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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미분양 굴욕 10년 후…주민들은 日건축가에 감사편지 보냈다

by중앙일보

일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 10년 만에 주민들 만난 사연

주민들 건축가 위해 파티 "이웃과 함께하는 삶 즐거워"

"마당의 잠재력 주목해야...미래에 커뮤니티 공간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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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타운하우스2단지 모습. 10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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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한국을 방문해 판교 타운하우스 주민들과 함께 만난 야마모토 리켄. 그는"주민들이 서로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본 것 자체가 큰 보람이며 감동"이라고 말했다.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사진 야마모토 리켄&필드샵]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1가구 1주택' 모델은 수정돼야 한다."

"현시대는 가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새로운 주거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주택문제를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로 여기지 않고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쾌적한 주택에서 생활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이다."

이런 주장을 줄기차게 해온 일본 건축가가 있다. 야마모토 리켄(75)이다. "사람들이 '내 집'을 꿈꾸는 동안 주택은 밀실이 되고, 주변 환경은 황폐해지고, 지역사회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해버렸다"고 진단한 그는 "우리의 집과 지금의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 건축적 신념을 담아 쓴 책 『마음을 연결하는 집』(안그라픽스) 2014년 국내에서도 출간된 바 있다.

주민들이 건축가에게 감사 편지

리켄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그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소 '리켄 야마모토&필드샵'의 스태프 20명과 함께 온 그는 2박 3일 동안 자신이 설계한 판교의 타운하우스(월든힐스 2단지)와 서울 세곡동 아파트(보금자리 3단지), 그리고 종묘와 익선동 등을 둘러보고 떠났다. 그가 각각 '판교하우징(판교 타운하우스)' '강남하우징(세곡동 아파트)'이라 이름 붙인 두 집합주택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그가 설계해 각각 2009년, 2014년부터 주민들이 입주해 살고 있다.


두 곳은 그간 사연이 많았다. 말하자면 두 프로젝트는 그에게 야심적인 프로젝트이자 '아픈 손가락' 이었다. 특히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추진한 주택사업의 하나였던 '판교하우징'은 분양(100세대) 당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방의 벽을 유리로 처리한 독특한 외관(투명 현관홀)이 거부감을 줬다"는 비난도 받았다. '강남하우징' 역시 투명한 유리 현관문 설치로 사생활 침해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이번 그의 방문은 '판교하우징' 주민들이 건축가에게 이메일로 감사 인사를 보내며 이뤄졌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가끔 주민들이 커뮤니티 공간에 모여 파티를 열며 잘 지내고 있다.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곳에서 행복하다"고 썼고, 이를 받고 기뻐한 건축가가 방한을 결심한 것이다. 입주 10년 만에 현장을 찾은 건축가를 위해 주민들은 작은 파티를 열었다. 건축가는 '공동체'에 무게를 실어 밀어붙였던 곳을 지금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일본으로 돌아간 그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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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월든힐스 타운하우스 2단지 2층 커먼 데크 모습. 주민들은 마당처럼 이 공간을 통해 각 세대의 현관으로 들어간다. [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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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하우징의 2층 커먼 데크 모습. 오른쪽에 투명 현관홀 모습이 보인다. 주민들은 이 개방된 공간을 이웃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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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타운하우스 2단지 중정 모습. [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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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켄이 설계한 판교 월드힐스 타운하우스 2단지. 2층 커먼 데크에서 내려다본 중정 풍경. [사진 남궁선,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Q : '판교 하우징'을 10년 만에 방문했는데.


A : "감동이었다. 일본에서도 해외에서도 주택을 많이 설계해왔으나, 이렇게 주민들로부터 따뜻한 환영과 감사 인사를 받은 일은 처음이다. 이번에 방문해보니 주민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며 돈독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보기 좋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보람이었다."


Q : '판교하우징'은 모든 주택의 현관으로 통하는 2층의 커먼 데크(Common Deck)가 파격이었다. 각 세대 현관이 서로 마주 보는데 사방이 유리 벽인 현관홀이 있고.


A : "이번에 입주민들을 만나 ‘실제로 들어와 살아보니 좋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장기간 거주하고 계신 분들도 많았다. 처음에 지어졌을 때 선호도는 낮았을지라도, 현재 만족도는 좋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0년 전과 다르게 조금씩 이곳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 그 공간을 어떻게 쓰고 있던가.


A : "어떤 주민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또 다른 주민은 자신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쓰고 있었다. 또 다른 주민분들은 옆의 테라스 공간을 두 세대가 함께 정돈해 함께 만나고 파티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놓았다. 아직도 투명한 유리가 싫어 차단해 놓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잘 활용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웃과 자주 만나며 이곳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10년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김병성(건축가)씨 주택은 이 투명 현관홀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잘 활용하고 있는 사례다. "2층 유리 공간을 응접실로 쓰고 있다"는 김씨는 "이곳의 개방된 창을 통해 방안에서도 이웃 주민들과 인사할 수 있고, 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통하는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7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해온 주민 대표 현금희씨는 "특이한 구조 덕분에 이웃과 서로 인사하며 지내고 가끔 먹을 것을 가지고 모임도 갖고 있다. 이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다"면서 "공간이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다"고 전했다.

