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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필리핀 사로잡은 서울시스터즈 “2300원 짜리 떡볶이로 월 매출 1억원”

by리얼푸드

- 안태양 푸드컬처랩 대표

- 필리핀 야시장에서 떡볶이로 연매출 10억원 달성

- K펍비비큐, 오빠치킨으로 연타석 홈런 친 ‘K-푸드’ 성공 신화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지금이야 전 세계 곳곳에서 김치와 고추장, 쌈장을 먹는 때라지만, 9~10년 전만 해도 달랐다. ‘서울 시스터즈’는 떡볶이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시절, 필리핀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을 제대로 알린 K-푸드 전도사다.


당시는 ‘아시아 프린스’로 불리던 장근석과 슈퍼주니어 2PM 등 K-팝 스타들의 인기로 아시아 전역에서 한식에 대한 호기심이 커질 때였다. 그 시절 필리핀 야시장에서 떡볶이를 팔던 ‘서울 시스터즈’는 ‘한류의 성지’로 불렸다. 한국에서 온 20대 자매가 만든 떡볶이를 먹어야 ‘진짜 서울을 경험한 것’이라는 말이 필리핀의 ‘한류팬’ 사이에 퍼졌다. 지금도 9년 전 단골 손님들은 ‘서울 시스터즈’를 찾는다.


“서울 시스터즈 떡볶이가 너무 그리워. 다시 돌아오면 안돼?”


안태양 푸드컬처랩(Food Culture Lab) 대표는 누구도 개척하지 못한 땅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았다. 동남아 시장에서 한식으로 성공적인 이정표를 남긴 것.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지금은 K-푸드의 해외 진출을 돕는 컨설턴트이자 혁신적인 식품들을 제조하는 스타트업의 대표로 자리잡은 안태양(34) 대표를 만나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의 성공기를 들었다.

[푸드컬처랩 제공]

[푸드컬처랩 제공]

▶ “한류 열풍에 잘 될 줄 알았지만”…‘처절한 실패’=안 대표가 필리핀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한 것은 2010년이었다. 사실 특별히 요리를 좋아하거나 미식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 친구들을 만날 때 한국 음식에 스토리를 더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막걸리는 비오는 날 전이랑 함께 먹는 거고, 삼겹살은 친구들끼리 회포 풀 때나 사장님 뒷담화하면서 먹어야 제맛이야. 소주를 마실 때 자기 잔을 스스로 따라 마시면 재수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외국 친구들이 너무 재밌어 하더라고요. 제 스토리 때문에 한국 음식을 너무 사랑하게 되고,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는게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때 음식만큼 한 나라의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다. 음식에 스토리텔링을 더하며 재미를 느꼈던 경험을 살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필리핀에서 한국 음식을 팔아보기로 결심한 것은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었다.


안 대표는 당시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던 여동생 찬양 씨에게 필리핀 야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올티가스 야시장은 매주 금요일 저녁 10시부터 토요일 아침 10시까지 수백 개의 텐트가 열리는 초대형 상권이었다. 하루 방문객만 해도 무려 5000여 명.


“동생한테 일주일에 하루 일하고 5일은 놀자고 꼬셨어요. 순진한 동생이 월세 보증금 300만 원을 빼서 필리핀으로 왔어요.”

필리핀에서 K-푸드 열풍을 일으킨 안태양 대표(가운데)[푸드컬처랩 제공]

필리핀에서 K-푸드 열풍을 일으킨 안태양 대표(가운데)[푸드컬처랩 제공]

2010년 3월 첫째 주 금요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사실 대박날 줄 알았어요. 한류 붐도 있었고, 필리핀 친구들은 피부가 하얀 한국 여자애들을 보면서 엄청 신기해 했거든요.”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12시간 동안 팔린 것은 2300원 짜리 떡볶이 두 접시. 100인분을 준비해갔는데, 98인분이 버려졌다. “쫄딱 망했어요. 사람들이 저희 사진만 찍고, 떡볶이는 안 먹더라고요. 야시장에서 텐트 하나를 빌리는 하루 렌트비가 10만원이었는데 두 접시 밖에 팔지 못했으니까요.”


동생 앞에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안 대표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어쓰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처음 겪어본 실패였고, 공포였어요.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다 집어넣어서, 다음날 밥 먹을 돈도 없었거든요.”


