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버틴 사람 없었다···'아마존 호미' 만드는 20대 청년

[비즈]by 중앙일보

영주 호미 장인 석노기 선생 제자…대장간에서 일 배우는 중

해군 부사관 출신, 응급구조사로 군 생활한 청년

"남이 안가는 길,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헬스 좋아하지만, 호미 날 세울 때가 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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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중순 세계적 온라인 쇼핑몰인 미국 아마존의 원예 용품 '톱10'에 한글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상품이 올라왔다. 'Youngju Daejanggan ho-mi(영주대장간 호미)'.


경북 영주 영주대장간의 석노기(66)씨가 만든 호미였다. 이후 석씨의 호미는 '아마존 호미' '한류 호미'로 불리며 지난해까지 5000자루 이상 미국 등 해외로 수출됐다. 석씨는 지난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 주문이 몰렸을 때 아마존이라고 해서 어떤 숲에서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단체로 호미질하려나 했었다"면서 "호미 명맥이 끊어지기 전에 후계자를 찾아 대장장이 기술을 전수해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라고 했다.


지난 8일 오전 찾은 영주대장간. "땅! 땅! 땅!" 석씨가 검은색 그을림이 묻은 개량 한복을 입고, 불에 달궈진 'ㄱ'자형 호미 날을 힘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뒤 "황군아~"라고 창고 쪽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예 선생님"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20대 청년이 석씨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커먼 장갑을 낀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서다. 석씨는 기자에게 "몇달 전부터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는 내 제자. 좀 지켜보고 있어"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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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서적 대신 시골 대장간에서 '아마존 호미'를 손에 든 청년이 있다. 석씨의 후계자가 되겠다며, 무작정 영주대장간을 찾아가 대장장이 되기를 청한 황덕환(28)씨가 주인공이다. 뜨거운 불똥이 몸에 튀고, 시커먼 쇳가루를 하루종일 뒤집어써야 하는 고된 시골 대장장이를 20대 청년이 자처한 것이다.


황씨와 영주대장간의 인연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 후 2013년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 2018년 중사로 전역한 그는 대구에서 1년여간 취업 준비를 하다가 유튜브로 아마존 호미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호미 영상을 보다가 대장장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상에서 석 선생님이 대장장이를 하려는 사람이 없어 호미 만드는 기술 명맥이 끊어질 것 같다고 걱정을 하시더군요. 고민 끝에 결심했죠. 남이 가지 않는 길,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 그런 일을 한번 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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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를 타고 무작정 영주대장간을 찾아간 황씨는 처음 만난 석씨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 잠자리도 알아서 하겠다"며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다. 처음엔 석씨가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20대 청년이 하기 힘든 일이라고 하셨어요. 여러 번 부탁드려 결국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죠. 지난해 8~9월은 대장간 근처에 원룸을 구하고, 분위기 보는 정도로 지냈어요. 본격적으로 호미 만드는 일을 한 건 10월부터입니다. 대장간에서 점심도 주고, 월급도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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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호미가 '대박'을 치고, 영주대장간엔 지난해에만 4~5명이 석씨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일주일 이상 버틴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게 석씨의 이야기다. "고된 사회생활을 겪은 40대 50대도 못 버티는 힘든 일이 대장간 일이예요. 20대 청년이 얼마나 할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는 잘 배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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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호미 만드는 기술 배우기를 기대했던 황씨. 그러나 대장간 일을 시작하고 첫 일 주일은 청소만 했다. 시커먼 쇳가루가 가득한 바닥을 이리저리 닦고 쓸고만 수십번 했다고 한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하나 기술을 배워 현재는 밤나무로 된 호밋자루를 날에 끼우고, 호미 날 재료를 다듬는 일을 한다. '최고장인 석노기'라고 쓰인 호미 도장 찍는 일까지 맡았다. "오전 7시 30분 대장간에 제일 먼저 나와 청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오후 5시쯤 퇴근한다고 보면 됩니다."


영주대장간을 나서면 그는 영락없는 28살 청년이다. 헬스를 즐기고, 유튜브도 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친구들과 소통하고, 주말 쉴 때 도시로 나가 '소개팅'을 하기도 한다.


스승인 석씨는 그를 엄하게 가르친다.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 같은 작은 실수라도 하면 큰소리로 야단을 친다. 황씨는 "선생님이 '이 날은 좀 잘 갈았다. 이건 좀 잘했구만.' 같은 칭찬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황씨가 진짜 '아마존 호미' 후계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날 가는 법을 더 배워야 하고, 망치로 두드려 날의 형태 잡는 법도 익혀야 한다. 원재료를 불로 가공하는 법도 공부해야 한다. 대장장이가 혼자 제대로 된 호미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선 2년 이상 배워야 가능하다고 한다.


영주대장간 호미는 지금도 미국 등 해외에서 최고의 소형 농기구로 대접받는다. 호미를 처음 접한 외국인들은 '쓰기 편하고 손목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는 칭찬을 한다. 올해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호주·독일로도 수출길이 열릴 전망이다. 최근 이들 나라 유통 업체들이 대장간을 찾아와 호미 '샘플'을 받아갔다.


황씨의 이야기다. "중학교 선생님,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부모님이 경북 상주에 계셔요. 아직도 공무원 준비 같은 취업 준비를 하라고 하세요. 지인들도 시골에서 왜 힘들게 그러냐고 해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만큼 끝을 볼 겁니다. 호미 날을 갈고, 날카롭게 그 날을 세울 때의 그 기분, 대장장이 일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는 "유튜브를 보거나 친구들과 카톡 할 때 보다 호미 날을 세우고, 갈 때가 더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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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 대구의 한 전문대학에서 '부사관학'을 공부하고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황씨는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와 작은 인연이 있다. 입대 전 응급구조사 면허(2급)를 취득, 군 생활 대부분을 의무대 부사관으로 보내면서다. 경기도 김포의 한 부대 의무대에서 근무하던 2016년 아주대 중증외상센터로 파견 근무를 간 게 이 교수와 작은 인연을 만들었다. 황씨는 해군 부사관 시절 모범 군인으로 인정받아, 사단장 표창, 대대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아주대 중증외상센터는 해군과 인연이 있다고 한다. 이 교수가 해군 출신이고, 아덴만 작전 후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해군은 중증외상센터에 부사관 중 응급구조사 면허가 있는 부사관을 뽑아 몇달씩 파견을 보낸다. 응급구조 활동을 지원하고, 이 교수의 수술을 참관하며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황씨는 이렇게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에 파견을 가서, 몇 달간 이 교수 의료진들과 함께 근무했다. 이 교수가 수술할 때 수술실에 들어가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황씨는 병원에서 자대 복귀를 할 때 이 교수와 같이 식사를 하고, 기념 촬영을 했는데, 그 기억과 사진을 아직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해군 선배인 이 교수에게 개인적인 존경심이 있다면서다.


그는 "힘들 때 가끔 군 시절을 생각하는데, 그때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이 기념사진을 찾아보기도 한다"며 "이 교수님은 늘 신중하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신 분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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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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