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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뉴스분석

3년 만에 다시 꺼낸 400㎞대 초고속열차 도입···"산 넘어 돈"

by중앙일보

[뉴스분석]

국토부 업무보고, "초고속열차 도입"

2012년 해무 출고 이후 별 준비 못해


오송~평택 2복선 구간 인프라 구축

전차선, 신호, 자갈도상 개량과 교체


일부선 수조원 예상, 재원 확보 과제

"실제 400㎞ 달릴 운영시스템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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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급 초고속열차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연간 250조원 달하는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12년 5월 열린 초고속열차 '해무((HEMU-430X)'의 출고식 때 당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렇게 밝혔다. 서울~부산을 1시간 30분 만에 달리고, 해외 진출도 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해무는 이듬해 3월 시속 421.4㎞를 기록해 프랑스(575㎞), 중국(486㎞), 일본(443㎞)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빠른 열차가 됐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정부의 발표와 달리 해무를 여객운송에 투입하기 위한 준비작업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에 “그간 확보한 시속 400㎞급 차세대 고속열차 기술 활용을 위해 고속철도의 업그레이드 추진”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 기본계획은 2016년부터 올해까지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할 철도 관련 정책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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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별달리 준비 작업이 진행된 게 없다. 시속 300㎞급의 KTX와 달리 해무가 운행하려면 기존 전차선과 선로, 그리고 신호시스템을 개량해야만 한다. 해무의 속도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전차선을 좀 더 팽팽하게 당기고, 신호시스템도 KTX와 해무가 공용으로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또 상당 부분 자갈로 덮여 있는 경부고속철도의 도상을 콘크리트로 바꾸는 작업 역시 필수다. 자갈로 덮여있는 도상은 선로와 노반 사이의 빈틈을 자갈이 메워져 안정감은 뛰어나지만 일정 속도를 넘어서면 자갈이 튀어 올라 바퀴나 차체를 때리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교체 작업에 상당한 시간과 돈이 필요할 거로 철도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처럼 초고속열차의 도입 작업이 지지부진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국토부 내에서도 견해가 엇갈린 부분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도 이미 고속인데 여기서 속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부정적 의견을 가진 고위 관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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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국토부의 올해 업무보고에 '시속 400km 초고속열차 도입 착수'가 포함된 건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 이후 3년 만에 다시 초고속열차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건 무엇보다 국토부 내에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초고속열차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황성규 국토부 철도국장은 "그동안 국토부 내에서 의견차가 있었지만 이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또 황 국장은 "시속 400㎞는 고속화를 나타내는 지표"라며 "중국, 일본, 스페인 등과 비교했을 때 초고속화는 해외진출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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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 대신 콘크리트로 선로와 노반 사이를 채운 콘크리트 도상. [자료 국토교통부]

마침 KTX 선로와 전차선, 신호시스템, 차량 등의 내구연한(통상 20년 전후)이 다가오는 것도 한 요인이 됐다. 국토부는 우선 예비타당성 면제사업으로 지정된 '오송~평택 고속전철 2복선화 구간 사업'의 기본계획에 초고속열차 도입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방안을 포함할 방침이다.


이 구간에 전차선과 신호시스템 정비, 콘크리트 도상 설치 등 초고속열차가 다닐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작업을 하겠다는 의미다. 기본계획은 오는 10월까지 마련된다.


임종일 국토부 철도건설과장은 "해당 구간에 대한 조사를 통해 시설물 보강과 교체 여부를 판단하고, 안전을 고려한 신호와 차량의 기술적 호환성 등을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오송~평택 구간 외에 다른 경부선 구간과 호남고속선 구간에 대한 초고속화 작업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초고속열차 도입 방안에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김시곤 서울과학기술대 철도전문대학원 교수(대한교통학회장)는 "현재 KTX는 실제로 운행속도가 시속 300㎞에 못 미치는 등 아쉬움이 크다"며 "승객 서비스와 국제경쟁력을 고려할 때 단계별, 구간별로 속도 향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도 "교통혁명시대에 광역 대중교통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고속·급행·직결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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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초고속열차 도입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무엇보다 초고속열차 도입을 위한 인프라구축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할 재정 당국, 즉 기획재정부 등에 대한 설득작업이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전차선과 신호시스템 개량, 자갈도상 교체 등에 들어갈 구체적인 예산을 추산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일부에서는 고속철도 경부선의 자갈도상을 콘크리트로 바꾸는 데만 수조원이 들 거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김헌정 국토부 철도정책과장은 "초고속열차 도입을 위해선 재정 당국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보다 정교한 비용 추정과 기술 검토를 통해서 이 부분을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인프라가 구축되고 해무 등 400㎞급 대 초고속열차가 투입되더라도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운영시스템을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기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유정훈 교수는 "기존 KTX도 무분별한 정차역 증가 등으로 인해 당초 약속했던 서울~부산 1시간 40분대 운행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며 "초고속급 운행이 실제 가능하도록 운영시스템을 잘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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