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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늙어가는게 두려운 이유?
죽음 아닌 이것 때문

by중앙일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더, 오래’, 처음에는 참 제목이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일선에서 은퇴해 인생2막을 ‘더 오래 잘 살기’를 바라는 의미로 붙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곰곰이 생각하니 감칠맛이 난다. 더 오래를 붙이면 참 좋은 말이 많아서다. 더 오래 건강하고, 장수하고, 행복하고, 화목하고, 보람 있고 등등.


그러나 이제 인생 2막의 끄트머리 지점에선 나이 먹을수록 점점 불안한 것이 늘어난다. 불치병으로 여기는 암에 걸리지 않을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반려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 외로운 말년을 보내지나 않을까, 모아놓은 재산이 많지 않은데 죽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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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불안한 것들이 늘어난다. 웰빙보다 웰다잉이 더 와닿는다. 주위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타인을 자기의 미래에 대입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쇼크를 받는다. [사진 pixnio]

늙으면 바라는 게 또 있다. 웰다잉이다. 웰빙보다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 얼마나 품위를 지키며 생을 마감할까를 걱정한다. 주위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타인을 자기의 미래에 대입하면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쇼크를 받는다. 누구나 ‘구구 팔팔 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 죽는 것)’를 원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망일뿐, 기대난망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그렇게 바라고 갈망한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해 죽음까지도 연장할 수 있는 세상이다. 소위 연명치료다. 나을 가망이 없는 신체에 거미줄 같이 호스를 달고 맥박만 뛰게 하는, 어떻게 보면 살아있다고도 할 수 없는 삶을 유지케 하는 비참한 말로를 강요하는 것 말이다. 생명의 존엄성 운운하면서 할 수 있는 짓은 다 하도록 의료진에게 요구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다행히 법이 바뀌었다.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죽음이 코앞에 있는데 무망한 짓을 하지 말라는 요구다. 본인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무망한지 안 한 지는 어떻게 판단하나. 되살아날 가능성이 제로가 아닐 수도 있는데 제로라고 판별하는 것은 누구인가. 판단은 전적으로 의료진에게 맡긴다. 의사의 소양에 의존하는 셈이다. 불합리한 점이 없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의료진이 신이 아닌 이상 과연 가망성이 제로일까. 이때 의료진이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이라는 짐작이다.


그래도 아직은 안 했지만 나도 그러고 싶다. 연명 치료를 하지 말라는 서약서를 조만간 쓸 것이다. 이유는 따로 있다. 주의를 배려해서다. 배려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욕심이고 오기다. 아니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비참이란 단어가 어울리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지경에 놓이지 말라는 법이 나에게도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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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바뀌어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죽음이 코앞에 있는데 무망한 짓을 하지 말라는 요구다. 본인의 용기가 필요하다. [사진 pxhere]

이런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두려운 게 있다. 늙고 병들고 자리를 보전하면 가족에게 어떤 취급을 받을까다. 수발을 받을 처지가 되면 우선 처자식에게 주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효부와 효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지치고 피폐한 삶에 누구나 진저리가 오지 않을 수 없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진부한 속언을 빌릴 필요도 없다.


이런 지경에 오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 당연지사다. 가족들이 버거워하고 귀찮아하는 시기가 온다. “언제 이 지경에서 해방되나”를 은연중 바란다. 당사자는 그것을 빨리 눈치챈다. 서글프고 분노마저 느낀다. 정을 뗀다. 아니 좋은 현상인지도 모른다. 죽고 나서 가족이 받는 충격이 덜할 수도 있을 테니까.


누구나 늙고 병들고 힘이 없어지면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을 기대한다. 그동안 부양한 보상심리와 살아온 정리를 은연 중 바라서다. 하지만 주위의 예를 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장기간 병수발하다 해방되고 나니 그렇게 좋아하는 경우를, 대놓고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우스갯소리지만 늦은 귀가의 할멈을 타박하니 “오늘 모인 친구 중에 영감 살아있는 박복한 년은 나뿐이더라”고 한다.


나는 선언했다. 귀찮아하는 눈치를 보이면 즉각 시설로 가겠다고. 다행이다. 요즘 좋은 시설이 많이 생겼으니. 혹시나 눈치를 못 챌 수도 있겠다. 치매가 먼저 오면 말이다. 정신줄 놓으면 본인은 행복이다. 오로지 본능만 남으니까. 먹는 것만 있으면 만사 해결이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온갖 걱정에서 벗어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죄악이다.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감당이 안 되고 가정이 붕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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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쓰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다못해 고스톱이라도 치자. 때로는 멍 때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오래 하면 뇌세포가 사멸한다. 나이 들면 단순한 건망증에도 치매가 아닌가를 걱정한다. [사진 pexels]

수명이 길어지니 치매가 늘어난다. 신체는 건강한데 정신이 가버린다. 위생과 영양상태, 의료기술이 발달해 기대수명이 80을 넘겼다. 좋은 것만 찾고 건강식품이 넘쳐나니 오래 살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모두 몸만 챙기지 정신건강은 관심 밖이다. 치매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요양시설이 번성하고 실버산업이 호황이다.


뇌 체조한다고 하지 않나? 머리를 쓰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다못해 고스톱이라도 쳐라. 때로는 멍 때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오래 하면 뇌세포가 사멸한다. 나이 들면 단순한 건망증에도 치매가 아닌가를 걱정한다. 개그 버전도 있다. 불에 냄비 올려놓고 태워 먹는 것, 자동차 열쇠 두고 주차장에서 되돌아가는 것, 핸드폰 들고 핸드폰 찾는 것, 이건 건망증. 계단을 오르내리다 실수로 자빠졌는데 올라가다 자빠졌는지 내려가다 자빠졌는지 모르면 이건 치매?


일반화는 아니지만, 치매의 확실한 구별법은 있다. 초기에는 의심증상이 오고, 화를 잘 내고, 최근의 것이 입력이 안 되어 금방 물어 본 걸 또 묻고 또 묻고, 자주 다니던 길이 낮 설어지고 하는 것. 요즘은 치매인지 아닌지를 간단히 검사가 가능해 졌다. 근본치료는 불가능하나 진행을 늦추는 약이 많이 개발돼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혹시나 모른다. 당신이 치매초기인지를. 필자도 어느샌가 걱정이 늘어나는 즈음에 임박했다. 넋두리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