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있어도 살린다"…'존버' 하듯 현실 닮은 낭만닥터

[컬처]by 중앙일보

[민경원의 심스틸러]

‘낭만닥터 김사부 2’ 새 얼굴 안효섭

편가르는 이들 속에서 중심 지키며

김사부 이어 제몫 해내는 청춘 그려

탄탄한 기본기로 아이돌 이미지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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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 이상한 병원, 이상한 어른들, 그리고 엿 같은 나의 현실.”


이달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를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극 중 GS(외과) 펠로 2년차인 서우진(안효섭)의 내레이션처럼 강원 정선에 있는 돌담병원은 김사부(한석규)를 비롯해 이상한 것 투성이인 공간이다. 응급환자라는 이유로 CT도 찍어보지 않고 수술에 들어가는 것은 약과다. 그 환자가 국방부 장관이라는 이유로 호들갑을 떠는 본원(거대병원) 사람들과 달리 돌담병원에서는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라는 김사부의 신념이 곧 지침이요, 환자의 생명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지켜내야 할 가치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병원은 본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삶을 끝내기보다는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한데 권력 다툼과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되레 낯설게 보이는 것이다. 이상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뉘어 서로를 짓밟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들이라니. 생경할 수밖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동반 자살을 시도한 부모님 사이에서 홀로 살아남아 학자금 대출 등 날로 불어나는 빚더미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서우진에게는 이 이상적인 공간이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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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엿 같기로 따지면 현실에선 그보다 더 심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비단 경기 남부 권역외상센터 운영을 둘러싸고 잡음을 빚고 있는 아주대 병원과 이국종 센터장처럼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아니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갈등으로 인한 신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드라마 기획의도에 쓰인 ‘보수와 진보, 금수저와 흙수저, 갑과 을, 주류와 비주류, 심지어 남자와 여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분법으로 나뉘고 양쪽의 대립은 극한의 혐오로 바뀌고 있다’는 문구처럼 제아무리 금수저나 슈퍼 갑이라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 하지만 이는 서로 들어보려고조차 하지 않은 채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다름이 곧 다툼이 되는 셈이다.


4회 만에 20%를 목전에 둔 시청률은 이 같은 상황에 공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2016~2017년 방영된 시즌 1은 8회 만에 20%를 돌파해 27.6%(닐슨코리아 기준)로 종영했지만, 이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방영 전까지만 해도 시즌 1에서 한석규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고 간 유연석과 서현진 등 주연 배우들이 빠진 것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시즌 2에 합류한 안효섭과 이성경 등이 이들의 빈자리를 잘 메워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안효섭(25)은 데뷔 5년 차 신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원래 돌담병원에서 근무했던 사람처럼 이질감 없이 녹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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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1의 한석규, 유연석, 서현진. [사진 SBS]

그가 이 드라마에서 돋보이는 이유는 누구 편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는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남을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아서다. 빚쟁이에게 쫓기는 그는 연봉을 많이 준다는 말에 선배 병원에 따라갔다가 내부고발자가 되고, 호스트바에 나간다는 소문에 휘말려 본원에서 쫓겨나는 등 숱한 꼬리표를 달고 다녔지만 먼저 나서서 낙인을 찍는 법이 없었다. 본과 내내 1등만 하던 CS(흉부외과) 펠로 2년차 차은재(이성경)가 수술실만 들어갔다 하면 구토를 하고 쓰러져도 그를 비난하거나 몰아세우지 않았다.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며 묵묵히 자기 몫을 해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우진은 시즌 1, 2를 통틀어 김사부와 가장 닮은 인물이다.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는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한다. 시즌 1의 강동주(유연석)와는 또 다른 방식이다. 같은 흙수저라 해도 강동주가 금수저처럼 살고 싶어서 발버둥 쳤다면, 서우진은 생존에 방점이 찍혀 있는 탓이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청춘이지만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움직임을 덧대지 않는다. 그저 그에게 주어진 일주일, 이제는 열달을 돌담병원에서 버텨내기 위해 애쓸 뿐이다. 마치 우리가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존버’하듯 그 자리를 지켜낸 그에게 믿음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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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시양, 권도균, 안효섭, 송원석 등으로 이루어진 원오원. [사진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안효섭이라는 배우가 걸어온 길도 그랬다. 2015년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곽시양ㆍ권도균ㆍ송원석과 함께 배우 그룹 원오원으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그에게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7살 때 캐나다에 이민 간 부모님을 따라 토론토에서 17살까지 살다가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발탁돼 홀로 한국에 돌아온 그의 이력은 아이돌에 더 가까웠고, 예닐곱살 많은 형들 사이에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마냥 어색해 보였다. 이후에도 그가 맡은 역할은 주로 잘생긴 외모가 곧 캐릭터 설명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5년 전 발표한 ‘마비가 됐어’ 뮤직비디오는 이제 안효섭 팬들의 인증 창구가 됐다. ‘퐁당퐁당 LOVE’(2015)부터 ‘딴따라’(2017) ‘어비스’(2019) 등 그의 작품을 보고 찾아왔다는 댓글로 도배되고 있으니 말이다. ‘퐁당퐁당 LOVE’에서는 커터칼 액션 한 장면을 위해 3개월 동안 무술학원에 다니고, ‘가화만사성’(2016)을 찍을 때는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며 짜장면 10그릇을 실제로 먹어 치우는 등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한 결과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2019) 촬영 때도 조정부원들과 두 달간 매일 연습하는 바람에 8~9㎏이 빠졌다니 화면 밖에서 흘린 구슬땀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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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는 ‘낭만닥터 김사부’가 다른 의학 드라마와 다른 점은 “병원 밖에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 내의 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환자, 의사들과 환자들을 통해 2020년이 가진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풀어낸다”는 얘기다. 그는 극 중 저마다의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을 ‘진짜 의사’로 길러낸 것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진짜 배우’로 성장시켰다. tvN ‘블랙독’으로 호평 받고 있는 서현진뿐만 아니라 유연석과 양세종 역시 각각 ‘미스터 션샤인’(2018)과 ‘나의 나라’(2019)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연기를 선보였다. 이쯤 되면 ‘촬영장 밖에서도 문제를 던져주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낭만 배우만의 트레이닝이 계속된 게 아닐까. 모든 의학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성장 드라마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시즌 2가 탄생시킬 ‘진짜 배우’들의 성장사도 기대된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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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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