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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15년,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뮤지컬 ‘빨래’

byㅍㅍㅅㅅ

‘파루레’를 아시나요

극장 찾아가기 어려운 편이었다. 평상시에 자주 다니던 혜화역이 아니었다. 이렇게 으슥한 데 있다고…? 카카오맵을 믿기 어려워지는 순간, 예상외로 아주 큰 극장이 등장했다. 〈빨래〉가 공연 중인 동양예술극장이다.

큰 건물이라 카페만 3개 있었다. 제일 아래층에 있는 카페에서 탄산수를 샀다.

아무리 금요일 저녁이었다지만 사람도 많았다. 데이트하는 커플이 특히 많았다. 관객석은 중극장에 가까울 정도의 크기였는데, 거의 빈 자리 없이 꽉 채웠다. 내 주변에 있던 커플 중 한 명은 “나 대학로에서 공연 보는 제 처음이야!”라고 들뜬 목소리를 냈다. 중년 어르신들도 꽤 많아서, 어셔는 계속 “내부 촬영 불가하세요!”라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무대의 끝과 끝에는 시야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스크린 두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에 쓰여 있는 일본어에 시선이 갔다. 요새 일본어 공부를 해서 가타카나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더듬더듬 읽었다.

パルレ。파루레.

제목인 〈빨래〉의 일본식 발음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보려고 하는 작품이 얼마나 인기 있는 작품인지.

구글에 ‘빨래 포스터’ 검색하면 몇 종인지 세어보는 재미가 있다.

세상에는 빨래를 100번 본 사람이 있다

저는 ‘빨래’를 80번쯤 봤어요. 작년 빨래 마니아데이 때 ‘최다 지방관람 상’을 받았는데 저랑 같이 상 받은 분은 글쎄 100번을 넘게 보셨더라고요. -《중앙일보》, 2011.6.2.

〈빨래〉는 2003년 시작되었다. 작가인 추민주 씨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졸업 공연(!)에 올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었다. 아마 다들 그때부터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봤을 것이다. 그래서 2005년 정식으로 초연이 올라간 후 단 2주간의 공연으로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작사상 및 극본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는 제4회 뮤지컬어워즈에서 극본·작사·작곡상을 수상했다.


〈빨래〉 관련 기사를 검색하면 그간 쌓아 온 어마어마한 기록에 놀라게 된다. 10년을 넘게 큰 공백기 없이 공연하면서 스쳐 간 배우만 해도 몇백 명이고, 순회공연 다닌 지방 도시만 찍어도 대동여지도가 완성될 것 같다. 지금은 뮤지컬 계의 대배우가 된 홍광호를 비롯해 정문성, 임창정 등등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배우진이 〈빨래〉를 이력으로 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뮤지컬 마니아들이 뮤지컬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장 무난하게 추천하는 작품이 이 〈빨래〉다. 나도 작품 자체를 처음 봤을 뿐, 포스터는 대학로를 오가며 많이 보았다. 이런 여러 사실을 감안해 보면, 내가 이 작품을 보러 온 건 아주 늦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둘러싼 거대한 아우라를 알게 된 건 이 작품을 모두 감상하고 난 뒤 서칭을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작품의 위대함에 압도당하지 않은 채 편견 없이 평소의 기대를 가지고 관람했던 것이다. 다행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접한 〈빨래〉는 어땠을까?

“서울살이 몇 핸가요”의 마법

막이 오르기 전부터 우리는 여기가 후줄근한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다는 걸 안다. 그냥 관객석에 들어갈 때부터 세트가 조명을 받으며 봐달라는 듯이 거기 있다.

배우들만 빠지면 관객들이 보는 세트 그대로임.

그러다 극이 시작되면 그 세트 안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싶은 배우들이 우르르 나와 각자의 동작을 시작한다. 이들은 배드민턴을 치거나 빗자루질을 한다. 싸우거나 애정행각을 한다. 그렇게 음악에 맞춰 지나가는 듯하던 배우들은 어느 순간, 어떤 리듬에 맞춰 같은 가사를 부른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 서울살이 몇 핸가요
언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그 순간 관객은 그 가사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나는 언제 여기로 올라왔을까?


나는 25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왔다. 나 때는 많은 동기가 대학원에 갔다. 엄마도 나에게 대학원에 가라고 했지만, 나는 교수를 노리지 않는 이상 학술 연구를 더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왔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취업을 했다.

극중 주인공인 ‘서나영’. 이름부터 스타일까지 정말 익숙한 친구를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제목이자 주 소재인 ‘빨래’는 또 어떤가. ‘빨래’로 검색하며 구글을 돌아다니다 이런 기사를 봤다.

장윤정도 “빨래를 돌리고 일을 갔다 왔는데 빨래가 그대로 있어 새벽에 빨래를 다시 돌리면서 엉엉 울었다”고 눈물을 쏟을 사연을 공개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스타투데이》, 2019.05.13.

