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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골프광과 스시맨에게 많은 이 병

by중앙일보

팔꿈치 통증

"이번에 동남아로 골프 여행을 가서 친구들하고 14일 동안 매일 골프를 쳤더니 팔꿈치가 아파서 죽겠어. 뭘 들 수도 없고, 젓가락질도 못 하고 불편해 죽겠으니, 빨리 좀 고쳐줘요." 가끔 병원에 오시는 70대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단단히 불편하신가 보다.


"아이고 골프에 무슨 원수를 졌다고 그렇게 많이 치셨데요? 어디 봅시다." 팔꿈치를 초음파 장비를 이용해서 들여다보았더니 골프를 연달아 치는 바람에 팔꿈치 힘줄이 충격을 받아서 많이 손상된 상태다.


“아이고 힘줄이 많이 상했는데, 어쩌죠?”


“내년 봄까지는 당분간 골프는 안 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안돼. 나 앞으로도 계속 골프 약속이 잡혀 있거든. 그러지 말고 어떻게든 고쳐봐요.”


“이렇게 계속 치시면 앞으로 영영 골프를 못 치실 수도 있어요.”


“그렇게 무섭게 말하지 말어.”


“내가 골프 치는 게 유일한 낙인데, 골프 못 치게 되면 확 죽어버릴 거야.”


“친구들이 스테로이드 맞으면 금방 괜찮다는데 그거 놔주면 안 되나?”


“스테로이드 주사는 맞으면 금방 안 아프기는 한데 아주머니처럼 계속 팔꿈치를 쓰시는 분은 놔드릴 수가 없어요.”


“안 아파지면 분명히 또 치실 거잖아요.”


“당연하지!”


“엘보는 안 아파진다고 해서 나은 것이 아니에요. 그 상태로 또 골프 치면 금방 재발하고, 몇 번 재발하다 보면 그다음에는 난치병이 돼서 치료 방법이 없어져요.”


“몰라 이번 주말에 또 약속이 잡혔으니까 어떻게든 고쳐줘요."

중앙일보

흔히 ‘엘보’라고 불리는 팔꿈치 통증은 대표적인 '얕잡아 보다가 큰코다치는 병'이다. [사진 pixabay]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거의 매일 진료실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다. 그만큼 팔꿈치 통증 환자는 정말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팔꿈치 통증으로 치료받은 사람이 한해 72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엘보’라고 부르는 팔꿈치 통증은 대표적인 ‘얕잡아 보다가 큰코다치는 병’이다. 나는 환자에게 질병에 관해서 설명할 때 대부분 안심을 시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엘보’만큼은 오히려 ‘겁’을 주는 편이다. 초기에 겁을 먹고 철저히 관리해야 좋아질 기회가 있지, 처음에는 별것 아니겠거니 하고 아픈데도 계속 사용했다가는 난치병이 되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엘보는 왜 잘 안 낫는 걸까?

중앙일보

팔꿈치 통증은 힘줄이 뼈에 붙는 자리의 통증이다. 그래서 그 부위만 치료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증이 없는 힘줄, 근육, 근막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사진 pixabay]

1) 인대염증이 아니라 인대의 퇴행성 변화다.


‘엘보’의 의학적 진단은 ‘상완골의 상과염’ 이다. 손목을 신전시키는 힘줄이 뼈에 붙는 자리에 염증이 생겼다는 뜻이다. 염증이 있기 때문에 소염제를 쓰고, 스테로이드를 쓴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힘줄에 염증이 생긴 경우는 보다는 퇴행성 변화로 인하여 너덜너덜해진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일반적인 염증을 가라앉는 치료방법이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2) 통증이 없어졌다고 해서 나은 것이 아니다.


치료에 실패하는 가장 흔한 경우가 통증이 없어지면 바로 손목을 무리해서 쓰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통증이 없어졌다고 해서 조직이 안정되고 다시 기능을 찾은 상태를 아니라는 점이다. 근육과 힘줄의 기능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사용하면 갑옷을 입지 않고 다시 전쟁터로 나가는 것과 같다. 조금만 써도 바로 재발하게 된다. 연구에 의하면 같은 부위가 세 번째 재발하면 다시 재발할 확률이 90%가 넘는다. 현실적으로 완치가 어렵다는 말이다.


3) 아픈 곳만 신경 쓰기 때문이다.


팔꿈치 통증은 힘줄이 뼈에 붙는 자리의 통증이다. 그래서 그 부위만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통증이 없는 힘줄, 근육, 근막 모두 문제가 있다. 그래서 팔뚝 여러 부위를 모두 치료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라운드 숄더, 손목의 내회전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전신 체형을 바르게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4) 직업과 취미 때문이다.


가장 치료하기 힘든 경우가 고치면 바로 가서 다시 골프를 치거나, 아니면 직업이 손을 많이 사용하는 업종인 경우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통증이 있는데도 계속 골프를 치거나, 조선소에서 망치를 사용하는 환자와 하루 종일 초밥을 만드는 스시맨이었다.


그 외에 스테로이드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도 재발이 잘되고 잘 낫지 않는 상태로 변화된다. 또, 과로해서 부신 호르몬이 떨어지거나, 갱년기에 성호르몬이 떨어질 때도 인대가 약해져서 팔꿈치 통증이 잘 발생한다. 그런 경우에는 특별히 많이 사용하지도 않았는데도 양측성으로 발생하고,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