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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여든 앞둔 배우도 사인…43만명 '좋은 죽음' 미리 동의했다

by중앙일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꾸준히 늘어

여성, 70대, 수도권 ↑…등록 기관 373곳

연명의료계획서도 3만1616명 서명 완료

연명의료 결정 3명 중 2명은 '가족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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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에 미리 동의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중앙포토]

"저희 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과 작별하셨습니다. 누구보다 편안한 얼굴로, 조용히 눈을 감으셨죠. 현명한 판단을 하신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저도 건강할 때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24일 공개한 3분짜리 스토리 영상에 나온 내용 중 일부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지난해 2월 시행된 이후 ‘좋은 죽음’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에 미리 동의하는 국민이 빠르게 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이 43만명을 넘어섰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도 3만명을 넘겼다.


이날 공개된 올해 연명의료결정제도 운영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43만457명에 달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등에 대한 결정,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하는 것이다. 등록자 수는 최근 몇 달간 꾸준히 12~16%대 증가율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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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늘어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그래픽=신재민 기자

특히 지난달에만 5만2107명이 새로 의향서에 서명했다. 이런 추세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5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성별로는 여성 등록자가 70.8%로 남성의 두 배 이상이었다. 남녀 모두 70대가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는 경기(25.7%), 서울(23.9%) 등 수도권 지역에 집중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는 기관은 전국 373곳(지난달 기준)이다. 건강보험공단 지사와 병원, 보건소 등이 해당한다. 다만 강원·충청·전라 지역에선 의향서 등록기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스토리 영상에 '아버지'로 출연한 배우 신충식(77)씨도 존엄한 죽음에 미리 사인했다. "평소 사람이 어떻게 죽고 사느냐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여든을 앞두고 삶을 어떤 식으로 정리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지난해 병원 정기 진료를 다니던 중에 건강보험공단 지사에 문득 들어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신씨는 "원래는 혼자 의향서를 쓰려고 했는데 아내가 대뜸 같이하겠다고 해서 두 사람 모두 썼다"면서 "지인들에게도 죽을 때 가족들 고생시키지 말고 의향서를 쓰라고 추천했다. 의향서를 꼭 알리고 싶어 영상에도 출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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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계획서 등록도 늘어.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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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기관에서 사용된 연명의료계획서. [뉴스1]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매달 1000여명씩 새로 등록하면서 지난달 기준 3만1616명이 서명을 마쳤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의사를 적는 서류다. 연령별로는 70대가 가장 많았고 60대, 50대가 뒤를 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반대로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의 62.6%는 남성이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사무총장은 "여성들이 의향서를 많이 쓰는 건 아무래도 정년퇴직 후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각종 정보나 제도에 노출이 많이 돼서라고 생각한다. 반면 계획서가 남성 중심인 이유는 가부장적 사회를 겪은 할머니들이 자신보다 가족에게 임종을 결정토록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면서 "정확한 이유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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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중단 결정 이행 유형 살펴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들 서류를 작성했다면 실제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을 결정하는 상황에 활용된다. 임종기 환자라는 의료적 판단은 의사 2명(담당 의사+해당 분야 전문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 후 의사 확인 과정을 거쳐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을 결정한 환자는 7만996명(지난달 기준)에 달한다. 이 중 연명의료계획서를 바탕으로 결정한 비율은 32.5%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4%였다. 반면 계획서나 의향서가 아니라 환자 가족 두 명 이상의 진술로 결정한 경우는 32.3%, 가족 전원 합의 결정은 33.8%로 나타났다. 환자가 직접 쓴 서류에 따른 결정 비율은 3명 중 1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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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중환자실 병실 모습. [중앙포토]

김명희 사무총장은 "아무래도 아직 제도 도입 초기라서 계획서나 의향서 작성에 따른 결정보다는 가족 개입에 의한 결정이 더 많은 상황이다. 앞으로 제도가 더 활성화돼서 자기 결정권에 따른 임종기 연명의료 결정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연명의료결정제도 스토리 영상과 공익광고는 앞으로 국민도 볼 수 있다. 공익광고 영상은 25일부터 JTBC와 KTX 등으로 1개월간 송출된다. 대국민 홍보를 위한 스토리 영상은 제도 교육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20초 공익광고에 출연한 배우 윤유선(50)씨는 "우리의 건강한, 아름다운 임종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두는 지혜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서 기꺼이 국민께 알리는 데 나섰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