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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망망대해에 불 밝힌 등대의 느린 낭만··· 충남 태안 무인도 여행

by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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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엔 100년 넘게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던 등대섬이 있고, 봄이면 2만마리의 괭이갈매기가 둥지를 트는 새들의 섬도 있다.

어떤 단어는 듣는 순간 사람을 달뜨게 만든다. 무인도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정서도 비슷할 것이다. 단절된 섬으로 떠나는 길은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의 묘미를 극적으로 돋운다. 등대섬은 어떤가. 파도가 들이치는 망망대해에 홀로 불 밝힌 이미지는 아득하지만 낭만적이다.


충남 태안엔 100년 넘게 숨겨져 있던 등대섬이 있다. 지금은 유람선을 타고 누구나 그 무인도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해마다 봄이면 괭이갈매기 2만마리가 둥지를 트는 아름다운 생태섬도 태안 앞바다에 홀연히 떠 있다. 하늘과 바다 사이를 하얗게 메운 갈매기들의 우아한 날갯짓은 눈부시도록 푸르렀다.

■무인도로 가는 길


태안 섬여행의 첫 목적지는 옹도다. 태안반도에서 약 12㎞ 떨어진 옹도 정상엔 등대가 하나 서 있다. 1907년 처음 불을 밝힌 이래 100년 넘게 태안 앞 바닷길을 지키는 등대다. 70㎞ 떨어진 지점에서도 육안으로 등대의 빛을 볼 수 있어 서해의 대산항, 평택항,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책임지는 길잡이 노릇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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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도 등대는 1907년 처음 불 밝힌 이래 100년 넘게 서해 바닷길을 지켜왔다. 사진 태안군청 제공

106년 동안 금단의 땅이었던 옹도는 2013년 일반에 개방됐다. 매 주말이면 태안 신진항(안흥외항)에서 오전 11시, 오후 2시 하루 두 번 뜨는 안흥유람선(평일은 오후 2시 하루 1회 운항)이 옹도를 오간다. 40여분 항해한 뒤 옹도에 내려 1시간가량 섬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코스다. 1시간이 짧은 것 같지만 작은 섬을 두루 살펴보고 등대에 올라 풍경도 감상하며 섬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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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모양이 옹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양과 비슷해서 옹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부두를 떠난 유람선은 서쪽으로 내처 달린다. 도착할 때까진 인근 섬을 돌아보는 선상 유람 시간이다. 오른편으로 길쭉한 섬 가의도가 눈에 들어온다. 가의도는 만리포·몽산포·꽃지 해변 등과 함께 ‘태안 8경’에 속할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섬이다. 멀리서도 섬 가장자리에 솟아오른 기암괴석의 자태가 선명히 보인다. 달고 부드러운 육쪽마늘 산지로 유명한 가의도는 태안군의 114개 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기도 하다. 현재 70여명이 거주하는데, 먼 옛날 중국에서 가의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섬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섬에는 가의가 심었다는 은행나무도 아직 남아있다. 실제로 태안엔 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태안 양잠리엔 가씨 사당도 있다. 공교롭게도 현직 가세로 태안군수 역시 성이 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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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신진항에서 옹도를 오가는 유람선이 하루 2번 출항한다.

가의도 옆의 작은 섬 단도는 염소가 많이 사는 섬이다. 단도와 가의도 사이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데 상어가 자주 출몰해 해녀를 공격하거나 가끔 어민들의 그물에 걸려 나오기도 한다. 갑판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더 달리다 보면 배의 왼편으로는 멀리 안면도가 보이고 가깝게는 꼭 눈이 쌓인 것처럼 가마우지 배설물로 하얗게 뒤덮인 정족도가 눈에 띈다.


■망망대해에서 띄운 엽서


선장이 해주는 재미난 설명을 들으며 실컷 섬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덧 옹도에 닿았다. 섬 모양이 옹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양과 비슷해서 옹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그럴 듯했다. 어민들 사이에선 고래를 닮아 고래섬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선착장을 벗어나 섬 정상으로 향하는 길엔 우거진 동백나무들이 꽃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바닥에 툭툭 떨어진 동백꽃 사이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위로 올라갈수록 주변 섬과 서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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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서해 바다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섬 꼭대기에 자리 잡은 높이 25m의 등대는 2009년 새로 지은 것이다. 1907년 세웠던 등대는 시설이 낡고 노후해 철거됐다. 등탑 2층엔 등대 역사를 알려주는 홍보관이 있고 3층엔 주변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전망대가 있다. 홍보관의 ‘느림보 우체통’은 등대 사진이 박힌 엽서에 관광객이 메시지를 적어 넣으면 매년 말 수거해 한꺼번에 발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딸에게 엄마가 보낸 절절한 사연이 적힌 엽서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서쪽 바다 무인도에서 주소도 적지 못한 편지를 한줄 한줄 써내려갔을 엄마의 뒷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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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도 정상으로 향하는 길의 동백꽃 터널

