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완결은 C라인

[컬처]by 예술의전당

발레, 내 인생의 단비 ③

 

한 여성 무용수가 무대에서 더 아름다워 보이고 싶어서 성형수술을 감행했다. 그녀는 이미 실력뿐 아니라 인형 같은 얼굴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주역 무용수였는데, 대체 어디를 ‘고친’ 것일까. 그녀가 성형수술을 한 곳은 눈도 코도 아닌 바로 발등. 발등에 ‘뽕을 넣는’ 수술이었다. 영화 <백야>의 주인공이자 망명 러시아 무용수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1948~)의 환상적인 파트너였던 젤시 커클랜드(1952~)의 실제 이야기다.

발등에 집착하는 무용수들

가슴도 아니고 엉덩이도 아니고 발등에 뽕을 넣는 성형수술이라니, 이게 무슨 일일까? 발등에 뽕을 넣는다고 무대에서 더 아름다워 보이기나 할까? 이 질문을 무용수들에게 던진다면 아마 모두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라고 외칠 것이다. 내기를 걸어도 좋다. 어쩌다가 무용수들은 이렇게 발등에 집착하게 됐을까? 집착의 시작은 토슈즈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토슈즈가 주목받게 된 건 1832년 파리에서 초연된 <라실피드Lasylphide> 때문이었다. 그 당시 주역은 전설적인 무용수 마리 탈리오니(1804~1884)가 맡았다. ‘라실피드’는 공기의 요정을 뜻하는데, 여성 무용수는 작품 안에서 공기처럼 가볍고 신비로운 존재로 춤을 춰야 했다. 토슈즈가 처음 만들어진 때라 당시에는 지금처럼 토슈즈를 신고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일 수 없었다. 그저 발끝으로 가볍게 한 번 서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관객들의 심장을 향한 큐피드의 화살은 명중했다. 작은 날개가 달린 나풀거리는 흰 치마를 입고 무대 위를 가볍게 날아다니다가 토슈즈의 발끝으로 서는 마리 탈리오니의 모습은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여신 강림’ 그 자체. 그녀는 패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한 번 여성 무용수들의 발에 신겨진 토슈즈는 마치 동화 속 ‘빨간 구두’처럼 모던발레가 등장하기 전까지 절대 벗겨지지 않았다.

발가락이 아니라 발등으로 신는 토슈즈

미모의 완결은 C라인

토슈즈는 발가락에 무게를 싣지 않고 발등을 미는 힘으로 신어요

마리 탈리오니의 등장 이후 발레에서 토슈즈가 필수품이 되면서 여성 무용수들은 토슈즈를 활용한 다양한 발레 테크닉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조금 더 수월하게 토슈즈를 신을 방법들도 고민하게 됐다. 많은 사람이 토슈즈는 발가락 끝으로 신는다고 생각하는데, 발가락에 그렇게 하중을 실었다가는 보통 2시간 30분씩 진행되는 전막 발레 공연은 해내기 어렵다. 발가락이 남아나겠는가.

 

여성 무용수들은 토슈즈를 신고 섰을 때 발등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몸을 바로 세우면 발가락에 하중이 실리지 않고 더 안정적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발등을 밀어내는 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발등을 앞으로 밀어서 C라인이 만들어지자 다리부터 발등까지 자연스러운 곡선이 이어지면서 무대에서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닌가. 이러니 어느 무용수인들 발등에 집착하지 않겠는가. 토슈즈를 신지 않는 남성 무용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S라인은 여성의 전유물이지만, 무용수들에게 C라인은 성차별을 하지 않는다. 조각 같은 남성 무용수의 몸 라인은 둥근 발등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몸을 바로 세워서 위로 솟구쳐 오르려는 상승 에너지, 단단한 발목의 힘, 그리고 발등을 밀어내는 힘. 이 세 가지의 힘이 조화될 때 발끝으로 서서 움직이는 모든 발레 동작이 완성된다.

무용수의 자존심, '고'

미모의 완결은 C라인

아름다운 ‘고’는 선의 예술인 발레의 필수 요건!

발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무용수들은 이를 부르는 이름도 따로 갖고 있다. 비록 일본어의 잔재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라고 부른다. 해외에서는 ‘아치arch’라고 부르는데 둥글게 솟아오른 발등은 모든 무용수가 갖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용수들의 고에 대한 집착은 실로 대단하다. 고를 만들기 위한 특별한 훈련을 따로 할 정도다. 무용수들은 ‘고를 낸다’라고 표현하는데, 나무판 위에 넓고 짱짱한 밴드를 끼워 만든 기구를 주로 사용한다. 밴드에 발을 끼워 넣고 발등을 밀어내는 훈련을 통해 발등 모양이 솟아오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훈련으로도 성에 차지 않으면 공연 때 ‘고패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고패드는 넓은 밴드 위에 도톰한 패드가 붙어 있어서 발에 끼고 그 위에 타이츠를 신으면 발등이 더 튀어나와 보이게 되는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무용수들은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남성들의 키높이 깔창, 여성들의 보정속옷과 같다고 할까. 심지어 생리대를 잘라서 발등 위에 붙이고 공연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생리대 조각 하나 붙였다고 얼마나 자신감에 넘치고 행복해하던지,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는 무용수들에게 그런 존재인 것이다. 오죽하면 젤시 커클랜드처럼 수술을 감행하는 무용수까지 등장할까.

 

둥글게 솟아오른 발등은 남녀 무용수 모두에게 미의 완결점이자 자존심의 상징이다. 발레 테크닉과 시선 처리, 연기와 감정 표현을 연습하고 아름다운 몸의 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마지막 하나, 발끝마저도 세심하게 라인을 다듬는 무용수들. 오늘도 발등의 C라인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계속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을 완성하는 무용수들의 발. 그래서 그들의 발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이단비 촬영 협조 서울발레시어터 지도위원 강석원, 서울발레시어터 주역무용수 나지혜

연재 필자 소개

KBS를 시작으로 SBS, MBC를 거쳐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 중이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 면서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7년 10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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