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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일자리 대전환시대①

'셀프 계산대 vs 인간 계산원' 6분 대결에 걸린 일자리 운명

by중앙일보

편의점당 고용 2년새 7명서 5명

유통기업 ‘일자리 텃밭’ 역할 흔들

“고용시장 유연화해 충격 줄여야”

오프라인 이마트 고용 2만5797명

온라인몰 쿠팡은 6372명에 그쳐

“신기술이 유통업 일자리 직격탄”

새 일자리, 고용감소 속도 못따라가

인간 vs 셀프 계산대

지난해 11월 26일 이마트 용산점에서 캐셔계산대와 셀프계산대 이용객수를 계산했다. 문희철 기자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7시 롯데마트 주력 점포인 서울 서초점. ‘인간 계산원’ 대 ‘셀프 계산대’가 상품 계산 능력을 겨루는 현장이다. 인간 계산대 10대, 셀프 계산대 10대의 구도다. 셀프 계산대 구역에는 직원 2명이 배치돼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돕는다. 큰 카트에 식재료를 많이 담은 소비자는 주로 인간 계산원 앞으로 향했다. 교대로 일해야 하는 인간 계산대는 10자리 중 4곳만 채워져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저녁 한 대형 마트에선 인간과 기계의 계산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전영선 기자

10대 전체가 가동 중인 셀프 계산대 앞으로는 음료수나 간단한 먹거리를 산 소비자가 몰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처리하는 속도는 비슷했다. 각 6분을 녹화해 세어보니 인간 계산원 4명의 처리 속도는 6분에 17건, 셀프계산대 10곳과 안내 직원 2명은 12건을 소화했다. 표면적으로 속도 면에선 아직은 인간의 승(勝)!


#2019년 11월 26일 오후 2시 서울 청계천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점. 인 오피스(In-office) 편의점인 이곳은 인간과 인공지능(AI)의 협업 현장이다. ‘계산 역군’ 인공지능(AI) 브니(VENY)는 오류 없는 계산을 해내는 것은 물론, 모든 수단으로 결제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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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6일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매장의 결제 로봇 브니와 인간이 협업 중이다. 전영선 기자

브니는 세븐의 ‘븐’을 친근하게 발음해 나온 이름. 북극곰 형상에 귀여운 남자아이의 목소리를 가졌다. 일반 신용카드는 물론 스마트폰 장착된 각종 페이, 등록자의 정맥정보(핸드페이)만으로 척척 계산해 낸다. 생글생글 웃을 뿐 오류를 뜻하는 ‘놀람’ 표시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최대 장점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

계산 인공지능 브니(VENY)는 무오류에 가까운 계산 역군이다. 하지만 성인 인증이 필요한 술과 담배는 팔지 못한다. 전영선 기자

소비자는 브니 앞에 물건을 차례로 놓고 스마트폰 카드를 대거나, 브니의 손만 잡으면 알아서 계산해낸다. 소비자와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센서를 통해 사람의 동선도 파악한다. 못하는 계산은 딱 두 개, 담배와 술이다. 성인 인증이 필요해 이것만은 인간이 팔아야 할 품목이다.


2017년 탄생한 브니는 이미 전국 17개 세븐일레븐에 '취업'했다. ‘몸값’은 대졸 신입사원 초봉 수준. 1년만 쓰면 이 비용은 빠진다. 게다가 브니 가격의 10분의 1인 ‘보급형 브니’도 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편의점에 직원 1명만 있으면 계산대에 붙잡혀 있어 다른 업무를 하지 못하는데, 브니에 계산을 맡기면 직원이 고객 응대 등 맞춤 서비스를 할 수 있어 서비스의 질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8년 만에 점포당 122.7명→107.8명

2010년 12월 기준 롯데쇼핑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롯데마트(할인점) 직원은 90개 점포에 총 1만1045명(정규직 4114명)이었다. 한 점포당 122.7명(정규직은 점포당 45.7명)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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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롯데마트 점포당 고용 인원은 감소세다. *각년 공시 사업보고서 기준. 그래픽=김영옥 기자

8년이 지난 2018년 12월 기준 124개 점포의 롯데마트 직원 수는 1만3368명(정규직 4633명)이다. 점포당 근무자는 107.8명, 정직원만 계산하면 점포당 37.3명으로 뚝 떨어진다. 8년 새 점포당 근무 인원이 2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주차나 안내 등 전반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곳곳이 무인 시스템으로 바뀌고 용역 사원이 늘어난 것이 한몫했다.


