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에 '사린가스' 내민 日, 자국민 트라우마까지 건드려"

[이슈]by 중앙일보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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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영방송인 NHK가 9일 “한국 기업이 사린가스 등 화학무기 제조에 전용할 수 있는 에칭가스를 생산하는 일본 회사에 납품을 재촉하는 등 안보상 부적절한 사례가 다수 있었다”며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정당화했다. 이에 대해 국내 화학 전문가와 기업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논란이 불붙은 에칭가스를 팩트체크했다.


에칭가스는 순도 99.999%인 ‘고순도’ 불화수소다. 반도체를 만들 때 필수 공정인 웨이퍼를 깎는 ‘식각(에칭)’에 쓴다. 일본 기업이 전 세계 수요의 90% 이상을 생산한다. 화학적으로 뜯어볼 때 불화수소는 무엇일까. 불소ㆍ수소 원자가 하나씩 붙어있는 구조다. 물과 잘 섞이는 특성을 가진다. 사람이 가스 형태로 들이마셨을 때 체내 폐ㆍ기관지에 있는 수분과 만나 독성물질인 ‘불산’으로 변한다. 독성물질인 불산은 체내에서 폐 등에 염증을 일으킨다. 심할 경우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런 불화수소를 화학무기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건 맞다. 특히 호흡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생화학 무기 제조에 활용할 수 있다. 일본 주장대로 핵무기의 핵심인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우라늄 광석을 불화수소로 녹이면 우라늄이 육불화우라늄(UF6)으로 바뀐다. 고농축 우라늄은 UF6를 원심분리기로 돌려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불화수소가 ‘고순도’ 불화수소란 데서 근거 없는 주장이란 얘기가 나온다. 솔브레인 등 국내 업체가 저순도(순도 97% 안팎)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업체도 저순도 불화수소를 만든다. 그런데 이 저순도 불화수소로도 충분히 생화학 무기나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본 측 주장에 따르더라도 쉬운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일부러 어려운 길을 돌아갔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과거부터 독가스를 만들거나 우라늄을 농축할 땐 저순도 불화수소를 사용해왔다”며 “굳이 비싼 데다 구하기도 어려운 일본산 고농도 불화수소를 해당 목적으로 쓸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불화수소를 화학무기 제조에 쓴다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반도체 회사 관계자는 “수입 원료 중에서도 불화수소 같은 독성 물질은 주문량ㆍ입고량을 완벽하게 대조한다”며 “불화수소가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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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사린가스를 언급한 건 사린가스에 대한 일본인들의 ‘트라우마’를 국내 여론전에서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사린 가스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화학무기로 썼던 신경 독가스다. 무색ㆍ무취이지만 독성이 매우 강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전쟁이 아닌 일상에서 테러 도구로 쓰이면서다. 일본에서 1995년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를 저지를 때 사용했다. 당시 테러로 13명이 숨지고 5000명 이상 부상자가 발생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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