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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노골적 중국편 드는 WHO, 그뒤엔 '1조씩 10년' 거액 오갔다

by중앙일보

[알지RG]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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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로 확산한 지 한 달. 이 한 달 동안 가장 크게 국제적 망신을 당한 곳은 중국이 아닌 세계보건기구(WHO)일 것입니다. WHO의 권고 사항과는 정반대의 조치를 세계 각국 정부들이 줄줄이 내놓고 있고, 중국에 대해 칭찬 일색인 WHO 사무총장의 기자회견엔 이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WHO가 '중국의 꼭두각시'라는 조롱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전. 신종 코로나 사태 내내 중국의 대변인 역할을 한 WHO의 세계적 위상은 수직 추락했습니다. 그렇다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중국은 대체 언제부터 WHO를 좌지우지하는 '슈퍼 파워'가 된 걸까요?



◇WHO에 거액 투척한 中, 그 이면엔 '대만' 견제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중국이 WHO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겪고나서입니다. 2002년 11월부터 중국 광둥성(广东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해 대만,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등 전세계로 확산했던 사스는 치사율이 10%에 달해 국제사회의 우려가 매우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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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포심을 극대화했던 것은 바로 WHO와 중국 당국의 대응차였습니다. 베이징(北京) 위생국이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감염지역 상황을 조사하러 온 WHO 조사단이 다른 내용의 발표를 했습니다. 중국 당국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사태를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었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을 추락했고 중국 정부에 대한 중국 내 국민의 불신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사스 은폐를 중지할 것을 보건 당국에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WHO와 협력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요인은 바로 '대만'이었습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죠. 실제 대만은 WHO의 회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스 당시에는 국제간 질병 예방 절차를 정한 WHO의 국제보건규칙(IHR) 운용체제에 가입돼 있지도 않았죠. 즉, 당시 WHO는 전염병 및 질병에 대한 정보를 중국을 통해서만 대만에 통보해 줄 수 있었고 대만과 WHO가 직접 연락을 취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대만은 2009년 4월에 IHR에 직접 가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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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대만에서도 사스 확진자 및 사망자가 급증했습니다. 사스 대응에 어려움을 겪은 대만은 "중국이 정보 공개를 기피하고, WHO는 사스 대응에서 대만을 배제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IHR 가입 추진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대만이 IHR에 가입을 하게 되면 WHO 연차 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가 가능해지고, 그럴수록 WHO에 가입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WHO에 가입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는 것과 같으니, 중국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이를 막아야 했던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실권을 장악했던 WHO 내의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WHO를 통해 국제개발원조를 하던 미국이 '개별국가에 대한 직접 지원 및 투자'로 방향을 선회했고, 자연스럽게 WHO의 슈퍼파워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미국발 H1N1때는 140여명 사망하자 '팬데믹' 선언


실제 2006년 진행된 WHO 사무총장 선거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뒤에 업고 홍콩 출신의 마가릿 챈(사진)이 당선됩니다. 이렇게 중국이 장악한 WHO, 그럼 전염병에 대한 대응이 어땠는지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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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관심사는 WHO가 '팬데믹(Pandemic·세계 대유행)' 사태를 선언할지 여부입니다. WHO는 전염병의 진행 상황을 6단계로 나누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사람 간 전염이 대규모로 일어나 특정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로 확산하는 최고 6단계 상황을 팬데믹이라고 합니다. WHO는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 후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세계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팬데믹 선포는 미루고 있죠. 표면적 이유는 "중국 특정 지역에서만 심각할 뿐, 중국 외 지역에서는 대응 가능한 수준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WHO는 2009년 미국발 신종플루(H1N1) 발생 당시 74개국에서 14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물론 이후 감염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어 최종적으로는 약 2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1968년 홍콩 독감(사망자 약 80만 명 추정)으로 팬데믹을 선언한 뒤 역사상 두 번째였죠. 28개국에서 2200명 이상이 사망한 지금도 팬데믹을 선언하지 않는 것과 비교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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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3종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도 그럴 것이 현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2017년 선거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당선됐습니다. 테드로스 총장 당선 이후 중국은 WHO 자체에 향후 10년간 매년 1조원씩을 기부하겠다고 밝힐 정도였죠.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보건부 장관을 지낸 인물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투자를 많이 받은 국가입니다. 자신의 모국이 중국의 자본으로 성장하고 있고 본인도 중국의 지지를 받아 사무총장이 됐는데,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겠죠.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을 돌아보면


사실 WHO 내부에서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알력싸움과 사무총장 자리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정치적 갈등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닙니다. WHO의 정치적 논란 속 우리나라가 중심이 됐던 적이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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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이종욱(1945~2006) 전 WHO 사무총장 취임 당시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UN 산하 전문기구의 최고책임자가 되면서 당시 한국 외교부에서도 이 전 총장의 당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 전 총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데 많은 노력을 쏟으며 의료인이자 보건행정 전문가로 존경받아왔습니다. 이후 WHO의 결핵국장으로 활동하며 세계 보건 환경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이 전 총장도 취임 당시에는 "미국의 정치적 지지를 뒤에 업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 상·하원 의원 54명이 미 보건부에 이 박사를 지지한다는 서신을 보냈기 때문이었죠. 실제 미국은 WHO 선거에서 이 전 총장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전 총장은 2003년부터 2006년 임종 전까지 WHO를 이끌며 세계 1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는 등 많은 업적을 냈습니다. 특히 UN 내 많은 산하기구가 예산 증액을 못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설득해 WHO만 예산을 대폭 증액하기도 했죠. 또 WHO 관련 통보는 모두 중국의 동의를 거친 후 대만으로 보내도록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반면, 중국 위생부와 WHO가 대만-WHO간 전문가 기술교류를 지원하도록 하면서 섬세하고 정밀하게 중국의 요구를 들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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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미국에만 유리한 WHO의 운영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따라 그는 당시 코피 아난에 이은 차기 UN사무총장으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6년 5월 22일 WHO 총회 준비 중 과로로 인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면 테드로스 현 사무총장은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로 사퇴를 요구하는 국제적 여론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세계 청원에는 40만명 이상이 서명을 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하루에도 100여명씩 신종 코로나로 목숨을 잃고 있는 지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WHO의 대응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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