건축은 사람을 연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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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가 리켄이 설계한 서울 세곡동 보금자리 아파트. [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 &필드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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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세곡동 보금자리 3단지('강남하우징')[사진 남궁선 촬영, 야마모토 리켄&필드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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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곡동 보금자리 아파트('강남하우징')[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 &필드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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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리켄은 미래 주택을 위해서는 주민들이 만나는 개방 공간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의 '마당'공간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Q : 세곡동 아파트(LH 3단지)도 ‘투명 현관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 문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였고.


A :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방문으로 주민들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느꼈다. 강남과 판교는 각기 분양과 임대 등 관리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 '동네 공동체(local community·지역사회권)' 형성에 초점을 맞춰서 설계했다. 이웃과 접촉할 기회를 늘리되 사생활을 지켜야 하는 공간은 엄밀하게 구분해 놓았는데 부정적인 면만 알려져 아쉬웠다."


Q : 많은 사람은 개방공간을 불편해한다. 집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고.


A : "원래 한국에서도 근대화 이전의 전통 가옥은 외부에 개방된 부분과 사생활을 지키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주택이 모두 사라지고 모두 '밀실' 같은 주택이 돼버렸다. 고령화 시대, 1인 가구 시대에 그런 밀실 같은 주택은 더는 바람직한 모델이 아니다. 미래 주택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주택을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야마모토는 "지금의 주택 건축 방식에 대해 나는 건축가로서 상당한 위기감을 느껴왔다"면서 "미래엔 단순히 사생활을 중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주민들이 상부상조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1가구 1주택을 대신할 수 있는 생활을 아직 체험해본 적이 없다"면서 "판교하우징과 강남하우징은 이를 위한 건축적 제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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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세곡동 아파트('강남하우징'). 나이가 연로한 주민들이 서로 가깝게 지며며 보살필 수 있게 두 동을 마주 보게 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사진 남궁선 촬영,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Q : 저서에서 지역사회권, 이른바 '동네 공동체 형성'을 제안했다.


A : "각 개인이 최소한의 전용공간과 최대한의 공용 공간을 갖는 공동체를 말한다. 개인의 취미나 특기를 다른 사람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거 공간이 변화하면 이웃이 아이를 잠깐 맡아주거나 나무를 가꾸거나, 주말 목수가 되거나, 외국어 강의를 진행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택단지나 뉴타운, 공영주택 등 집합주택에 개방 공간이 더 늘어야 한다."


Q : 지역 사회권이 잘 실현된 사례가 일본에 있나.


A : "지난해부터 '로컬 리퍼블릭 어워드(Local Republic Award)'의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1주택=1가구' 을 대체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나는 판교하우징에서 이미 그런 동네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동네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웃 간의 소통이다. 그곳은 이미 그게 실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가게와 마당의 가치 주목해야"

Q : 한국사회도 고령 인구와 1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상부상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A : "주거와 함께 경제적인 이익도 생각할 수 있는 주거 방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가게’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많은 주민이 주거 공간의 일부를 활용하여 ‘가게’로서 이용을 한다면, 그곳에서 경제적 이익 창출과 동시에 이웃과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가게’는 바로 우리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Q : 이번에 스태프들과 종묘를 방문한 이유는.


A : "한국의 전통 건축물 중 종묘를 가장 좋아한다. 현대 건축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력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한국의 공간으로는 ‘마당’을 가장 좋아한다. 주거의 중심에 위치한 마당은 스스로 활용 방법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당은 주택에 있어서 가장 접근하기에 부담이 없는 장소이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중심적인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Q : 요즘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A : "스위스 취리히공항 컨벤션센터 '더 서클'을 설계했다. 2010년 전 국제공모전에서 당선됐고 201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오는 9월 오픈 예정이다. 이 건물은 21세기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전혀 새로운 도시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

야마모토 리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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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 [사진 리켄 야마모토&필드샵]

니혼대 이공학부 건축학과 졸업(1968) 도쿄 예술대 대학원 건축 석사(1971) 야마모토리켄설계공장 설립(1973) 요코하마대학 대학원 교수(2007-2011) 요코하마대학 대학원 객원교수(2007~2013) 니혼대학 대학원 특임 교수(2011~2013) 역임. 현재 나고야 조형대학 학장(2018~). 대표작으로 사이타마 현립 대학(1999), 하코다테 미래 대학(2000), 요코스카 미술관(2007)이 있으며, 현재 대만 타오위엔 미술관(2022년 준공예정), 나고야 조형 대학(2023년 준공예정) 등을 설계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