옹도 등대는 충남 유일의 유인 등대다. 3명의 등대관리원(항로표지원)이 한 팀으로 일하는데, 20일 연속 일하고 열흘 쉬는 식으로 2인 1조 근무를 한다. 한 번 섬에 들어가면 일단 20일 동안은 그 안에서 꼼짝없이 버텨야 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서해 최서단 격렬비열도에서 근무하다 올해 3월 옹도로 근무지를 옮겼다는 김봉수 옹도등대관리소장(47)은 “섬에 있으면 외롭고 심심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며 최근 낚시로 잡은 물고기 이야기를 한바탕 늘어놨다. 마침 20일 근무를 마치고 육지로 교대해 나가는 김 소장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이발부터 하고 그동안 못 먹은 음식 찾아 먹어야죠. 치맥이랑 피자, 그건 꼭 먹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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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도 정상에 서면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단도(왼쪽 작은 섬)와 가의도(오른쪽 섬) 해역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국내 3300여개 등대 중 약 1%에 불과한 유인 등대는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점차 없어지는 추세다. 옹도 등대도 2026년이면 무인 등대로 바뀔 예정이다. 등대관리원들이 키우는 검정 강아지 ‘까미’가 뭍으로 향하는 유람선을 타러 가는 김 소장의 발치를 한동안 따라다녔다. 이제 몇 년 후면 그조차 사라질 풍경이라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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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옹도등대관리소장이 섬에서 키우는 강아지 ‘까미’를 안고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괭이갈매기의 섬


옹도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더 나가면 ‘괭이갈매기의 섬’ 난도에 다다른다. 현재 난도로 가는 유람선이나 여객선은 없다. 낚싯배를 빌려 가야 하는데 신진항 수협이나 어촌계에 문의하면 배편 섭외가 수월하다. 만만치 않은 가격(10명 기준 약 70만원)이지만 굳이 배를 마련해 갈 만큼 장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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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괭이갈매기의 섬 난도

알섬 혹은 갈매기섬으로도 불리는 난도는 1982년 천연기념물(제334호)로 지정된 괭이갈매기 집단 번식지다. 매년 4월 중하순이면 1만5000~2만마리에 이르는 괭이갈매기 떼가 길이 500여m의 섬 전체를 뒤덮으며 둥지를 튼다. 해양수산부가 ‘절대보전 무인도서’로 지정했다. 섬에 상륙하지 않고 근처 바다의 배 위에서도 괭이갈매기들의 군무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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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소리가 고양이와 비슷해 괭이갈매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섬이 가까워지면 멀리서부터 “꽈아오 꽉” 하는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귓전을 때린다. 괭이갈매기라는 이름은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해 붙었다. 일본에서도 ‘바다고양이’라고 부른다니 역시 사람의 감각과 상상력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다.


몸 길이 50㎝ 정도까지 자라는 괭이갈매기는 머리·가슴·배가 희지만 날개가 잿빛이고 꽁지깃 끝에 검은 띠가 있어 다른 갈매기와 구분이 된다. 바닷속 물고기 같은 먹이를 낚아채기 쉽도록 날카롭게 휘어진 부리의 끝부분에는 검고 붉은 무늬가 있다. 오리처럼 발에 물갈퀴가 있어서 수영도 잘한다. 예로부터 어부들은 물고기를 잘 잡아먹는 괭이갈매기들이 몰리는 곳에 좋은 어장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사람과 상부상조하는 일종의 ‘길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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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갈매기는 우리나라 전 해안과 섬에 분포하는 흔한 텃새지만, 난도의 괭이갈매기가 특히 유명한 건 봄마다 섬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많은 개체가 모여들기 때문이다.

난도는 섬의 가장자리가 50~70m에 이르는 수직암벽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다 보니 자연히 새들의 차지가 된 섬이다. 채송화와 쑥이 초록빛으로 덮은 섬 정상부는 물론 파도가 턱끝까지 차오르는 절벽과 갯바위까지 촘촘히 둥지를 튼 괭이갈매기들의 모습이 멀리서도 뚜렷이 보였다. 까만 점처럼 하늘을 수놓으며 비상하거나 고개를 처박고 바닷속에서 먹이를 찾는 녀석들도 부지런히 옆을 오갔다.


어두운 풀색에 검은 반점이 나 있는 괭이갈매기 알은 한때 남성 정력과 여성 피부미용에 좋다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난도에 배를 대고 알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난도에서 괭이갈매기 알을 반출하는 것은 물론 문화재청장의 허가 없이 난도에 출입하는 것조차 문화재법 위반으로 엄한 처벌을 받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괭이갈매기 알은 다른 조류의 알과 영양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많이 먹어봐야 콜레스테롤 수치만 높아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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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 해변의 괭이갈매기

괭이갈매기를 만나러 난도에 간다면 카메라는 물론이고 망원경을 꼭 챙겨야 한다. 바다를 가르는 갈매기들의 유려한 비상은 물론 운이 좋다면 번식과 알 품기, 짝짓기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태안 |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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