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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손이 내마음대로 붓따라 갔어요" 9살 '리틀 피카소' 김하민

by중앙일보

만 아홉 살 꼬마가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들의 붓 터치를 거침없이 표현한다. 물감 위에서 아장아장 걸음마 하며 놀던 아이는 네살 때부터 유화로 거장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피카소라 불리는 이탈리아 화가 밈모 팔라디노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고,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을 위한 그림책도 냈다. 이제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영재 화가 김하민(9)군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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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피카소' 김하민군이 자신이 그린 좋아하는 그림들과 함께 누웠다. 왼쪽 아래부터 예수 그리스도, 집에서 키웠던 닭을 그렸다. 살바도르 달리, 황소를 닮은 백마 우리를 본다, 마이클 잭슨, 윤봉길 의사. 하민이의 곁에는 가장 좋아하는 인형 '강순이'도 함께 했다. 장진영 기자

하민이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태어났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하민이를 품에 안으며 엄마 김민주(41) 씨는 ‘이렇게 살아났으니 사람을 살리는 아이’가 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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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만6세)때 하민이가 그린 고흐 자화상. [사진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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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부산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단체전 전경. [사진 김민주]

유치원 교사였던 엄마의 곁은 하민이의 놀이터였다. 수업준비를 하는 엄마 옆에서 자연스레 물감, 색연필, 색종이 등을 가지고 놀았다. 엄마는 ‘옷에 묻으니까, 위험하니까’라며 막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만지고 느끼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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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이가 천장에 그림을 그릴때 쓰는 사다리에 앉았다. 사다리는 하민이의 애장품이다. 장진영 기자

하민이가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성경책을 읽어주면서 부터였다. 밤마다 잠들기 전 하민이에게 성경책을 읽어 주었는데, 성경에 나온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관련된 명화들을 보여줬다. 그림책을 보여줄 때는 글자만 읽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림 하나만 보고도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끌어냈다.


엄마가 말했다. “세 살 때 키즈카페를 데려갔는데 놀지 못하고 나가자고 떼를 쓰는 거예요. 우연히 근처 미술관을 들어갔는데 그림 앞에서 부동자세가 되더군요. 그림에 온전히 빠져서 유심히 관찰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아이를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에게 욕심이 생길 거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초상을 그리는 하민이

네 살부터 하민이는 대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예배당 천장화를 따라 하기 위해 책상 아래에 누워 그림을 그리고, 라파엘로와 조토 디 본도네의 그림도 따라 그렸다. 르네상스 화가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특히 좋아했다. 여섯 살 때는 다빈치처럼 유화물감에 달걀노른자를 섞어 최후의 만찬을 그려냈다. 하민이는 특별한 교육 없이 스스로 화가로 커갔다. 엄마는 관심 분야의 책을 읽어주는 것만 했다. 소재를 선택하고 주제를 그려나가는 건 온전히 하민이의 결정이었다. 한때는 누드화에 빠지기도 했다. 엄마가 설명했다. “아빠가 보수적이라 걱정이 많았어요. 멘토 교수님(김윤섭 숙명여대 회화과)을 찾았는데 ‘대학에서도 1년 과정으로 배우는 과정이 저절로 온 것’이라고 하셨어요. 여체를 하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표현하기 힘든 곡선을 자연스레 그려나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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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뒷모습을 누드화로 그렸다. [사진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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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캔버스에 처음 그림을 그리고나서 영감을 주체하지 못해 그 위에 4번을 덧칠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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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때 박스에 그린 최후의 만찬. [사진 김민주]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좋은 물감을 써서 캔버스에 그리지는 못했다. 엄마는 “주로 A4용지에 그리고 유리창, 벽지, 심지어 박스에 그리기도 했어요. 어깨 통증을 많이 호소했는데 좋은 물감을 사주니 붓이 잘 나간다고 좋아하더라고요”라며 속상해했다. 하민이가 제일 좋아했던 선물은 아사천(캔버스 재료의 한 종류)과 천장에 그릴 때 쓰는 사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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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이의 작업실 모습.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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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그린 찰리 채플린. 하민이는 이 그림에 대해 "손이 붓따라 붓따라 갔어요. 내 느낌대로, 내 마음대로 붓따라 손이 갔어요. 그러고 나서 멀리서 보니 찰리 채플린이 웃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사진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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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그림을 그리는 하민이. [사진 김민주]

일곱 살이 된 하민이는 영재를 발굴하는 콘셉트의 한 공중파 프로그램 출연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방송 촬영을 위해 하민이는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언젠가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하민이의 바람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하민이는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게 된다. 살아있는 피카소라 불리는 거장 밈모 팔라디노를 만난 것이다. 하민이가 말했다. “피카소를 좋아할 때였는데 밈모 할아버지와 피카소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신나는 순간이었어요” 팔라디노의 나폴리 저택에 초대받아 그가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민이의 영감에 팔라디노도 붓을 들었고 둘은 즉석에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완성했다. 그리고 영국의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을 위한 그림책도 냈다. 형을 잃고 상심한 그를 위해 ‘웃어요 고릴라 할아버지(김노은 글, 김하민 그림)’를 만들었다.

에덴동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리고 있는 하민이. 해마다 다르게 다빈치를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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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밈모 팔라디노의 작업실에서 콜라보레이션 작업. [사진 김민주]

현재 하민이의 관심사는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가’이다. 그 이유에 대해 하민이는 “역사책과 SNS로 그 시절을 찾아봤는데 마음이 울렁울렁했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등의 독립운동가를 그렸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작품을 완성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그리고 아이답게 꿈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 그리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있어요. 그 사람이 되어야 그릴 수 있으니까요. 화가도 되고 싶지만 독립운동가도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큰일이 벌어지면 미리 대비해서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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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진행한 엔디 워홀 드로잉쇼. [사진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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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공동저자 김노은양과 함께. [사진 김민주]

하민이는 지금까지 4번의 개인전 2번의 단체전, 3번의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작품판매 수익은 모두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사람을 살리는 아이’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하민이는 28일부터 열리는 ‘아트제주페어’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출소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아트페어의 작품판매 수익금도 출소자 자녀를 위해 기부할 예정이다. “감옥에 있으면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는 거잖아요. 그분들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죄를 안 지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마음을 그림으로 보듬어주고 싶어요”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