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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혹시 이 인장이 한국 것이냐"···황제 국새 기구한 운명

by중앙일보

돌아온 고종 국새에 찍힌 'W B. Tom'

멋모르고 밀반출한 미군의 흔적일까


‘W B. Tom’. 지난 1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인 구한말 고종(재위 1863∼1907)의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 뒷면에 적힌 이름이다. 이 국새는 1990년대 후반 한 경매사이트에 나온 것을 재미교포 사업가 이대수(84)씨가 구해 한국에 기증했다. 기증식에 참석한 이씨의 아들 이성주씨는 이날 “1960년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아버지가 미국에서 귀한 유물을 볼 때마다 한국에 반환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번 유물도 구입 때부터 기증할 생각이셨다”고 했다. ‘W B. Tom’이란 글씨는 구입 때부터 음각돼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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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재미교포로부터 기증받아 19일 공개한 고종의 국새 '대군주보' 뒷면 거북 손잡이 꼬리 아래에서 ‘W B. Tom’이라는 영문 음각이 발견됐다. 해외에 밀반출된 후 소장했던 외국인이 이름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문화재청]

W B. Tom이 누구인지 몰라도 유물‧문화재에 상당히 무지한 사람이었다고 ‘사소한 발견’은 판단한다. 문화재 원형이 훼손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게 상식이라서다. 국외 밀반출 당사자로 추정되는 W B. Tom은 낯선 나라에서 기념품 하나 챙겨간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가져간 대군주보는 1882년 고종이 외국과의 주요 조약 날인에 쓰기 위해 새로 제작한 국새였다. 동 시기에 함께 제작된 ‘대조선대군주보’ ‘대조선국대군주보’ 등은 기록만 존재할 뿐 아직 실물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귀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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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로 환수된 구한말 고종(재위 1863~1907)의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 뒷면에 ‘W.B Tom’이라는 글씨(붉은 동그라미 안)가 보인다. 이 국새는 1990년대 후반 한 경매사이트에 나온 것을 재미교포 사업가 이대수(84)씨가 사들인 것으로 영문 글씨는 구입 때부터 음각돼 있었다고 한다. [중앙포토]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광무개혁)한 뒤 국새를 다시 만들었다. ‘대한국새(大韓國璽)’‘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등 총 11과(인장을 세는 단위)에 이른다. ‘새(璽)’는 ‘보(寶)’보다 격이 높은 것으로 친다. 그전까진 거북이 모양 일색이었던 몸체(손잡이)가 용으로 바뀌는 등 황제의 위상에 초점을 뒀다. 인장이 바뀌었다고 국위가 선양된 건 아니다. 오히려 아들 순종 황제는 이 국새를 굴욕의 한일 합병 조약문에 찍도록 내몰렸다.

이태진 한국역사연구원장(서울대 명예교수) 연구에 따르면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비준서에 해당하는 순종의 칙유(조서)엔 ‘대한국새’가 아닌 통신문서용 ‘칙명지보’가 찍힌 데다 순종의 친필 서명도 없어 강압‧무효의 근거가 된다.

치욕의 한일합방 다음해인 1911년 3월3일 ‘순종실록’에 따르면 이왕직 차관 고미야 사보마쓰가 ‘옛 국새와 보새를 총독부에 인계했다’. 당시 천황의 진상품으로 바쳐져 일본 궁내청으로 들어갔던 국새들은 8.15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15일 미군정의 손으로 모두 한국에 인계됐다. 당시 반환된 ‘대한국새’‘황제지보’‘제고지보’‘준명지보’(2과) ‘대원수보’ 등은 순종실록 기록 목록과 일치했다. 여기에 ‘내각총리대신장’과 ‘내각지인’까지 추가돼 총 8과가 1948년 7월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과도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총무처에 인계됐다. 이듬해 2월엔 이들 8과를 포함해 일제에 뺏겼다 돌아온 문화재 및 외교문서 전시회가 국립박물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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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때 만들어진 국새 칙명지보.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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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 병합 조약 비준서에 해당하는 양국 황제 조칙 비교. 왼쪽의 순종 황제 칙유는 친필 서명이 없는데다 날인도 대한국새 대신 일본 측이 빼앗아 갖고 있던 칙명지보라는 점에서 순종의 뜻으로 해석되기 어렵다. 오른쪽 일본 천황 조서에 천황(일왕) 친필과 어새가 선명한 것과 대조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자료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0년 출간한 『조약으로 본 한국병합-불법성의 증거들』에 수록했다. [사진 이태진]

6·25 거치면서 사라진 조선 국새들

여기까지면 해피엔딩인데 이후 격변의 6·25가 문제였다. 전란통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후세의 우리는 알 길 없다. 어쨌든 옛 기사에 따르면 1954년 6월 부산에 자리했던 경남도청 금고에서 ‘대원수보’‘제고지보’‘칙명지보’ 등 대한제국 시절 국새 3과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 출범 시 총무처가 인계받았던 8과 중 일부다. 이들이 왜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된 걸까.


