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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최인아의 책방 이야기

나라를 되찾아준 미생들

by예술의전당

내게 이 지면에 책을 소개하는 일은 과거를 더듬는 일이다. 나온 지 오래이나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책, 좀 더 많은 사람이 읽고 나누었으면 하는데 그에 미치지 못한 책, 그래서 아까운 책들을 주로 골라 소개하는 까닭이다. 숨어 있는 좋은 책을 세상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서인데, 이번에 소개하는 책이야말로 그렇다. 대학 시절에 처음 읽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간간이 꺼내 보며 추억에 젖곤 하는 책,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그 시절, 나를 깨어 있게 한 한 권의 책

이 책의 저자인 이미륵은 한국인이지만 독일어로 글을 썼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이 책을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해 밖으로만 돌았다. 그러다가 남산에 자리한 독일문화원에서 관장하는 독일어 회화 서클에 가입한 뒤론 주로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80년이었다. 5월에 전국 대학 휴교령이 내려졌고 백 일 가 까이 학교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처럼 커피숍이 넘쳐나는 때도 아니어서 달리 갈 데가 없었다. 우리 서클 멤버들은 시 도 때도 없이 독일문화원에 모여들었다. 그때 선배들의 제안으로 너무 어렵지 않은 독일어 원서를 골라 강독회를 시작했 다. 그렇게 읽게 된 책이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 iesst」이다. 연두색의 단출한 표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주로 독일문화원 강의실에서 모였지만, 문화원마저 문을 닫는 날엔 그곳 야외 계단에 쪼르르 앉아 선배들의 해석을 들어가며 이 책을 읽었다. 1학년이었으니 독일어 전공자라 해도 실력이 별 볼 일 없었을 터, 게다가 나는 독일어 전공도 아니었다. 반 페이지를 읽는 데 한나절이 꼬박 걸렸다. 거의 모든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야 했고, 책에 뜻을 적고 나면 페이지가 온통 까매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독일어로 읽는 일이 재미있었다. 처음엔 독일어 원서를 읽어 나간다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시간이 가면서 내용에 빠져들었다.

나라를 되찾아준 미생들

1931년 독일 뮌헨 시절 이미륵

저자 이미륵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옛날 선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갓과 도포 대신 양복을 걸친 선비랄까. 군더더기라고는 보이지 않는 마른 몸에 기름기 없는 얼굴. 안경 너머로 빙긋이 웃고 있는 표정. 욕심 없는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맑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서울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스무 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조선의 청년답게 참여했고, 일본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었다.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아들 미륵의 등을 어머니가 떠민다. 가라, 멀리 혼자서 너의 길을 가라. 그게 마지막이었다. 중국 상해를 거쳐 독일로 간 미륵은 다시는 조국 땅을 밟지 못한 채 그리운 마음을 가득 안고 평생을 살았다. 뮌헨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한국어와 동양학을 강의했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학 강의를 통해 조국을 알리는 일에 애썼다. 푸른 청년으로 조선을 떠난 지 30년, 고국을 그리워하다 51세에 눈을 감았다. 독일 뮌헨엔 그를 사모하는 아름다운 독일 여성도 있었으나, 고향에는 어릴 때 부모의 뜻에 따라 조혼早婚한 처가 있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지조를 지켰다.

청년의 힘으로 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에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고향과 어머니,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담아낸 아름답고 품위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동양인이 독일어로 썼으나 그 어떤 독일인이 쓴 글보다도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았고, 전후戰後 갈가리 찢긴 독일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평을 들었다. 지금도 그의 글은 아름다운 독일어의 전범典範으로 꼽히며 바이에른 주와 헤센 주 등 독일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 청년이 먼 이국땅에서 고향과 어머니와 가족을 그리며 쓴 글이라면 감정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담담할 뿐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는다. 웃음으로 치면 소리 없이 짓는 미소이고, 슬픔도 체에 걸러 그저 담담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독일에 도착한 후 그는 날마다 고향의 편지를 기다린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던 편지가 어느 날 편지함에 들어 있다. 그러나 반갑게 열어 본 편지엔 지난 가을 어머니가 몇 달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적혀 있다. 가슴이 미어진다. 감정을 쏟아낼 만도 한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담담하고 또 담담하다. 하지만 저자가 앞장서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데도 읽는 사람은 슬픔이 북받친다. 저자의 절제된 문체는 독자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눈물이 나도 소리 내 엉엉 우는 것과 다르다. 그저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웃음도 선사한다. 물론 그저 씩 웃는 웃음이다. 동갑내기 사촌 수암과의 장난이나 아버지와의 다정한 한때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그러한데,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개구쟁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옆에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하지만 「압록강은 흐른다」는 그저 이미륵 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구한말에서 일제 침략기, 그때의 우리 모습을 담고 있다. 서당의 구식 교육으로 시작해서 세상의 변화에 따라 신식 학교에 들어간 것. 방황과 좌절을 거쳐 의학 전문학교에 진학한 것. 3.1 독립운동 참여 후 일본 경찰을 피해 압록강을 넘어 중국 상해로 간 과정 등은 물론 이미륵 개인의 체험이지만, 그 한 사람의 특별한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시절을 산 이 땅의 청년들이라면 겪었을 세월로, ‘우리’의 경험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압록강’이 또 소중하다.

나라를 되찾아준 미생들

1997년 이장된 이미륵의 묘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가 스무 살의 내게 와 깊이 박힌 데는 번역자 전혜린도 큰 몫을 했다. 우리 세대, 책을 좋아하는 여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전혜린 앓이’를 했을 만큼 전혜린은 크고 상징적인 존재였다. 특히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난 그녀가 그곳에서의 생활과 느낌을 적은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우리의 필독서였다. 저녁이 되어 어스름해지면 뮌헨 거리의 가스등에 불이 들어오는 풍경을 묘사한 문장, 추운 겨울밤 푸른 도자기 난로에 불을 지피던 장면 등은 책을 읽은 지 서른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런 전혜린이 번역한 거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독일어 공부 삼아 원서로 읽었고, 얼마 후엔 전혜린이 옮긴 아름다운 우리말로 읽었다. 다만 여기엔 박균이 번역한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소개한다.

나라를 되찾아준 미생들

이번 호에 이미륵의 책을 고른 이유가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청년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인생을 걸었고 목숨을 내놓았다. 우리는 작년 가을 나라다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많은 국민의 열망으로 결국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우리의 나라’에 살고 있기에 가능했다. 역설적으로 이게 나라냐고 우리끼리 성토할 수 있기까지 무수한 청년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 우리 앞 세대들이 겪은 세월은 모진 것이었다. 그걸 돌아보고 싶었고 새기고 싶었다. 이미륵 개인은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그 역시 시대의 운명 앞에서는 수많은 미생 가운데 한 사람, 식민지 백성이었다. 그런 이들, 우리 앞 세대의 수많은 미생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압록강은 흐른다」를 다시 보고 싶었다.

 

사족. 이런 무거운 마음을 담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일독하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글 최인아 사진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연재 필자 소개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 제일기획 부사장.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서울 강사. 저서로는 「프로의 남녀는 차별되지 않는다」가 있으며, 작년 8월 선릉역 인근에 최인아책방을 열었다.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7년 7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