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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연기력 논란 ‘킹덤’ 중전의 반란 “하찮던 계집이 모두 가질 것”

by중앙일보

보다 빼어난 만듦새로 돌아온 시즌2

핏줄 둘러싼 피비린내 짙어진 가운데

김혜준·배두나 등 여성 캐릭터 돋보여

“수용 빠른 편”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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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공개된 ‘킹덤’ 시즌 2. 중전(김혜준)은 시즌 1과 확 달라진 연기를 선보인다. [사진 넷플릭스]

“어차피 본다” “안 보면 손해”

지난 5일 열린 ‘킹덤’ 시즌 2 제작발표회에서 박인제ㆍ김성훈 감독이 밝힌 다섯 글자 관전평이다. 지난해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로 190여 개국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하긴 했지만, 시즌 1ㆍ2 메가폰을 이어받고, 넘겨준 감독들의 포부라기엔 자신감이 다소 과하지 않나 싶었다. 허나 13일 오후 4시 시즌 2의 6부작이 공개되는 순간 그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 시즌 1을 본 사람이라면 보지 않을 재간이 없으며, 시즌 1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빼어난 만듦새를 지닌 이야기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질 테니 말이다. (※“어차피 봤다”는 전제하에 이후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대거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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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으로 향하는 왕세자 이창(주지훈)의 무리.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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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역을 맡은 배우들의 군중신은 시즌 2에서도 돋보인다. [사진 넷플릭스]

“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김은희 작가의 말처럼 시즌 2가 전개되는 내내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15~16세기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민초의 배고픔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 뒤엉켜 생겨난 역병, 그리고 그로 인해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화면 바깥까지 그 피 맛이 전해질 정도. “인간의 피를 탐하는 생사역 병자들과 핏줄ㆍ혈통을 탐하는 양반들의 상반된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김 작가의 설명에서 엿볼 수 있듯 이번 시즌은 피, 그중에서도 ‘핏줄’에 관한 이야기다. 가지고 태어난 핏줄을 지키기 위해, 혹은 가지지 못한 핏줄을 탐하여 여러 차례 ‘피바람’이 분다.


자신이 갖지 못한 피가 가장 탐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좋은 피를 가지고 태어난 이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극 중 서자 출신의 왕세자 이창(주지훈)은 적통이 아닌 자신의 핏줄이 아쉬울 테고, 더 큰 권력을 쥐고 싶은 영의정 조학주(류승룡)는 왕실이 아닌 핏줄이 성에 차지 않을 테다. 하여 혜원 조씨 가문을 왕후장상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씨’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보고 자란 그의 딸이자 중전(김혜준)은 아버지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싶어한다.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원자를 출산하기 위해 이들의 벌이는 대결은 불꽃이 튀다 못해 간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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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대감. [사진 넷플릭스]

“넌 어렸을 때부터 그러했다. 천성이 간악하고, 교활했으며, 어리석기 그지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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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학주 대감의 딸이자 중전(김혜준). [사진 넷플릭스]

“제가 계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경멸하고 무시하셨죠. 그 하찮았던 계집아이가 이제 모든 것을 가질 것입니다.”

“사농공상의 계급이 확실한 시기의 시대적 사회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통찰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사극을 택함으로써 봉건적 계급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덕분이다. 특히 시즌 1에서 평면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여성 캐릭터들은 시즌 2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다.


역병의 근원인 생사초를 연구하는 의녀 서비(배두나)는 위기의 순간마다 해법을 찾아내고, 중전은 누구보다 피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해 간다. 지난해 두 사람을 둘러싼 연기력 논란이 일어도 웃으면서 “그렇지 않다. 캐릭터에 꼭 맞는 연기”라고 답했던 김은희 작가 역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못지않게 “계획이 다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화에 깜짝 출연한 전지현도 다음 시즌을 위한 포석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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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녀 서비(배두나)의 역할도 한층 막중해진다. [사진 넷플릭스]

그중에서도 김혜준(25)의 변신은 실로 놀라울 정도. “중전이 너무 어린 것 아니냐”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등 지난 시즌의 모든 지적사항을 단숨에 잠재운다. 그녀가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결연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그녀의 얼굴이 구겨지면서 인상을 찌푸릴 때면 공포가 엄습해온다. 시즌 2를 정주행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그녀를 향한 경외심이 생긴 탓이다.


제작발표회에서 연기 혹평에 관한 질문을 받고도 당황하지 않고 “중전의 행동이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해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며 “촬영 준비 단계에서는 어렵고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작가님과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캐릭터를 잘 쌓아가면서 즐겁게, 또 감사하게 촬영에 임했다”고 답한 것도 이러한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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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성년’의 김혜준, 박세진. 500 대 2의 경쟁률을 뚫고 만들어진 조합이다. [사진 쇼박스]

시즌 1과 2를 촬영하는 사이 영화 ‘미성년’(2019)을 작업한 것도 큰 도움이 된 듯하다. 배우 김윤석의 첫 감독 데뷔작에서 주리 역을 맡은 그는 윤아 역의 박세진 배우와 함께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각각 아빠와 엄마의 불륜을 알게 된 두 명의 여고생이 원치 않던 남동생이 생겨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른들보다 더 성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여기서 ‘미성년’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곱씹게 되는 것.


오디션에서 500대 2의 경쟁률을 뚫고 주리 역을 맡게 된 김혜준은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다들 윤아 역을 하고 싶어했다고 들었다. 처음엔 나도 윤아에게 끌렸다. 주리는 애매하고 평범하지만 현실에 가까이 있는 아이라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 연기하라고 지시하기보다는 “꾸미지 말고 그대로, 진실하게 연기해라. 그래야 사람들이 알아보고 공감해준다”는 감독의 조언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덕분인지 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으며 쑥쑥 자라고 있다.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역할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도 강점이다. 2015년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으로 데뷔한 그는 tvN ‘SNL 코리아’ 시즌 7(2017)에서 고정 크루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성 간의 우정을 넘어선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그리는 백합에 대한 거부감도, 배우로 자리잡기 전에 예능 프로그램에 먼저 출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딱히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을 “수용이 빠르고,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어떤 도전이든 마다하지 않을뿐더러 어디서든 적응해낼 자신이 있단 얘기다. ‘킹덤’이라는 대작을 품은 그가 다음은 어디로 향할까. 시즌 3 못지않게 궁금한 부분이다. (김은희 작가는 “시즌 2가 잘돼야 3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안 하면 손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