추정은 이렇다. 6‧25 전쟁 중에 이승만 정부는 부산으로 피란가면서 옛 국새까지 챙겨갔지만 전쟁이 끝나고 환도할 땐 깜빡했다. 이미 1949년 제작한 새 국새 ‘대한민국지새’를 쓰고 있었으니 정부 정통성과 무관한 옛 조선(대한제국 포함) 국새에 무심했을 법도 하다. 이렇게 잊혀진 옛 국새가 다시 화제가 된 것은 1965년 3월 들어서다. 당시 동아일보 등에 따르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측이 유물 전시를 준비하던 중 조선 왕조 및 대한제국의 옥새 상당수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사라진 건지 알 길 없었고 누구에게 관리 책임을 물을지도 분명치 않은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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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있다 돌아온 대한제국의 국새(國璽) '황제어새'. [중앙포토]

결론적으로 현재 남아있는 대한제국 국새는 총 5과다.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된 3과 외에 2009년 정부가 한 재미교포 사업가로부터 사들인 ‘황제어새(皇帝御璽)’가 있다. 나머지 1과는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들고온 ‘황제지보(皇帝之寶)’다. 오바마는 당시 황제지보를 포함해 조선왕실‧대한제국 인장 9과를 갖고 왔다. 이들은 모두 2013년 말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산하 국토안보조사국(HSI) 측이 샌디에이고의 한 미군 유족으로부터 압류한 것들이었다. 어찌된 사연일까.

"이 인장이 한국 것?" 미국서 온 메일

때는 한국전쟁 발발 3개월째로 접어든 1950년 9월. 미 해병 윌리엄 패턴은 서울 덕수궁 정문 인근에 쌓인 북한군과 중공군의 시체를 치우던 중 독특한 물건을 발견했다. 그는 물건들을 양말에 담았다가 1951년 미국으로 귀국할 때 가져갔다. 당시는 전쟁 중 주한미군에 관한 외교협정인 대전협정에 따라 미군은 출입국 심사가 면제됐다. 이후 60년 넘게 이 유물들은 패턴의 집 장식장에서 보관돼 있었다.


2012년 6월 패턴이 사망하자 가족들은 그가 남긴 물품의 가치와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연락했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미국에선 큰 가치가 없지만 한국으로서는 무척 귀중한 물건”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문의 소식은 HSI로 흘러들어갔다. 미 연방법에 따르면 불법 취득한 해외 유물은 국가절도재산법에 따라 매매가 금지된다. HSI는 한국에 문제의 유물에 대해 문의했다.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김병연 행정사무관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2013년 9월 23일 필자는 미국 국토안보수사국 직원으로부터 ‘7개 인장(7 chops)’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열어보니 '혹시 이 인장이 한국의 것이냐?'라는 내용과 함께 스틸 사진 7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자주국가의 의지를 상징하기 위해 제작한 ‘황새지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 직원에게 답장을 썼다. '당신이 보낸 것은 한국의 역사다'.”(『Korean Heritage』2019년 6월호 기고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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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리 측에 반환한 대한제국 국새인 황제지보(맨앞), 공문서용 인장인 준명지보(가운데줄 오른쪽), 고종어보인 수강태황제보(가운데), 유서지보(왼쪽).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밀 분석 결과 총 9점으로 확인된 이들 인장에 대해 문화재청은 그해 10월 21일 HSI에 정식으로 인장 반환 수사를 요청했다. HSI는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패턴 가족을 만났고 유물 습득 경위를 확인했다. 다행히 이들 가족은 유물의 성격과 가치를 이해하고 한국 정부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전적으로 이해했다. 수사 요청 후 28일 만인 11월 18일 황제지보를 포함한 9점 모두 압수됐고 이듬해 오바마 대통령은 선물처럼 이를 들고 내한했다.

이승만 정부 초대 국새도 종적 감춰

한‧미 수사 공조는 그 뒤에도 이어져 2017년 한‧미 정상회담 땐 조선시대 문정왕후(1501∼1565)와 현종(1641∼1674)의 어보가 환수됐다. 한국 약탈 문화재 목록이 담긴 미국 국무부 문서 등을 근거로 소장 중이던 미국 박물관으로부터 몰수한 결과다. 이에 비해 이번에 돌아온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는 재미 사업가가 제3자 권유를 받아 기증 형태로 돌려줬다는 점에서 귀하게 평가할 만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조선시대(대한제국기 포함) 국새와 어보는 총 412점이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며 이번에 돌아온 2점을 제외하고 아직 73점이 행방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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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국새 인문의 글씨 '대한민국' 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를 따랐다. [중앙포토]

참고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국새는 대한민국 5대 국새다. 2011년 9월 제작돼 10월25일부터 사용 중이다. 인문(印文)은 한글로 ‘대한민국’을 훈민정음체로 새겼다. 한글로 새긴 것은 1963년 2대 국새부터다. 앞서 49년 제작된 초대 국새는 ‘대한민국지새’를 한자로 새겼다. 2005년 감사원 감사 결과 이 초대 국새와 대통령인은 분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역대 국새는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