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나?" 남편이 펄쩍 뛰며 리마인드 웨딩 반대한 이유

[라이프]by 중앙일보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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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떠난 해이니 5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이웃집을 들렀는데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드레스 입은 부부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이들이 결혼기념일이라고 억지로 주선해서 찍은 거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목구비가 고운 여자였지만 시골로 시집와서 농사지으며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몸빼 바지만 입고 일하는 것만 봐온지라 50대 나이에 신부 화장을 곱게 하고 하얀 드레스를 입었으니 당연히 몰라볼 만큼 예쁘고 화사했다. 문득 그 변신이 부럽기도 했다.


며칠 후 딸이 전화해서 하는 말이 올해 부모님께 리마인드 웨딩을 올려주기로 동생과 계획해 놨으니 그리 알란다. 엄마아빠 결혼 35주년 되었으니 이참에 우리 가족도 모두 드레스를 맞춰 입고 멋지게 한번 찍어 보잔다. 늙은 주인공들 핑계로 자기네 가족들 드레스 입고 찍은 행복한 모습이 그려지는 듯 더 호들갑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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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드레스가 진열된 드레스 숍에서 모든 것을 빌려주고 화려한 신부화장도 거기서 다 해주는, 그것은 사진관에서 하는 일종의 이벤트다. 원판불변의 법칙은 요즘 사진관에서는 안 통한다.


견본 사진 속 부부들이 모두 탤런트가 따로 없다. 지루한 나날 속에서 가끔은 벽에 걸린 사진만 봐도 기분이 업 될 듯싶다. 사진기술도 어찌나 세밀한지 밀고 깎고 칠해놓으면 본인도 가끔은 아닌 듯 맞는 듯 싱숭생숭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기로 하니 이런저런 상념에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이 아무래도 그해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처음 큰 병을 얻어 시골 내려올 적엔 너무 두렵고 무서운 생각에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한사람에게 온통 마음을 올인 하고 살았다.


해가 점점 늘어가며 마음은 조금씩 느긋해졌지만 늘 죽음을 화두에 두고 대화하고 또 대화했다. 언젠가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말자는 약속 같은 것이 늘 잠재해 있었다.


그래서, 곧 떠난다 해도 리마인드 웨딩을 하고 떠나면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그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고, 남편도 떠나기 전에 나에게 주는 큰 선물이 될 것이고, 남편에게도 살아있을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선물이 될 것 같은 보람찬 착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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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그 사람이 떠났다. ‘아빠 떠나고 느 엄마 그 사진 보며 질질 짜는거 보고 싶냐며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엄마의 남은 인생 잘 살게 도우라’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혼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남은 몇 달이라도 무쇠 같은 지금 모습을 바꿔서 처음 만난 순간처럼 풋풋하고 젊은, 나긋나긋하고 수줍은 여자로 변신이라도 해볼 걸 하고 후회한 시간이 있었다.


친구가 부부싸움을 하고 와서 이런저런 푸념을 하던 날~ 나는 지난 이야기를 하며 나 자신을 새롭게 변신해 보지 못한 시간을 후회했다. 앞사람을 바꾸긴 힘들어도 내가 변신 하는 건 해 볼 만한 놀이다.


시장 한 바퀴 함께 돌며 기분전환을 한 친구는 어떤 변신에 성공했는지 요즘 목소리는 솔~솔~부는 봄바람이다. 이웃집 여인 같은 부인 모습에 첫사랑 만난 듯 남편이 먼저 리마인드 웨딩을 하자고 애원할지 모른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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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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