한류는 시작됐다는데, 떡볶이로 필리핀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 것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주중엔 초등학생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주말엔 다시 야시장으로 향했다. 팔리는 양은 조금씩 늘었다. 둘째 주엔 3인분, 셋째 주엔 5인분, 넷째 주엔 6인분을 팔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안 나가는게 나았어요. 어차피 렌트비도 채우지 못 하니까요.” 가진 게 없던 20대 자매는 체력만 믿고 뛰었다. 일주일에 90시간씩 일하며 6개월을 버텼다.


“한국으로 돌아갈 돈도 없었고,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가봐야 부모님께 기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이 곳에서 어떻게든 해내야 했어요. 저 때문에 한국에서 잘 살고 있던 동생도 학교를 자퇴하고 온 건데, 여기서 포기하면 제 인생뿐만 아니라 동생 인생도 잘못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필리핀 야시장에서 출발한 서울 시스터즈는 1년 6개월 만에 8호점까지 오픈하며 월 매출 1억원을 올리는 성공을 거뒀다. [푸드컬처랩 제공]

필리핀 야시장에서 출발한 서울 시스터즈는 1년 6개월 만에 8호점까지 오픈하며 월 매출 1억원을 올리는 성공을 거뒀다. [푸드컬처랩 제공]

▶ 장사의 ‘기본’부터 시작…상인들의 마음을 얻어라=안 대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장사’의 기본도 몰랐기에 책으로라도 장사를 배웠다.


두 가지를 고쳐보기로 했다. ‘표정’과 ‘관계’였다. 한국에서 공수한 책을 통해 웃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뒤 가장 기본적이라고 생각한 표정부터 고쳤다.


“어디 가서 기분 나쁜 얼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동생한테 내가 안 웃으면 팔꿈치로 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세 시간 동안 30초마다 치더라고요. 너무 열이 받았어요. 그런데 집에 가서 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장사도 안 되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밥도 못 먹으니 얼굴에 짜증과 피곤이 묻어있더라고요. 나라도 이런 얼굴로 떡볶이 팔면 안 사먹겠다 싶더라고요.”


야시장에서 함께 하는 상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도 시작했다. 안 대표 자매는 필리핀 야시장의 ‘눈엣가시’였다. 생계를 위해 나오는 상인들은 한국에서 온 여자애들이 야시장에 놀러 나온다고 생각했다. 안 대표는 그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떡볶이를 포장해 갖다 주고, 초코파이를 나눠주고, 상인들의 음식도 사먹고, 그들의 일을 도왔다. “처음엔 제가 보는 앞에서 떡볶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더라고요. 저희가 물을 흐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분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음식으로 동남아시아를 사로잡은 안태양 대표(가운데)[푸드컬처랩 제공]

한국 음식으로 동남아시아를 사로잡은 안태양 대표(가운데)[푸드컬처랩 제공]

한두 달이 지나니 상인들은 안 대표 자매에게 마음을 열었다. 자기들의 단골손님을 보내주고, TV에서 촬영을 나올 땐 안 대표를 소개해줬다. 6개월이 지나자, 안 대표 자매는 필리핀의 스타가 됐다. 그 때부터 손님이 200명씩 줄을 이었다. 그 무렵 2호점을 오픈하고, 두 사람은 1, 2호점을 각각 운영했다. 2호점에서도 평균 매출이 나오자 3호점으로 확장했다. 승승장구하던 떡볶이 장사는 거기에서 발목을 잡혔다. “3호점에서 폭삭 주저앉더라고요.” 이유는 명확했다. “사람들은 떡볶이를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저희를 보러오는 거더라고요.” 자매 없이 현지 직원을 고용했던 3호점은 장사가 될 리 없었다. 필리핀 야시장에서 인기 스타가 된 ‘떡볶이를 파는 한국 자매’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는 확장성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약 제가 아프거나 한국에 가면 다른 매장도 매출이 떨어질 것 같았어요. 이젠 브랜드로 승산을 봐야하는 때라고 생각했어요.”