장윤정이다. 일반인이 공감을 느끼기에는 경제적으로, 사회적 지위에서도 정말 많은 차이가 나는 톱 가수에게도 빨래는 서글픔의 표상이 될 수 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입을 옷이 없다. 하지만 오늘 깨끗하게 잘 빨아내면 내일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의 히로인이자 우리 그 자체인 나영이는 노래한다.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서정적인 가사. 효과적인 방식이면서 동시에 잘 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일부러 실험적인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면, 보통의 제작자는 잘 만들어낸 것으로 히트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잘 만들기도 어렵고 히트하기도 어렵다.


〈빨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 잘 다듬어낸 대중극이었다. 사람을 울리거나 웃기고 싶어 하는 의도는 아주 노골적이지만, 그 노골적인 의도조차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든 작품이었다. 관객들은 푹 빠져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극 중 서점에서 진행되는 사인회 장면에서 사인을 원하는 관객은 실제로 무대 위에 올라가 배우에게 직접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자 십수 명의 관객들이 다른 관객들이 지켜봄에도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사인을 받았다. 극에 대한 깊은 몰입과 한껏 끌어올린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5년의 초연, 2019년의 4,200번째 공연 이후 그리고 세상은 어떻게 변했나요

희망적인 메시지. 긍정적인 분위기. 그러나 이 작품이 만들어진 2005년보다 더 악화된 현재의 상황은 작품의 메시지에 응답하기 어렵게 만든다. 보고 나오는 끝 맛이 착잡했던 건 그 때문이다. 심지어 원래도 그렇게까지 희망적인 결말은 아니었는데. 그저 분위기와 연기로 그것이 극복 가능한 양 포장해 놓았는데, 2019년의 현실은 그 소박한 희망보다도 더 추락했다.


왜냐하면 2005년 이후의 한국은 더 극심한 혐오 사회로 건너왔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인 솔롱고가 겪는 차별은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로 더 크게 발전했다.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 또한 나아지지 않았다(극 중에서처럼 쉽게 자르지는 못하긴 할 거다). 하지만 더 큰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악덕 사장이 운영하는 것으로 연출되었던 서점 산업 자체가 궤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2019년의 현재에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서점 사장이 발붙일 곳이 없다. 제때 정리하거나 사업의 중심을 성공적으로 이동시킨 게 아니라면 사장 본인도 그가 누리던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으며, 설사 본인 자체는 탈출에 성공한다 해도 그 서점을 채우던 서점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산업 자체가 궤멸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 사장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는 계급의 울타리를 뚫는 데 성공했을까? 그때 서점에서 일하던 나영이는 어디로 갔을까? 심지어 극 말미에 인천에서 운영하던 사업에 실패해 서울의 달동네로 돌아온 ‘인천 사는 아들’도 있지 않던가. 그가 돌아오기 위해 잘 살던 방을 비워줘야 했던 희정 엄마는? 희정 엄마의 동대문 옷가게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처지가 10년이 지나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지난 10년간 사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다행인 것은, 〈빨래〉가 2005년에도 억지로 만든 희망적인 엔딩으로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엔딩은 서사 없이 함부로 희망을 말해서는 안 된다.


올해 초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SKY캐슬〉이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한국의 현재를 그려낸 방식은 밀도 높고 철저하게 현실적이었지만, 그에 대해 내놓은 결말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이전에 쌓아 왔던 드라마의 성취까지 부숴버렸다. 함부로 희망을 말해서는 안 된다.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다. 대중들은 이미 그 현실을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빨래〉가 만든 이상적이면서 영리한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극 마무리에서 느껴지는 희망은 아스팔트 블록 사이의 민들레 같은 것이다. 안쓰럽지만 감동적이다.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예쁘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없지만 오늘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지려고 한다.


잘 만든 엔딩이란 그런 것이다. 잘 만든 뮤지컬이란 그런 것이다.

공연 정보

  1. 공연 기간 : 오픈런
  2. 극장 컨디션 : 야외로 노출된 3층(!)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높은 구두를 신은 친구나 애인과 함께 간다면 경고가 필요하다. 의자가 꽤 납작하고 불편한 편이니 감안해야 한다. 화장실은 2층에 위치하며, 널찍한 편이니 공연 직전에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3. 추천 대상 :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재미있어할 만한 수작이다. 하지만 뮤지컬을 처음 접하는 사람을 데려가는 것도 좋다.
  4. 알고 보면 좋은 팁 : 외국인과 여성 등장인물이 극의 절반을 차지하고 2005년에 제작된 만큼, 이전에는 여성 혐오적이거나 외국인 혐오를 담은 대사가 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시류를 맞추어 대사를 업데이트해서 해당 이슈에 꽤 민감한 나도 크게 방해받지 않고 관람할 수 있었다(마치 이 사실을 알아달라는 듯 서점 세트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며느라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끔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 연극 관련 타래가 나올 때마다 ‘재미있지만 다소 불편한 구석이 있다’는 코멘트가 종종 눈에 띄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필자 도수안 (블로그)

가끔 연극과 뮤지컬을 보고, 숨겨진 이야기와 나만의 감상을 더해 정리합니다. 누군가 맞는 작품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