다. 지난해 12월부터는 고가 스니커즈 컬렉터들이 늘어나는 흐름을 반영해 한정판 스니커즈까지 끌어들였다. 케이옥션은 2017년 11월부터 매주 진행하는 ‘위클리온라인’에서 스포츠스타나 아이돌이 기증한 물품과 보석, 악기 등을 경매에 부친다.


늘어난 먹거리는 실제 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달 21일 진행된 서울옥션블루의 온라인 경매에서 40㎝ 크기의 아트토이 ‘우드 피노키오’(카우스, 디즈니, 가리모쿠 협작)가 1억원에 낙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매 시작가 800만원에서 출발해 소형 아트토이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3년 전 온라인 경매를 시작할 때는 출품작 중 아트토이 비중이 15% 남짓이었지만, 지난달 경매에선 56%로 훌쩍 올라섰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