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돈 리뷰

여의도가 월 스트리트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byIGN 코리아

'돈'은 '베를린', '부당거래'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류승완의 기운을 간직한 박누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류준열과 유지태, 조우진을 필두로 원진아, 김재영, 정만식, 김민재, 진선규 등이 이름을 올렸다. 범죄 사기 쪽은 항상 충무로에서 사랑받아 온 소재였고, 거기에 부자들이 돈을 물 쓰듯이 쓰는 광경엔 사람을 이끄는 맛이 있다. 그런 영화의 제목이 '돈'이라면 왜인지 조금은 성찰적인 면도 있을 것 같다.

오직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 빽도 줄도 없는, 수수료 0원의 그는 큰 실수로 해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위기의 순간, '번호표'라 불리는 신화적인 작전 설계자를 만나게 된 일현은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거래 참여를 제안받는다. 그렇게 말단에 불과했던 일현은 순식간에 큰돈을 벌게 되지만, 승승장구하는 그의 앞에 금융감독원의 사냥개 한지철이 나타나며 판이 바뀐다.

 

소재와 포스터, 예고편에서부터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신예 브로커가 판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떼부자가 되지만, 돈이란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이 증명될 것 같다. 하지만 '돈'은 조금 더 상업적인 노선을 택했다. 개인에 집중하기보단 캐릭터와 캐릭터, 정확히는 선과 악의 대립 구도를 토대로 자기만의 영웅 신화를 써 내려간다. 그 중심엔 당연히 주인공 조일현이 있다.

'21', '작전', '더 킹' 등에 이르기까지,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 합류한 초짜가 이내 그 바닥을 다 쓸어 먹으려 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출발한다. 풋내기가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 능력을 발휘하고, 눈썰미 좋은 누군가가 그를 스카웃해 활약할 기회를 준다. 그토록 치밀하고 비밀스러우며 영향력까지 강력한 집단이 있다면 최소한 무언가 증명해 보이는 것이 있어야 넣어 줄 생각이라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돈'은 거기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조일현은 그 대단한 번호표의 리그에 들어갈 자격을 증명해 보인 적이 없다. 큰 실수의 벌충용으로 주어진 기회이기에 차라리 정반대에 가깝다. 게다가 거기에 속해서 하는 일이라곤 걸려오는 전화를 제때 받아 하라는 대로 마우스 클릭만 하면 되는 일이다. 감도, 수완도, 실력도 필요가 없다.

프로그램이니 공매도니 하는 용어들은 오로지 여의도 증권가를 무대로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설명은 생략되고, 영화도 굳이 필요를 느끼지 않는 눈치다. 때문에 더더욱 주인공은 자신이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설 이유조차 증명하지 못한다. 그만한 돈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들은 그저 그게 그만큼 비싼 클릭이라는 사실만 납득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얼핏 보면 오히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어진 기회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번호표는 자신을 배신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딱히 토사구팽을 할 사람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애초에 아둔하다는 이유만으로 데려오기엔 집단의 비밀스러움을 유지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결국 일현은 스스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돈 많고 착한 바보 덕에 부자됨을 당하는 셈이다.

'마스터', '오션스 8' 등에 이어 금액의 규모를 영화의 규모로 착각하는 또 다른 사례다. '큰돈'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1차원적으로만 접근한다. 보여주거나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그냥 그만큼 크고 어두운 세력이 있음을 가정하기에 납득하라고 요구한다. 정작 수면 위에서 벌어지는 대립은 푼돈이라 해도 무방한 개인과 개인의 알력 다툼이다. 거창함을 뽐낼 자리는 없다.

 

신입사원 일현과 돈의 맛을 본 후의 일현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내면은 물론 외모와 말투, 표정까지 다르다. '독전'과 '뺑반' 등, 영화의 전체적인 만듦새와는 별개로 최근 류준열은 캐릭터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데에 훌륭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돈'은 촬영 일정 종료 후 일부 초반 장면들의 재촬영을 시도했으나, 캐릭터의 변화와 함께 바뀌어 버린 느낌에 감독이 촬영을 포기한 일화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이 변화에 희생된 인물들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원진아의 시은과 김재영의 우성, 정만식의 변 차장이 대표적이다. 일현과 지철, 번호표가 벌이는 중심 사건이 주목을 차지함에 따라 이들은 작전용 핸드폰 수준의 소도구로 전락한다. 일현과 동일한 눈높이에, 혹은 그 이상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마저 잃어버린 채 각본에서 빠지지 않으려 억지로 비중을 주장한다.

그렇게 '돈'은 수백억 대 자금의 무게를 증명할 만큼 똑똑하지도, 무엇보다 흔하면서도 귀한 돈의 의미를 다시 볼 만큼 새삼스럽지도 않다. 누구도 사건의 실마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효력을 발휘하면 복선이 되지만, 우연을 가장해 일부러 가져다 놓은 무언가가 힘들게 묶은 매듭을 통째로 잘라버리면 잔꾀가 된다. '돈'의 헐거운 바퀴들 사이엔 잔꾀 이상의 총명함이 없다.

THE VERDICT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주인공이 헤엄쳐도 좋을 만큼 많은 돈을 버는 광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흥밋거리다. 영화의 대표적인 존재 의의 중 하나인 대리만족에 이만큼이나 충실할 수가 있나 싶다. 하지만 '돈'은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결과엔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는다. 돈이 오가는 음모의 한복판에 서 있을 뿐, 주인공이 부자가 된 건 굴리는 돈의 액수와 머리의 치밀함이 반비례하는 악당 덕에 불과하다.

 

Jiseong Kim님은 IGN과 함께하는 필자입니다. 꾸밈은 덜고 진솔함은 더한 Jiseong Kim님의 영화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