‘서울 시스터즈’라는 이름과 로고는 그 때 나왔다. 두 사람만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을 내걸고 “작은 서울을 경험하러 오세요”라는 슬로건으로 매장을 운영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 플라스틱 천막에서 떡볶이를 먹고, 2PM과 장근석이 야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걸 보여주면서, ‘너희가 좋아하는 아시아 프린스도 이렇게 먹는다’고 알려줬어요. 그 때부터 K-팝과 K-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게에 무조건 와봐야 하는 성지가 됐어요.”


300만원으로 시작한 서울 시스터즈 떡볶이 가게는 월 매출 1억원을 올리며 8호점까지 뻗어나갔다. 찐득찐득한 식감, 맵고 뜨거운 맛 때문에 떡볶이를 꺼리던 필리핀 사람들은 ‘서울 시스터즈’에 완전히 매료됐다. 불과 1년 6개월 만에 일군 성공 스토리다.

필리핀 최대 규모의 고깃집인 'K펍 비비큐'는 안 대표가 GNP트레이딩의 신사업부문 본부장으로 일할 당시 만든 브랜드다. [푸드컬처랩 제공]

필리핀 최대 규모의 고깃집인 'K펍 비비큐'는 안 대표가 GNP트레이딩의 신사업부문 본부장으로 일할 당시 만든 브랜드다. [푸드컬처랩 제공]

▶ 떡볶이 이어 치킨으로 K-푸드 붐=떡볶이 성공 신화는 ‘서울 시스터즈’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안 대표는 필리핀 최대 유통회사인 GNP 트레이딩에 스카우트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동생 찬양 씨는 물론 ‘서울 시스터즈’ 브랜드와 함께 입사한 GNP트레이딩에서 신사업부문 본부장으로 외식 사업을 맡았다. 안 대표의 역량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5년 동안 2개 브랜드, 12개 매장을 오픈하며 그야말로 ‘K-푸드 열풍’을 일으켰다. 처음 만든 브랜드인 ‘K펍 비비큐’는 무려 450석 규모의 필리핀 최대 고깃집이다. 코리안 바비큐의 성공 이후 도전한 ‘넥스트 비즈니스’는 한국 치킨이었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안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와 치킨 가게에서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전엔 식품제조회사와 R&D(알앤디) 작업을 하고, 저녁엔 치킨 가게 주방에서 닭을 튀겼다. “하루에 200마리씩 튀긴 것 같아요.” 한국 치킨 고유의 맛을 내는 소스도 개발했다. 액상 소스는 물류비가 많이 들고, 유통기한이 짧다는 단점이 있어 파우더 소스의 개발을 고집했다. 우여곡절 끝에 파우더 형태의 8가지 소스를 개발한 뒤 필리핀 현지에서 ‘오빠치킨’을 오픈했다.

필리핀에서 오빠치킨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안태양 대표는 한국의 치킨집에서 하루에 200마리씩 치킨을 튀기며 노하우를 배웠다. [푸드컬처랩 제공]

필리핀에서 오빠치킨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안태양 대표는 한국의 치킨집에서 하루에 200마리씩 치킨을 튀기며 노하우를 배웠다. [푸드컬처랩 제공]

한국에서 개발한 파우더 소스는 20피트 컨테이너를 꽉꽉 채워 3개월에 한 번씩 필리핀으로 띄웠다. 이번에도 대박이었다. “이 때의 경험이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경험이었어요.” K펍 비비큐와 오빠치킨은 지금도 현지에서 운영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필리핀에서 K-푸드 붐을 일으키고 돌아온 안 대표는 2017년 국내에서 푸드컬처랩을 설립, K-푸드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최근엔 김치 파우더를 개발, ‘시알 인디아 2019’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동남아시아 성공 신화의 주역인 만큼 이젠 ‘제2의 서울 시스터즈’를 꿈 꾸는 사람들이 늘었다. 안 대표는 “공부를 많이 하고, 경험을 많이 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K-푸드가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어서 시작만 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메인 스트림에 들어간 한국 식품은 별로 없어요. 세계 트렌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매년 나오는 해외 트렌드를 살펴보고, 현지에 직접 가서 많이 경험하고 접해봐야 해요. 경험만한 게 없더라고요.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이 뭘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 제품의 맛은 어떤지, 재료는 뭐가 들어갔는지 다 분석해야 해요. 그게 우리가 계속 갈 수 있는 이유였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