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그는 예언자였나? 조지 오웰 70주기

by뉴스1

뉴스1

1945년 초판 '동물농장' 표지와 조지 오웰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세계인이 공산주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 세 가지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1945년 스탈린 독재를 비판한 반공산당 소설 '동물농장'의 출간이다. 두 번째는 1956년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의 스탈린 격하 운동이다. 마지막은 1989~1990년 소련을 위시한 동구 공산권의 붕괴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은 1950년 1월21일 폐결핵으로 런던의 대학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장례는 유언대로 성공회식으로 간소하게 치러졌고, 런던 북부 옥스퍼드 지방 서튼 코트네이(Sutton Courtnay)의 '올 세인트 교회' 묘지에 묻혔다. 런던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다.


교회 묘지 입구에는 세노탑(충혼탑)이 방문객을 맞는다. 1차세계대전 당시 이 마을 출신으로 목숨을 바친 병사들의 이름을 계급과 함께 빼곡하게 기록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묘비는 안쪽에 있다. 세월의 비바람에 묘비는 변색하고 군데군데 패였다.


'1903년 6월 25일 태어나 1950년 1월21일 사망한 Eric Arthur Blair 여기 잠들다'


조지 오웰은 필명이고, 에릭 아서 블레어가 본명이다. 그는 결혼했지만 자식이 없어 말년에 양자를 들였다. 그래서일까. 위대한 작가의 묘비라고 하기엔 어딘가 초라해 보인다.


데이비드 애스터(David Astor)라고 적힌 묘비가 그를 뒤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옵저버 지의 편집인이었던 애스터는 조지 오웰의 한결같은 후원자였다. 조지 오웰이 종군 취재를 원하면 그를 특파원으로 계약했고 언제든 지면을 제공해 원고료를 지급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애스터는 그가 눈을 감자 매장을 원한 작가를 위해 묘지까지 마련해주었다. 애스터는 자신이 죽으면 묘를 조지 오웰 뒤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두 사람은 하늘나라에서도 이승에서의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장과 사실에 충실한 작가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이 성공하기 전까지 기자와 작가를 병행했다. 경찰직을 그만두고 런던과 파리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무작정 글을 썼다. 간신히 작가로 이름은 얻었지만 인세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그는 현장을 중시한 기자이면서 사실과 진실에 충실한 작가였다. 영국 북부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실상을 2개월간 현장 취재해 쓴 게 '위건 부두 가는 길'이다. 1㎞ 깊이 지하 갱도에 들어가 채탄 현장을 취재하다 고통을 겪기도 했다. '위건 부두 가는 길'은 르포르타주 문학의 백미(白眉)로 평가받는다.


1930년대는 공산주의 전성기였다. 1929년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로 시작된 세계 경제공황은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자본주의 몰락의 서곡이 되어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미국과 유럽과 아시아에서 지하 공산당이 우후죽순처럼 그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실업자들이 시냇가의 자갈처럼 깔린 상황에서 '실업자 없는 완전 고용의 나라' 소련 이야기는 천상의 복음(福音)이었다. 특히 피압박민족의 청년·지식인들에게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산다는 공산주의 이론은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1936년 스페인내전이 발발하자 유럽과 미국의 좌익 지식인·작가들은 반(反)프랑코 인민전선을 지원하겠다며 의용군으로 자원했다. 스페인내전은 좌익 이념의 각축장이었다. 스페인내전 참전은 곧 '개념 지식인'의 증표였다.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들이 인민전선 편에 가담했다. 조지 오웰도 종군 기자로 아내와 함께 전쟁에 참전했다.


그가 내전의 최전선에서 목격한 것은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이었다. 그 자신이 이들의 총격을 받고 죽다가 살아난다. 4개월의 스페인 내전 참전에서 그는 커다란 상처를 받았을 뿐아니라 폐결핵도 얻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허트포드(Hertford) 지방의 오지(奧地)마을 월링턴으로 돌아와 집필에 전념한다. 그렇게 해서 1938년에 태어난 책이 '카탈로니아 찬가'다. 스페인내전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쓴 '카탈로니아 찬가'는, 지금은 명저로 상찬되지만 당시는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월링턴 벽촌에서 실천하는 사회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스코트 니어링처럼 거의 모든 걸 자급자족하며 새 소설을 구상했다. 스페인내전 참전 이후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던 주제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스페인에서 귀국한 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다른 나라 말로도 쉽게 번역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소련신화를 폭로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세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 좁은 길에서 큰 마차용 말을 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말이 길에서 벗어나자 소년은 채찍을 휘둘렀다.…나는 동물의 관점에서 마르크스 이론의 분석으로 나아갔다.'


그는 월링턴 키츠레인 2번지 뒷마당에 가축을 키우며 동물들의 행동과 습관을 관찰하며 소설의 뼈대를 구상했다. 이곳은 작가 조지 오웰을 느끼는 데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이 마을은 1936~1940년이나 지금이나 찾아가는 길부터 여전히 인적이 드물다. 이 집을 천천히 둘러보면 작가의 고립과 고독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런던의 노팅힐이나 햄스테드 같은 곳에도 작가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밀밭 한가운데에 있는 월링턴 마을 같은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동물농장의 원고는 1944년 2월 런던에서 완성했다. 그러나 스탈린독재를 비판한 내용 때문에 런던의 출판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8월에야 세상 빛을 본다.


동물농장의 끝부분을 다시 읽어보자. 돼지들은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최초의 7계명'을 모두 지우고 계명(誡命) 하나만 남겨놓는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목숨과 바꾼 소설 '1984'


전지전능한 감시자 '빅 브라더'를 세상에 등장시킨 '1984'.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의 외딴 주라 섬에서 쓰여 1949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스스로를 고독에 유폐시켰다. 세계의 모든 지식인이 찬미하는 '1984'는 그가 피를 토하며 써낸 작품이다. 그가 집필을 중단하고 폐결핵 치료를 받았더라면 작가는 충분히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생명과 맞바꾼 소설이 '1984'다.


73년 전에 쓴 '1984'를 읽다가 한국과 북한과 중국의 현실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그는 소설가의 얼굴로 나타난 예언자가 아니었을까.


조지 오웰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늘 궁금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그의 스페인내전 참전 경험은 4개월에 불과하다.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는 머리 위로 총알과 포탄이 오가는 최전선에서 소련신화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산주의 전성시대에 좌익의 참호 속에서 공산 독재의 실체를 보았다. 극히 일부분을 경험했을 뿐인데 전체를 파악해낸 것이다.


과학 용어 중에 '프랙탈'(fractal) 이론이 있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말한다. 프랙탈 이론은 1975년 수학자 망델브로가 주창했다. 우리는 프랙탈 이론을 자연 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눈의 결정체, 식물의 잎사귀, 패각류의 나선형, 은하의 나선형, 강의 하구, 복잡한 해안선 ….


조지 오웰이 자기 유사성(類似性)의 프랙탈 이론을 알았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튼 컬리지에서 배운 귀납적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서였을까. 그 말고도 헤밍웨이 같은 유명 작가들이 스페인내전에 참전했지만 그들은 이런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여기에 조지 오웰의 위대함이 있다.


강연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만난 천재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습니까?"


나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조지 오웰입니다."


조지 오웰은 글과 삶이 일치하는 작가였다. 글쓰기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자못 숙연해진다. 진실을 찾아 고행을 떠나는 구도자처럼 보인다. 이런 그를 가리켜 '성인'(聖人)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곧, 조지 오웰 서거 70주기가 다가온다.

author@naver.com @news1.kr


[© 뉴스1코리아( 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