1위 할인점인 이마트도 다르지 않다. 이마트는 2011년 신세계에서 분리 당시 139개 점포(위탁매장 포함)에서 점포당 108명을 고용했다. 2015년 점포당 고용 인원은 192.8명까지 치솟았다가 2017년 173.6명, 2018년엔 164.6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기간 계약직 근로자 수도 대폭 늘어났다. 2011년 신세계에서 분리 당시 계약직은 1만5000여명 중 16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2018년엔 계약직은 414명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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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점포당 인원은 2013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 각 년 공시 사업보고서 기준. 그래픽=김영옥 기자

소멸하는 일자리 텃밭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사회의 ‘일자리 텃밭’ 역할을 한다. 매장 운영에 많은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시가총액 3조5000억원의 이마트 그룹은 2만5797명을 고용하고 있다. 직원 1인당 시가총액은 1억4000만원꼴이다. 비상장사인 쿠팡의 경우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비전펀드가 5년 새 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하지만 쿠팡 고용 인원은 6372명에 불과하다. 기업 가치를 직원 수로 나누면 1인당 15억원 이상을 점하고 있다. e커머스로 매출 상당액을 올리는 네이버만 해도 시가총액 30조가 넘지만 고용 인원은 3580명에 그친다. 직원 1인당 시가 총액을 약 85억원씩을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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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vs 온라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위축되는 오프라인 유통 기업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해법은 제한적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자동화, 무인화다.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매장이 줄고, 그나마 있는 매장도 인건비를 줄이는 추세로 가고 있다. 새로 짓는 물류센터엔 사람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구조다. 이마트와 쿠팡의 신규 물류센터에서 주문받은 물건을 분류하고 모으는 단순 노동은 대부분 자동화돼 있다. 장기 목표는 앞으로 택배 기사조차 필요 없는 자율주행 배달이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원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 가장 먼저 일자리가 감소하는 업종이 유통산업”이라며 “이는 소매 업종이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자리를 대거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간수준 소득을 올리는 일자리 중 진입이 쉽고 비교적 안정적이던 직군이 대거 사라진다는 의미다.


기존 인력의 불안감은 당연히 크다. 경기도 남양주시 이마트 진접점에서 상품 계산ㆍ결제를 담당하던 신상희 씨는 지난해 8월 24일 같은 사업장 가공서비스팀으로 발령이 났다. 가공서비스팀은 냉장ㆍ냉동상품을 냉동고에서 꺼내서 매대에 진열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무인계산대 6대를 진접점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마트는 신 씨를 포함한 3명의 계산원을 다른 부서로 인사 발령 조치했다. 2012년 7월에 입사한 이래 신 씨는 지금까지 7년 이상 오직 캐셔 파트에서만 근무해왔지만, 앞으로는 다른 업무를 해야 한다. 신 씨는 “회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무인계산대를 도입하기에 앞서 나와 같은 캐셔를 구조조정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전국 142개 점포(위탁 운영 매장 제외)중 지금까지 95개 매장(66.9%)으로 무인계산대 설치를 확대했다. 이마트 용산점의 경우 지하 2층엔 21개의 계산대가 있다. 카드전용 계산대 9개와 현금ㆍ카드 겸용 계산대 6개, 그리고 무인계산대 6개다. 지난해 11월 26일 오전11시 기준 여기서 근무하는 계산원은 5명이었다. 카드 전용 계산대와 현금ㆍ카드 겸용 계산대에서 각각 2명이 근무하고, 또 다른 1명이 6개의 무인계산대 전체를 맡아 무인계산대가 생소한 소비자를 도와준다. 과거 6명의 계산원이 했던 일을 지금은 1명이 한다는 뜻이다. 김주홍 이마트 민주노조위원장은 “이마트가 무인계산대를 도입하는데 계산원 의사는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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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서울 이마트 용산점은 6개의 무인계산대를 운영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또 다른 유통 채널인 편의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2년 편의점 1곳당 근무 인력은 아르바이트 포함 6.6명이었다. 2018년 이는 5.0명으로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본격화된 지난해엔 이 숫자가 더 적어졌다는 게 편의점 업계 얘기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대규모 점포 규제, e커머스와의 경쟁 등으로 유통산업의 구조적 하락세가 장기화하고 있다”며 “이런 영향이 누적되면서 유통산업의 피고용자도 감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유통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은 “제조업과 달리, 유통산업은 경기 흐름과 제품 판매량에 따라 근로자의 근무 시간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인건비가 경쟁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유통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경직된 노동 정책이 일자리 증대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가령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제품이 잘 팔리는 성수기에는 10명이 필요하고, 제품이 잘 안 팔리는 비수기에는 5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10명을 모두 고용할 경우 비수기 5명의 업무가 감소한다. 하지만 경직된 근로 제도 때문에 성수기 사업주가 5명의 인건비를 추가 부담하는 대신, 기계ㆍ키오스크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성수기 비수기 평균 7.5명을 고용할 수 있는데, 5명만 고용하게 된다는 의미다.

유통 일자리 절벽, 그 다음은

이런 추세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선 시기에 따라 유연한 고용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통산업은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편인데, 이런 산업일수록 고용을 유연하게 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채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업무를 해왔던 인력에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고민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비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 시애틀의 무인 수퍼마켓 '아마존고'는 기존 60명이 일하던 공간에서 8명만 일한다”며 “미래 기술변화에 대응해 일자리 감소 방향을 예측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수립하지 않으면 국내에서도 일자리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전영선·곽재민·문희철 기자 az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